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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평등 개선·인권 존중이 ‘인구 문제’ 열쇠”

등록 2018-05-31 19:49수정 2018-05-31 21:13

세계사회학회 서울 대회 발표자
한·일 여성 학자 2인 특별 좌담
“인간이 진정한 가치의 원천”
“다양성이 사회 살아숨쉬게 해”
지난 25~27일 서울 연세대에서 세계 24개국 220여명의 외국 학자들을 포함해 모두 3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학술회의가 열렸다. 국제사회학회(ISA)의 ‘사회계층과 사회이동 연구분과’ 학술대회였다. ‘동아시아의 젠더, 가족, 인구’라는 주제로 열린 첫날 전체세션에서 박경숙 서울대 교수와 시라하세 사와코 일본 도쿄대 교수는 각각 ‘한국사회 노인 빈곤 및 불평등’과 ‘일본의 사회적 계층 분화’에 대한 발표를 마친 뒤 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한겨레>와 가진 이 좌담에서 두 사회학자는 자기 발표에 채 담지 못한 내용과 상대 발표에 대한 의견 교환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나눴다.

앞서 주제발표에서 시라하세 교수는 “일본인들의 초혼 연령이 갈수록 늦어지고 결혼에 소극적인 젊은이들이 늘면서 성인 자녀가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동거하는 가족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런 추세가 저출산·고령화와 비혼 성인 자녀의 소득 저하에 따른 가계소득 기여분 감소로 이어지고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경숙 교수는 “노년층 소득의 경우 미국과 유럽에선 (연금 또는 사회복지체계에 의한) 공적 이전의 비중이 큰 반면, 한국은 주로 가족 부양 등 사적 이전에 의존하고 있는데다 노인 빈곤율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며, 주요 원인으로 소득불평등 확대, 가족구성의 변화, 노동-복지의 분절, (현 노년층의) 전 생애에 누적된 불평등을 지적했다. 이어진 좌담에서 두 학자는 한·일 양국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큰 관심을 보였다.

박경숙 서울대 교수(왼쪽)와 시라하세 사와코 도쿄대 교수가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누리관에서 열린 국제사회학회(ISA) 서울 대회 첫날 ‘동아시아의 젠더, 가족, 인구’라는 주제로 열린 전체회의에서 각각 자국 사례 연구 발표를 마친 뒤 <한겨레>와 특별 좌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박경숙 서울대 교수(왼쪽)와 시라하세 사와코 도쿄대 교수가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누리관에서 열린 국제사회학회(ISA) 서울 대회 첫날 ‘동아시아의 젠더, 가족, 인구’라는 주제로 열린 전체회의에서 각각 자국 사례 연구 발표를 마친 뒤 <한겨레>와 특별 좌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회 먼저 상대의 발표에 대한 논평 혹은 질의·답변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박경숙(이하 박) 일본 가구에서 기혼 자녀와 부모의 동거율이 급감한 반면 비혼 성인 자녀와 부모의 동거가 늘어나는 현상은 한국과 매우 비슷해 흥미롭다. 일본의 가족 구성 변화에 따른 세대간 소득 이전의 변화가 궁금하다.

시라하세 세대간 소득 이전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선 사회보장이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의 가족 구성 변화는 양국이 비슷한데, 그 시기와 단계는 일본이 앞선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한국이 훨씬 빠르다. 일본은 (노년층) 사회보장이 한국보다 진전돼 있다. 또 자녀의 부모 부양보다는 부모가 자녀 세대에 소득을 보전해주는 비중이 더 크다.

부모-성인자녀 동거 가족의 성격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세대 동거가 정치·경제적 결합의 미시 단위에 가까워보인다. 한국이나 대만은 혈연에 기반한 친족 공동체 성격이 훨씬 강하다. 따라서 성인 자녀들의 부모 부양 의무가 더 강조된다.

시라하세 그렇다. 한국은 친족연대감이 (일본보다) 더 강한데, 이는 부모-자녀 세대가 동거하지 않는 경우도 그렇다. 반면 일본인은 가족이 같은 공간, 같은 생활,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걸 중요시한다. 혈연적 관계보다는 생활 공동체 성격이 크다.

