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의 몽상>의 지은이 현민씨가 지난 3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옥상에서 서울서부지방검찰청과 법원을 배경으로 서 있다. 그는 수형자들의 개인물품을 보관한 영치창고에서 일할 당시 영치된 물품들을 보며 물건 주인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습관이 있었다며 “목장갑을 끼고 영치낭을 뒤적이면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고문서 더미에 파묻혀 연구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면 지금 이 시간은 어느 연구자도 겪지 못한 나만의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야릇한 만족감이 솟았다”라고 책에 썼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감옥의 몽상
현민 지음/돌베개·1만6000원
올해는 고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사색)이 출간된 지 30년째 되는 해다. 1988년 8월15일 특별가석방된 신영복의 출소에 맞춰 출간됐던 이 책은 저자의 서문조차 없었으나 곧 시대를 대표하는 책이면서 한국 감옥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자리에 오른다.
2010년대 감옥에서 1년6개월을 복역한 현민(36)이 쓴 <감옥의 몽상>(몽상)을 1960~1980년대에 20년20일을 복역한 신영복이 쓴 <사색>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종이와 펜을 소지할 수 없었고 한 달에 한 번 간수의 감시하에 엽서 한 장 쓰는 것이 전부였던 신영복과, 자유롭게 일기를 쓰고 편지를 보내고 기고를 하고 글을 수차례 고쳐 쓸 수 있던 현민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이런 해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감옥문학이라는 사실 때문에라도 <몽상>과 <사색>을 비교하고픈 충동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 비교를 피하지 않는다면, 대상의 밑바닥까지 투시하는 냉혹할 정도의 관찰력과 남성성과 감옥의 작동방식 등 새로운 주제에 대한 문제의식, 성추행을 당한 사실부터 자위와 성적 환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점에서는 <몽상>이 감히 <사색>을 넘어섰다는 평을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2016년 우리 곁을 떠난 신영복이 만약 살아 있다면 흔쾌히 이보다 더 후한 평을 내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와 사회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지은이는 병역을 거부하고 2010년 3월12일부터 2011년 6월30일까지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며칠간의 독거방과 경제사범방 생활을 거쳐 곧 “사자 우리에 던져진 토끼처럼” 살인, 강도, 강간범들이 일하는 취사장에 배치된다.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격한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지만,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좁은 폐쇄공간의 권력관계였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정의하는 남성성이 결여됐다고 간주하는 병역법위반자인 동시에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사회성을 결여한 책상물림”으로, 서열 밑바닥에 자리 잡게 된다.
여기서 지은이가 이 책을 쓰도록 만든 핵심적인 사건을 일으킨 인물 ‘광천’(가명)이 등장한다. 그는 이십대 초반에 수감돼 십년 이상 징역을 살아 삼십대 중반이 됐지만 아직 형기가 남은 장기수다. 담장 밖 세계와 단절된 채로 살아왔지만, “언젠간 발 딛을 바깥에서 쓸모 있는 인간으로 건재하고 싶다는 소망”이 만들어낸, “자신이 매우 비범한 인물이라는 환상” 속에 사는 인물이다.
하지만 사실 그가 감옥에서 ‘빵잽이’(감옥 사정에 훤한 수감자)로서 확보한 권력과 지식은 밖에서는 쓸모가 없고, 그저 그동안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라는 현실에서 오는 불안은 그의 내면에 블랙홀과 같은 어둠을 만들어낸다. 그 텅 빈 내면을 채우기 위해 권력관계의 아래에 있는 수감자와 ‘형-동생’ 관계를 맺어 모든 걸 통제하고 정서적, 성적으로 착취한다. 그는 현민을 자신의 동생으로 선택하고, 현민의 허벅지와 종아리와 귓불 등 몸 곳곳을 만지는 성적 괴롭힘에 이른다.
문제는 이런 상황으로 치닫는 데 현민 자신의 관념성이 일조했다는 데 있다. “내 민중주의적 관념도 광천을 가련히 여기는 데 일조했다. (…) 학생운동 경험으로 형성된 소박하고 천진한 관념이었다. (…) 성장에 대한 판타지도 이를 거들었다. 상처투성이 장기수와 참된 우정을 나눈다면 나는 곱게 자란 엘리트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 미련한 생각을 품은 채 그와 관계를 지속하면서 자신을 보호할 기회를 몇 번이나 흘려버렸다.” 신영복은 <사색>에서 지식인의 관념성을 청산하고 수감자들처럼 민중이 되기를 지향하지만, 이 책에선 그런 지향은 자기를 파괴하는 흉기로 전도된다.
