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전집(전20권)
루쉰 지음, 루쉰전집번역위원회 옮김/그린비·각 권 1만8000원~3만7000원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 다케우치 요시미는 중국의 문학가 루쉰(1881~1936)을 파고들어 자기 사유의 중요한 준거로 삼았다. 왕후이, 왕샤오밍, 첸리췬, 쑨거 등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들은 루쉰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등 대체로 루쉰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의 실천적 지식인들도 “나의 글쓰는 정신이랄까, 마음가짐이랄까 하는 것은 바로 루쉰의 그것”(리영희)이라 말할 정도로 루쉰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전체 20권으로 이뤄진 ‘루쉰 전집’이 최근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간됐다. 공상철(숭실대), 김영문(청청재 대표), 김하림(조선대), 박자영(협성대), 서광덕(건국대), 유세종(한신대), 이보경(강원대), 이주노(전남대), 조관희(상명대), 천진, 한병곤(순천대), 홍석표(이화여대) 등 12명으로 이뤄진 ‘루쉰전집번역위원회’가 지난 2007년부터 11년 동안 꾸준히 작업해온 결실이다. 중국 인민문학출판사에서 1981년과 2005년 두 차례 펴냈던 ‘루쉰 전집’을 저본으로 삼았다. 이른바 ‘동아시아 근대’를 살았던 문학가·사상가의 전모를 담은 전집 출간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작업이다.
‘아큐(Q)정전’, ‘광인일기’ 같은 소설들도 유명하지만, 루쉰의 정수는 ‘잡문’(신문·잡지 등에 기고한 짧은 글)에 있다. 봉건제와 전통관념, 좌파 진영의 경직된 이데올로기 등 전후좌우의 수많은 적들과 끊임없는 전투를 벌였던 루쉰에게, ‘투창과 비수’로서 잡문은 그 의미가 크다. 루쉰이 남긴 수많은 서신과 일기 역시 그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텍스트로 꼽힌다. 이번 전집은 그동안 국내에 아예 소개되지 않았거나 일부만 띄엄띄엄 소개됐던 그의 잡문과 일기, 서신 등을 모두 담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전체 구성을 보면, 시·소설은 2권 정도의 분량이며 잡문을 담은 책이 7~8권, <중국소설사략> 등 연구서가 2권, 서신 묶음이 4권, 일기가 3권이다. 마지막 권은 연보, 색인 등 전집 전체의 참고자료다.
1928년 3월 서재에 앉아 있는 루쉰의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이렇게 완간된 전집을 통해 우리가 다시금 또는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루쉰의 의미는 무엇일까? 번역위원인 이보경 강원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번역 작업을 하면서, 루쉰이 남긴 문자 텍스트의 의미보다도 자신을 둘러싼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삶과 실천 그 자체, 어떤 태도 같은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다수 ‘동아시아 근대’의 지식인들이 그렇듯 루쉰 역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런 시대적 긴장은 피할 수 없는 역설과 모순을 만들어냈는데, 루쉰은 그 역설과 모순을 아예 자기 자신의 본질로 삼았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현실세계에서 보여준 그의 강인한 전투적 생활은 사상가 루쉰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 그를 격렬한 전투 생활로 몰고 간 것은 그의 내심에 깃든 본질적 모순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본질로부터, 그 어떤 권력이 약속하는 ‘미래’의 이상을 결코 믿지 않고 오로지 ‘현재’에 서서 모든 것을 비판하는 루쉰의 독특한 태도가 나온다. “내가 보기에 모든 이상가들은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으면 ‘미래’를 희망한다. 그런데 ‘현재’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아무도 처방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백지답안을 제출할 뿐이다.”(전집 13권 <먼 곳에서 온 편지>) ‘모로 서기’ 또는 ‘비껴 서기’ 정도로 풀이되는 ‘횡참’(橫站)은 루쉰의 이런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로 꼽힌다. 애초 뒤에서 자신에게 암전(暗箭)을 날리는 좌익 문학계의 공격을 상대하는 자신의 태도로 루쉰이 거론했던 이 말은, “과거와 미래, 동과 서를 모두 살피며 ‘현재’에 서 있는”(이보경) 루쉰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루쉰은 “고통과 긴장으로 점철되는 이런 입장과 태도를 특유의 유연함으로 끝까지 견지하고 고수했다.”(번역위원회 발간사) “영구혁명”(다케우치 요시미), “역사적 중간물”(왕후이) 등 루쉰 학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루쉰 풀이’의 여러 개념들도 모두 비슷한 맥락 위에 있다.
1933년 9월13일, 53살 생일날 찍은 루쉰의 사진. 그린비 제공
루쉰과 당시 청년 세대와의 관계도 주목해볼 만하다. 20년대 말 ‘죽어버린 아Q’라 부르는 등 자신이 보수화됐다고 비난하는 청년들을 두고, 루쉰은 연인 쉬광핑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려먹어도 좋을 때는 한껏 부려먹고 비난해도 좋을 때는 한껏 비난하고 공격해도 좋을 때는 한껏 공격한다”고 분통을 터뜨린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서신들에서 청년 문인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그들의 글쓰기를 독려하고 출판사를 소개해주고 번역 사업을 주선해주는 루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27년 화광대학에서 강연장으로 들어서는 루쉰의 모습. 그린비 제공
번역위원들은 ‘루쉰 전집’의 출간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루쉰이 중국 공산당에 의해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은데다가 이미 우리에게도 그의 소설 등이 널리 읽혀, ‘딱딱한 고전’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20세기 중국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단편적·일방적”(번역위원회 인터뷰)이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전집을 통해 우리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루쉰의 전체 세계를 읽어내는 것에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서는 어떤 실존적 울림이 담겨 있다”고 번역위원회는 주장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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