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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되지 않으려면, 투표!

등록 2018-06-07 19:55수정 2018-06-07 20:22

[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영조 16년(1740) 4월17일 이이장(李?章)은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에서 영조에게 자신이 돌아본 호남의 실정에 대해 보고했다. 암행어사로 막 복명한 터였다. 여러 문헌에 남아 있는 암행어사의 보고는 지방 실정을 세밀하고 생생하게 전하고 있어 늘 관심의 대상이지만, 이날 이이장의 보고에는 더욱 각별히 눈길을 잡아끄는 대목이 있었다. 다름 아닌 전라도 해안 일대 고을을 맡아 다스리는 수령의 자질 문제였다.

요약하자면, 해안 일대는 수토(水土)가 좋지 않기에 관리들이 부임하기를 꺼리므로 그곳 수령으로 발령이 나는 인물은 늘 마땅찮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들이 회피하는 자리를 실력도 없고 염치도 없는 자들이 차지하여 오직 백성을 착취하는 데 몰두한다는 말이다. 이런 자들은 대개 이방(吏房)이나 급창(及唱) 따위와 한통속이 되어 가렴주구에 여념이 없다. 백성들은 학정에 시달리지만 하소연할 데가 없다. 워낙 서울과 멀리 떨어진 바닷가라 조정에 그들의 목소리가 전해질 리 만무다.

이이장은 이 말을 마치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보성(寶城)에 갔을 때 한 시골 농민에게 들은 말이다.

“우리들은 한 마리 소에 지나지 않지요. 소는 비록 덩치는 크지만 어린애가 도살장으로 끌고 가도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지요. 우리 소민(小民)들은 비록 사람 수는 많지만, 관속(官屬) 하나가 끌고 가면, 그곳이 죽을 땅이라 해도 스스로 모면할 수가 없는 법이지요.”

소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도살장으로 끌고 가도 순순히 따라가야 할 뿐이다. 백성 역시 마찬가지다. 백성은 숫자가 많다. 하지만 관속 하나가 사지(死地)로 끌고 가도 어떻게 벗어날 도리가 없다. 이이장은 농민의 말을 듣고 정말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 역시 이 대목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엇이 이이장의 대책이었을까? 지방 수령을 괜찮은 사람으로 골라 보내자는 것이었다. 그의 대책은 실현되었을까? 18, 9세기의 역사는 이이장의 대책이 전혀 효과가 없었음을 입증한다. 생각해 보면 문제의 핵심은 전혀 딴 곳에 있었다. 조선의 ‘백성’은 힘겨운 노동과 그것으로 만든 생산물을 지배사족에게 바치는 존재일 뿐, 애당초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백성은 오직 통치의 대상이었을 뿐, 그들에게 정치적 권리란 것이 전혀 없었다. 이것이 소처럼 끌면 끄는 대로 죽을 곳이라도 가야만 하는 이유였다.

죽을 곳으로 끌려가는 소와 다름없다던 농민의 절망이 있고 거의 3백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왕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주권은 백성이 아닌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어떤가. 지금도 목도하고 있듯, 국민을 저들이 끌면 끄는 대로 끌려가는 소로 아는 정치인, 관료, 판검사, 재벌 들이 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정치적 권리를 적극 행사하는 수밖에 없다. 거듭 말하거니와 지금 이 시점에서 투표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우리가 아닌 저들이 우리가 끄는 대로 끌려가는 소의 신세라는 것을 투표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나의 정치적 권리를 포기하지 말고 오는 13일 지방선거에서 투표하자.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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