사회 페미니즘 운동의 지향과 방식을 둘러싼 일부 논쟁에도 불구하고 양성 평등은 의심할 수 없는 가치이자 시대적 흐름이다. 저출산고령화와 세대간 경제력 불평등 같은 문제에 페미니즘이 해법이 될 수 있는가?

전적으로 ‘예스’다(웃음). 한국에서 젠더·계급·세대간 갈등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 노동시장 불안정, 복지시스템의 분절, 인권·시민권 의식 결여 등에서 기인한다. 오늘날 이런 구조적 모순과 갈등의 해결을 위해선 더 보편적이고 인간적인(humanized) 사회 시스템과 시민권 의식이 중요한데, 페미니즘 운동이 그걸 촉발할 수 있다고 본다. 권위주의적 구조에 맞선 사회적 연대가 중요하다.

시라하세 내 생각도 매우 비슷하다. 페미니즘은 여권 문제일 뿐 아니라 매우 중요한 인권 문제다. 페미니즘 운동이 결혼과 출산(증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젊은 세대의 공감도 크다. 페미니즘 운동은 한국 학생들이 일본 학생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다. 인권 문제도 일본에선 사회적 공유의 정도가 낮고 젊은이들이 잘 참여하려 하진 않는다. 기성세대는 페미니즘 운동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며, 일본 여학생들은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관적이진 않다.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대화해보면 다들 관심이 있다. 젊은이들이 이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경숙 서울대 교수가 25일 오후 서울 연세대 백양누리관에서 열린 국제사회학회(ISA) 서울 대회 첫날 주제 발표를 마친 뒤 <한겨레>와 특별 좌담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박경숙 서울대 교수가 25일 오후 서울 연세대 백양누리관에서 열린 국제사회학회(ISA) 서울 대회 첫날 주제 발표를 마친 뒤 <한겨레>와 특별 좌담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회 한·일 양국 모두 순혈주의 내지 혈연적 동질감이 매우 큰 사회다. 이주자의 과감한 수용 등으로 인구 구성을 다양화하는 게 노동시장 문제와 인구 문제 해결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이주자 증가와 네트워크 형성은 구조적인 흐름이며 우리가 인정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경제체제 확대에 따라, 국가 단위를 구분짓는 경계가 약해지고 한·일 양국을 포함한 대다수 나라에서 이주자 유출과 유입이 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외국인 이주자를 노동력으로 고용하려고만 하지 시민으로 받아들이길 꺼린다. 결혼 이주자도 한국의 가부장제의 일원으로만 종속시키려 하는 등 ‘도구적’으로만 받아들인다. 이는 인권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사회통합 차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주자를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고 사회통합적 관점을 무시한다면, 인구 재앙을 넘어 훨씬 더 큰 사회적 재앙이 닥칠 수 있다. 그들을 아웃사이더, 외부자로 보는 사회인식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시라하세 동의한다. 다양성이야말로 사회를 살아 숨쉬게 하는 핵심 요소다. 이민자 수용을 마냥 회피할 수 없을 거다. 일본도 이주자 수용 방식이 문제다. 노동시장에서 인력 수요가 커지고 잘 받아들이지만 ‘체류’는 부정한다. 이들을 어떻게 시민으로 환대하고 통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없다. 경험적으로 보면, 이민자 수용은 인구의 평균 연령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일본 사회는 이미 노동인구의 다양화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그러나 이주자를 단순히 노동력이나 인구 문제 해결책으로 환영해선 안된다. 그건 전적으로 잘못이다. 이주자 문제는 갈수록 더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사회 구성의) 다양성은 이미 글로벌화돼 있다. “위 아 더 피플”이다(웃음).

시라하세 사와코 도쿄대 교수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연세대 백양누리관에서 열린 국제사회학회(ISA) 서울 대회 첫날 주제 발표를 마친 뒤 <한겨레>와 특별 좌담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시라하세 사와코 도쿄대 교수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연세대 백양누리관에서 열린 국제사회학회(ISA) 서울 대회 첫날 주제 발표를 마친 뒤 <한겨레>와 특별 좌담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회 한국과 일본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불평등도 커지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88만원 세대’, ‘3포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은 어떤가?