결국 그는 교도관 면담을 신청하고, 영치 창고로 업무와 방이 바뀌며 책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재소자들의 개인 물품을 관리하고 교도소 곳곳으로 배달하는 영치 업무를 맡으면서, 폐소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벗어나 감옥 전반으로 시야를 돌린다. 취사장의 ‘빵잽이’들도 잘 보이려 특별히 신경 쓰는 ‘범털’(호랑이털이란 말로 최상층 재소자를 일컫는 말)들이 세탁, 원예, 병동에 모여 있는 모습 등 바깥 사람들은 잘 모르는 감옥 생활의 디테일이 가득하다. 일이 편한 세탁소에는 영자신문 구독하는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하루 노동시간이 30분도 되지 않는 원예장엔 세금 포탈 고위 공직자, 비리 군장성, 전직 농협중앙회장이, 온돌이 깔린 병동에는 저축은행 대주주이자 카지노 소유주인 은인표가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하고 있다. “작업장의 구분은 (…) 입소 전 사회적 지위에 따른 분류도 포함하고 있다. 감옥 내부에도 한국사회의 계급 차와 불평등 구조가 반영된 것이다. 출역한 수형자들은 다른 작업장에 관한 정보를 접하면서 교도소가 표방하는 노동의 가치를 깨닫기는커녕 노동교화가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학습한다.”
하지만 여기서 상황은 다시 한 번 뒤집힌다. 감옥 안 병동은 회장님만이 아니라 ‘또라이’들도 있는 기묘한 공간이다. 교장 출신 치매 노인은 사람들 앞에서 과시적으로 자위행위를 하고, 소매치기단 출신 조현병 환자는 밥그릇으로 창살을 두드리며 나가겠다고 소리를 지른다. “내게 그들의 또라이짓은 약자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에게 손수 가하는 복수처럼 해석되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면전에서 침을 뱉고 자위를 하고 오줌을 싸고 똥을 칠한다. 타액, 정액, 소변, 대변이야말로 그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다.”
지은이는 <사색>을 오마주하거나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의도 아래 이 책을 쓰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몽상>을 통해 <사색>을 다시 읽으며, 신영복을 재발견하고 현민이란 작가를 발견하는 일은 올해 독서가들에게 주어진 즐거운 과제가 되지 않을까.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확하게 드러내 떼어내는 게 절박했다”
<감옥의 몽상> 지은이 현민 인터뷰
“제겐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정리해서 떼어낼 수 없는 몇가지 장면들이 있었어요. 그 수감 경험을 제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가장 절박한 문제였어요. 독자들이 사후적으로 신영복 같은 감옥문학의 계보에서 읽으실 수 있겠지만, 제겐 <사색>은 감옥 생활을 알려주는 실용서였을 뿐 제 집필과는 무관합니다.”
30일 <한겨레>에서 만난 현민씨는 ‘감옥 체험을 글로 쓰면 신영복을 의식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감옥의 몽상>은 한겨레에서 발행했던 월간지 <나·들>에 2013~2014년 연재했던 글을 전면 수정하고, 5개 장을 새로 써서 묶은 책이다. “2009년부터 병역거부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책이 나올 때까지 10년이 걸렸어요. 이 경험을 소화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사실 감옥생활을 10년이나 생각하는 건 제 인생의 손해고 낭비잖아요. 하지만 이 책을 써야만 비로소 제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는 그 시기에 갇혀 10년을 복역한 장기수였는지 모른다.
이제 7~8년 전의 일들이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것은 그때 일을 세밀하게 기록한 노트와 편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에선 제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일기 쓰기밖에 없었고, 감옥에서 나와서는 감옥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어요. 마치 몽상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책 제목도 이렇게 정하게 됐죠.”
그는 이 책이 병역거부자의 책으로 읽히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감옥에 간 사회운동가의 책이라는 전형적인 서사로 단칼에 정리되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감옥에서 경험한 내면적이고 신체적인 감각에 관한 책으로 읽혔으면 합니다.” 이런 관점은 평화운동가가 되지 않고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 중으로 문화인류학자로 살아가려는 그의 정체성에서도 기인하는 면이 커 보였다. “문화인류학이 타자를 보며 자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학문이잖아요. 광천이 겪은 환상이라는 문제가 책 말미에 가면 저한테도 고스란히 나타나요. 그에게 있는 면을 저도 공유하기 때문에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가장 잘 쓰고 싶었고, 힘을 많이 줘서 쓴 게 광천을 다루는 5장 ‘악에 대하여’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최근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책이 나오고 며칠 만에 스르륵 살이 빠졌어요. 어느날 문득 보니 살이 빠진 이런 느낌으로 수감 경험도 제게서 빠져나가게 되지 않을까요.”
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