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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음식 뒤에 ‘안주’ 두 글자면 못 먹을 게 없잖아

등록 2018-05-31 19:46수정 2018-05-31 20:05

잠깐 독서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지음/한겨레출판·1만3800원

깊음이 어둡고 육중하게만 여겨질 때. 깊다는 게 제아무리 좋은 무엇이라도 무거워서 오래 들 수가 없을 때. 이 낭패는 권여선의 글로 거의 극복할 수 있다. 매우, 매우, 드물게도 밝고 가볍고도 깊은 세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식처럼 벼려진 문장이 유쾌한 온기를 두른 그의 소설을 읽으면 환한 깊이를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아는 가장 깊은 것, 우주의 거리를 재는 자는 빛이다. 광원은 그림자가 없다.

권여선 소설가의 첫 산문집.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는 애주가의 음식 에세이다. 정확하게는 안주 에세이. “입맛을 키운 건 팔 할이 소주”였다는 작가의 집밥을 가장한 ‘5계절’ 술상 레시피가 차려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환절기. 여름의 맛만 살짝 보여드린다. 꽈리고추와 달걀을 넣은 소고기장조림은 단백질 보충에도 좋고 귀여운(!) 음식. “잘 나눠 담으면 세 가지 반찬을 꺼낸 착시효과”도 있다. 그리고 가죽 나물과 장아찌. 나무와 쇠와 흙의 맛이 골고루 나서 “목금토의 맛”이라 부른다는 별미란다. 찬밥을 보리차에 말아 얹어 먹으면 기가 막힌 “수목금토의 맛”이라고.

요리는 식재료를 구하는 일부터가 시작이다. “단골가게 주인이 나를 속이기도 한다. 시금치가 물렀다든가 거슬러 준 잔돈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한 적도 있지만 이제 나는 입을 다문다. 가엾고 뻔뻔하고 슬프고 사나운, 기묘하게 모순되는 그들의 표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 결국은 단골가게로 향하고 만다.” 요리와 창작, 날것으로 새것을 만드는 일. 새 이해를.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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