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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진화적 불일치가 낳은 문명의 질병들

등록 2018-05-31 19:47수정 2018-05-31 20:02

미 하버드대 진화생물학자
인간 몸과 문명 공진화 주목
자연의 시계 훨씬 앞지르는
생활양식 급변에 인체 부적응
우리 몸 연대기-유인원에서 도시인까지 몸과 문명의 진화 이야기
대니얼 리버먼 지음, 김명주 옮김/웅진지식하우스·2만2000원

2형 당뇨병(세포가 인슐린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질병), 뇌졸중, 심장병, 치매, 알레르기, 골다공증, 근시, 변비, 요통, 평발…. 자신 또는 주변에 이런 만성질환이나 기능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 증상이 없는 게 외려 이상할 정도다. “그중 몇몇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대부분은 새로 생겼거나 최근 들어 흔해지고 심해진 것”들이다. 현대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물질적으로 풍부하고 의료보건이 발달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 기대 수명도 전례 없이 늘었는데, 왜 우리 몸은 자꾸만 전에 없던 이상신호를 보내는 걸까?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대니얼 리버먼 하버드대 교수가 쓴 <우리 몸 연대기>는 바로 이런 의문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건강 문제는 “생존과 번식에 적합하게 진화해온 우리 몸이 풍요롭고 안락한 현대문명과 만나 벌어지는 부적응” 때문이란 것이다. 흔히 현대인의 건강 위협 요인으로 과영양, 운동부족, 패스트푸드, 노동의 변화, 환경 오염 등을 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통념이나 경험칙이 아닌 실증적 인과관계와 이치를 규명하는 게 과학이다. 인간의 진화, 그 중에서도 뼈 연구에 집중해온 지은이는 골격해부학, 인류학, 생물학, 유전학 등 관련 분야 연구에서 얻은 구체적인 데이터와 과학적 논증을 통해 인간 몸과 문명의 공진화(共進化)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탄자니아 하드자 부락의 여자들이 뿌리 식물 음식을 굽고 있는 모습. 미국 진화생물학자 대니얼 리버먼은 인간 몸의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라는 공진화의 속도 차이가 현대인의 비감염성 만성질환이나 기능장애를 낳는다고 본다. 사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 Alyssa Crittenden.
탄자니아 하드자 부락의 여자들이 뿌리 식물 음식을 굽고 있는 모습. 미국 진화생물학자 대니얼 리버먼은 인간 몸의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라는 공진화의 속도 차이가 현대인의 비감염성 만성질환이나 기능장애를 낳는다고 본다. 사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 Alyssa Crittenden.
지구에서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것은 고작 20만년 전, 과학혁명이 일어난 건 불과 500년 전이다. 호모(Homo) 속만 따져도 최소 25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진화의 역사에 비춰보면, 장구한 세월 수렵채집 생활에 적응해 진화해온 인류가 농업, 문자, 도시, 엔진, 항생제·컴퓨터 등을 발명하고 지금 같은 물질문명을 누리며 산 시간은 눈 깜짝할 새도 안 된다. 굳이 몇백만년 전까지 안 가더라도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수치는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오늘날 탄자니아 하드자족의 평균적인 남성 수렵채집인은 몸무게 51㎏에 하루 15㎞를 걸으며 일한다. 하루 사용 총열량(약 2600칼로리) 중 기초대사(생명유지 기능)를 뺀 1500칼로리가 몸을 움직이는 데 쓰인다. 체중 1㎏당 30칼로리다. 반면 전형적인 서구 선진국 남성은 몸무게가 그보다 50% 무거운 반면 신체활동에 쓰는 에너지는 체중 1㎏당 17칼로리에 불과하다.

지은이는 이같은 인간 몸의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라는 공진화의 속도 차이가 가져온 불균형에 주목한다. “오늘날 문화적 진화는 자연선택의 속도와 지혜를 능가한다. 인간이 최근에 이뤄낸 수많은 혁신은 더 많은 식량과 에너지, 자식을 생산하게 해주기 때문에 선택됐다. 하지만 큰 집단 규모와 높은 인구밀도, 부적절한 위생시설, 질 낮은 식품으로 인해 전염병이 증가한 것은 이러한 문화적 진화의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이었다.” 진화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때때로 병에 걸리는 것은 자연선택의 우선 순위가 ‘건강’보다 ‘번식’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시계와 견줘 급격하게 빠른 문화적 변화들이 우리 몸과 충돌하면서 유전자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바꾼 결과, 광범위한 건강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특정행동과 조건에 충분히 적응되지 않았거나 부적절하게 적응돼 있는 구석기의 몸이 일으키는 질병”이 바로 ‘진화적 불일치 질환’이다. 책에는 바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례들이 많다. 인간이 신발에 의존하면서 생겨난 발 질환들, 바닥이 아닌 의자에 앉으면서 생겨난 근육 변성, 근시에 약이자 독이 된 안경 등이 일부 사례들이다.

이 책을 지난해 12월 우리말 번역본이 나온 <섹스, 다이어트 그리고 아파트 원시인>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다. 역시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마를린 주크는 원제가 <구석기 판타지: 성, 다이어트, 삶의 방식에 대해 진짜로 말하는 것>이란 이 책에서 이른바 ‘구석기 다이어트’ 열풍의 근거가 됐던 학설, 즉 인간의 유전자 혹은 행동 방식이 구석기 시대에 최적화돼 있다는 주장이 오류이며 유사과학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얼핏 <우리 몸 연대기>에서 리버먼이 말하는 것과 상충하는 것 같다. 그러나 주크의 문제의식은 인간 몸의 진화가 구석기 시대에 완료됐다는 인식의 오류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리버먼도 “자연선택은 끝나지 않았다”며 인류 진화는 지금도 진행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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