시라하세 젊은이들 환경과 세태는 일본도 매우 비슷하다. 일본엔 ‘초식남’이 있다(좌중 웃음). 하지만 한국이 훨씬 더 심각한 것 같다. 일본 젊은이들도 예전엔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연애, 좋은 외제차 구입 같은 것. 그런데 지금은 큰 관심이 없다.

그런 성향이 로널드 잉글하트(미국 정치학자)가 말한 ‘탈물질주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나?

시라하세 일종의 그런 태도로 볼 수도 있다.

사회 젊은 세대의 경제력이 취약한데도 노년층 부양에서 사회복지 시스템보다 사적 소득 이전의 비중이 큰 것은 큰 문제다. 어떤 해법이 있을까?

일본의 경우, 노인 부양의 공적 부담률이 서구보다는 낮지만 노년 인구 대다수가 경제적 자급 능력이 있고, 자녀 세대의 사적 소득 이전이 한국만큼 큰 문제는 아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생활비 용돈도 (한국보다) 매우 적다.

시라하세 맞다. 그런데 부모가 가난하면 자녀도 가난한 경우가 많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일본은 특히 독거 여성 노인 문제가 심각하다. 남편과 사별했고 부자가 아니었을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이같은 ‘분절화한 불평등 시스템’이 문제가 되고 있다.

두 나라의 또 하나 차이점은 노동시장의 상황이다. 공적 연금의 범위와 사회복지 수준은 노동시장에 달렸는데, 한국은 일본에 견줘 노동시장 분절이 훨씬 심하다. 피고용자의 지위가 매우 차별적이고 그에 따른 복지 수혜의 차별이 크다. 노동시장 내의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보편적 사회보장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기본소득에 대한 합의 수준도 매우 낮다.

사회 본질적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사회에서 인구 문제가 왜 중요한가?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다. 그동안 인구 위기 담론은 주로 경제학 쪽에서 개발의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인구는 사회 발전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우리가 모든 개개인의 삶과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개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역사와 사회를 가꾸는 데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자본이나 기술로 대체할 수 없다. 인간이야말로 가치의 진정한 원천이다.

시라하세 동의한다. 나도 인구학 연구자로서 그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인구’는 거시적 사고 틀이지만 나의 관심은 개인에 맞춰져 있다. 인구는 성별, 나이, 국적, 장애 유무 등 각기 다른 개인들이 모여 구성된다. 인구 규모와 인구 구조는 다른 문제다. 인구 구성은 경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인구학적 변이의 관찰은 매우 장기적인 이슈지만 동시에 인구는 구체적 개인들로 구성되며, 따라서 개개인의 인권이 보호이 존중받고 보호될 필요가 있다. 자녀를 가질지 말지, 몇명이나 가질지는 개인적 선택이며, 정부를 포함해 누구도 사인의 의사 결정에 개입할 수 없다.

사회 인구 고령화와 젊은 세대의 부양 부담 때문에 세대간 갈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도 시민권 문제와 관련이 있다. 시민권은 개성, 나이, 종교, 성별 등에 차이 없이 모든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합의에 기반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더 자기중심적이 되며 갈등도 커진다. 시민권 개념이 정치·경제적 시민권에서 더 나아가 상대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상대를 주변화하지 않는 문화적 시민권으로 확장돼야 한다.

시라하세 세대간 차이는 시간 효과에 불과하다. 누구나 출생 시기는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임의적이다. 누군가는 경제호황기에 태어나 성장하는 행운을 누리고, 다른 누군가는 불황기를 살 수 있다. 재분배 정책이 중요한 이유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분배를 제공하고, 사람들도 서로를 도와야 한다. 사회정의와 인권 등 기본적 가치들을 계속 지켜가야 한다. 불평등을 줄이느냐 확대하느냐는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역할이자 책임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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