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말기의 팔기 기마병의 모습. 너머북스 제공
만주족 이야기-만주의 눈으로 청 제국사를 새로 읽다
이훈 지음/너머북스·2만6500원
만주족은 대제국인 청을 건국하고 지배했지만, 한때 역사가들은 만주족이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상실하고 한화(漢化)되었기 때문에 만주족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중국의 제일역사당안관에 막대한 수량의 만문(만주 문자)으로 작성된 청대의 공문이 소장된 사실이 알려졌고, 이는 청사(淸史)를 ‘만주족 중심’으로 바라보는 관점, 곧 청이 중국보다는 내륙아시아적 전통에 속해 있었다는 관점을 촉발했다. 90년대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이 같은 관점을 ‘신청사’라고 부른다.
지난해 만주어-한국어 사전 <만한사전>을 펴낸 바 있는 역사학자 이훈은 새 책 <만주족 이야기>에서 만문 사료와 만주어를 깊이 다룰 수 있는 역량을 바탕으로 삼아 만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부제처럼 ‘만주의 눈으로’ 보는 역사는 기존 중국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와 그 결이 다르다. 주목할 대목은 만주족이 그저 중국에 동화된 것이 아니라 만주족으로서의 자의식과 정체성을 유지하려 했으며, 그들의 유산이 현대 중국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그 생명력이 길었다는 사실이다.
<만주실록>에서 만주가 발흥한 곳을 표시한 지도. 가운데가 누르하치의 초기 수도인 허투알라. 지도의 오른쪽이 서쪽이고 위쪽이 남쪽이다. 너머북스 제공
광활한 만주 지역에서 부족이나 씨족 단위로 흩어져 살던 만주족은 16세기 초중반 건주여진, 해서여진, 동해여진 등으로 구분되었고, 건주여진 출신 누르하치에 의해 ‘아이신 구룬’(후금)으로 통일됐다. 더 나아가 만주족은 중국을 지배해 중원 왕조의 외피까지 입었고, 티베트·신장·몽골까지 지배 영역을 확장해 청이라는 ‘제국’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은, 서로 다른 씨족·부족들을 아우르며 중앙집권적 권력을 창출해내는 군사제도이자 행정제도, 사회조직이기도 한 ‘팔기’ 제도였다. 2대 황제인 홍타이지는 여기에 중국의 행정조직을 받아들이는 등 여진·몽골·한인 등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 모델을 지향하는 한편, ‘만주’라는 새로운 족명을 내걸고 핵심 민족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졌다. 지은이는 “청은 만주족 고유의 국가 체제인 팔기와 중국의 국가 행정 체제를 하나의 국가 체제 안에서 결합시켰고 상이한 두 체제를 효율적으로 운용했다”고 짚는다.
대규모 정복전쟁, 황실의 샤머니즘 제사, 만주어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청이 지닌 만주족 고유의 성격과 그것이 기대고 있는 내륙아시아적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청 황제는 몽골을 제어하기 유리한 위치인 열하에 피서산장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행사를 벌였는데,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황제가 열하에서 묵는 명분은 피서이지만 사실은 그 자신이 변경 지역을 직접 방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을 만주, 한인, 몽골, 신장, 티베트 등 5가지로 나눠 보았던 청의 시각을 현대 중국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붓을 들고 있는 청 강희제의 모습. 너머북스 제공
지은이는 “현대 중국은 중국 내지를 넘어 청 제국이 지배한 광활한 공간을 중국사로 포괄하고 있고, 한국은 만주 지역을 한국 고대사의 공간으로 간주한다. 양자의 필연적인 충돌 사이에 만주족의 역사와 공간은 실종되어 갔다.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길을 찾는 데 이 글이 조그만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