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과 동아시아-다른 근대의 길
나종석·조경란·신주백·강경현 엮음/도서출판b·3만원
서구중심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한국사회 고유의 근대성, 더 나아가 ‘동아시아 근대성’을 찾기 위한 작업들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21세기 실학으로서의 사회인문학’을 큰 주제로 삼고 있는 연세대 국학연구원 인문한국(HK)사업단의 연구 활동도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출간된 <유학과 동아시아>는 사업단 내 ‘사상리서치워킹그룹’이 낸 결과물로, “전통적인 동아시아 인문정신의 성찰을 기반으로 한국에서 근대성이 작동해온 방식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동아시아 근대에 대한 연구 및 서구 중심적인 사유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연구”를 보여준다. 서양철학, 동양철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한·중·일 출신 연구자들이 저마다의 관심을 논문으로 드러냈는데, 근대성의 문제를 동아시아적 맥락, 특히 유교 전통의 차원에서 사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흐름을 가진다.
시진핑 체제에서 내걸고 있는 ‘중국몽’을 강조하는 중국의 선전물. 인터넷 갈무리
‘다른 근대의 길’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책 속 논문들은 대체로 근대성 논의를 지배해온 서구중심주의적 사유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서구와는 다른 한국·동아시아 고유의 근대성을 탐색한다. “서구중심주의의 상대화 작업은 유교 전통의 탈식민화 작업과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이들 작업의 중심을 이룬다.
헤겔 전공자인 나종석의 논문들은, 민주주의를 비롯해 서구중심적인 폭력성에 기대왔던 보편적 이념들을 전체 지역과 문명에게도 닻을 내릴 수 있는 “참다운 보편적 이념”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주목된다. “세계사로부터 배제되어 버린, 식민화된 비서구 사회”의 경험과 전통은 이를 위한 필수적인 자원으로 그 의미가 결정적이라 한다. 중국 사상계를 연구해온 조경란의 논문들은,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과거 ‘근대국가’ 정립을 위한 ‘서양 따라잡기’에서 벗어나 유교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으로 관심을 끈다. 지은이는 20세기 중국이 쫓았던 ‘부강한 근대국가에 대한 욕망’(富强夢)이 이제 ‘중국몽’(中國夢)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유교라는 지속가능한 ‘대안 통치이념’의 재확립이 시급해졌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1919년 정립된 민주공화주의가 유교적 민본주의를 극복한 한국적 민주주의의 이념이자 정체라고 풀이하는 역사학자 신주백의 논문, 최근 20여년 동안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서양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담론과 논쟁을 정리한 중국인 학자 류칭의 논문 등 다양한 방식의 접근들이 눈길을 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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