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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된 대학, 근대의 대학으로 돌아가라!

등록 2018-06-07 19:55수정 2018-06-07 20:48

대학의 기업화-몰락하는 대학에 관하여
고부응 지음/한울아카데미·3만9500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대학의 몰락’을 우려하지만 이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문제점을 가장 잘 짚어낼 수 있는 학자들 스스로가 대학이란 기성 시스템으로부터 십분 자유롭기 힘들다는 것을 난점으로 꼽는다. 그런 측면에서 고부응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사진)를 비롯해 한국의 대학과 고등교육 체계를 꾸준히 분석하고 비판해왔던 학자들의 존재는 특히 값지다.

<대학의 기업화>는 고부응 교수가 그동안 발표해왔던 대학에 대한 비판적 논문들을 엮은 단행본이다. ‘학문공동체’로서 대학의 기원과 역사, ‘대학 기업화’의 원조가 된 미국의 대학 시스템, 미국의 시스템을 뒤따라 기업화가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는 한국 대학의 현실 등 “지성의 비관주의”에 기반한 냉혹한 분석과 이런 현실을 타개할 급진적인 대안까지 담고 있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대학이 외부의 힘, 특히 국가 또는 자본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파고든다. 이마누엘 칸트는 <학부 간의 논쟁> 속 논의로, 훔볼트는 베를린훔볼트대학교의 설립으로 “자율적인 ‘학문공동체’”라는 근대 대학의 이상을 밝혔다. 이때 대학의 목적은 “국가 관리나 국가 체제에 순응하는 민족 구성원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민족 구성원을 양성한다”는 데 있었고, 이런 차원에서 대학과 국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놓일 수 있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이와 달리 애초 사립대학으로 출발했던 미국의 대학 시스템은 외부의 힘, 곧 기업자본의 지배를 받기 쉬운 조건에 있었다. 때문에 공공재인 지식을 사고파는 등 빠르게 자본주의 체제로 변모했고, 종국에는 “대학 자본주의”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그 폐해가 깊어지고 전세계적 차원으로 영향을 끼쳤다. 사립대학이 중심이 되어 등록금에 기대어 굴러온 한국의 대학 역시 이러한 ‘대학의 기업화’ 현상의 최첨단을 달려왔다. 대중과 접점이 없는 논문 양산, 교수 지위를 옥죄는 경쟁 시스템, 이를 부추기는 대학평가와 학술지 제도 등 국가의 학술정책 속에서 학생과 교수는 기업식으로 관리되고, 교육과 연구의 결과는 기업자본에 봉헌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부응 중앙대 교수. 한울아카데미 제공
고부응 중앙대 교수. 한울아카데미 제공
지은이는 무엇보다 오늘날 학문의 자유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초국적 기업자본이며, 이에 맞서 ‘근대 대학’의 이상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학의 기업화, 민족국가의 쇠퇴, 초국적기업 자본주의의 득세 등 세 현상은 결국 하나의 흐름”이다. 초국적인 기업자본이 과거 ‘근대 대학’이 이루었던 국가와 대학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끊어내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분석은 “국가권력으로부터 대학을 보호할 필요도 있지만, 대학과 학문의 보호를 위해 국가권력이 행사될 필요도 있다”는 관점과도 연결된다.

지은이는 “‘대학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대학은 폭파되어야 하며, 폭파 프로그램은 대학의 자치가 보장되었던 중세의 대학 또는 대학의 공공성이 확보되었던 ‘근대의 대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사립대학제도를 없애고 무상교육을 실시하며 대학의 운영을 구성원들의 자치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급진적인 대안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대학 구성원 스스로가 대학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으면 결코 대학이 몰락하는 현실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 역설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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