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어스-홀로코스트, 역사이자 경고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열린책들·2만8000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인종절멸(홀로코스트)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적 범죄로 꼽힌다. 열등한 종족, 심지어 ‘비(非)종족’으로 지목된 유대인을 비롯해 슬라브족, 공산주의자, 정치범,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등 무려 600만명(추정)이 가스실 또는 총구 앞에서 무참히 학살됐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홀로코스트의 배경과 과정을 설명해왔다. 독일 유대인 출신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무심하고 충직하게 ‘임무’를 수행한 나치 장교의 전범재판 항변을 보며 ‘악의 평범성’ 개념을 내놓기도 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전형적인 설명은 당시 유럽에 팽배한 ‘유대인 혐오’라는 인종 편견의 토양 위에 히틀러의 악마적 광기와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나치즘)가 결합한 만행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동유럽 현대사 전문가인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이같은 직관적·윤리적 설명만으론 홀로코스트의 실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우리말 번역본이 나온 <블랙 어스>(2015)에서 스나이더는 ‘이중점령’과 ‘국가 없는 상태’라는 개념을 두 축으로 삼아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존의 통념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나치의 학살극 주무대는 독일 영토가 아니라 소련과 독일이 번갈아 점령했으면서 국가와 제도가 파괴된 지역에 집중됐으며, 이는 독일 제3제국의 끔찍하지만 정교한 논리적 결과였다는 것이다. 독일인을 배불리 먹일 땅(동유럽의 비옥한 흑토 지대), 동시에 유대인의 유폐지였다가 결국엔 무덤이 된 ‘검은 땅’. 책의 제목이기도 한 ‘블랙 어스’(검은 땅)’는 그런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2015년 4월 폴란드 남부 오시비엥침(독일명 아우슈비츠)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터에 있는 전시물에 1940년대 이 수용소에 끌려온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오시비엥침/조일준 기자
1963년 이른바 ‘아우슈비츠 법정'에 기소된 전직 나치 친위대(SS) 대원 40여명을 비롯한 제3제국 부역자들이 프랑크푸르트 갈루스하우스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의 문제의식부터 보자.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나치 이데올로기와 결부한 것은 옳았지만, 살인자들 다수가 나치가 아니었고 심지어 독일인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는다. 홀로코스트에서 살해된 유대인은 거의 전부 독일 밖에 살았는데도, 우리는 먼저 독일 유대인을 생각한다. 살해된 유대인은 대개 강제 수용소를 본 일도 없지만, 우리는 강제 수용소를 떠올린다. 살인은 국가 제도가 파괴된 곳에서만 가능했는데도, 우리는 국가의 허물을 묻는다. 우리는 과학에 책임을 돌리고, 따라서 히틀러가 지닌 세계관의 중요한 요소를 인정한다. 우리는 나치가 이용한 단순화에 빠져 국민을 비난한다.”
그가 먼저 주목한 건 히틀러의 확신에 찼으나 뒤틀린 세계관이다. 히틀러의 세계에서 유일한 진리는 ‘정글의 법칙’이었다. 약육강식·적자생존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질서이며, ‘종족투쟁’은 논리적으로 과학적·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런 히틀러에게 유대인은 별종이었다. 그는 <나의 투쟁>(1925)에 이렇게 썼다. “유대인은 ‘흑사병보다 더 나쁜 유행병, 정신적 유행병’이었다. 유대인은 사상을 무기로 삼아 싸웠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들의 대리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한 역병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런 확신의 배경엔 ‘유대 볼셰비즘’이 있었다. 러시아 혁명(1917)은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음모이며, 혁명을 주도한 볼셰비키의 수뇌부가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나치의 선전(프로파간다) 중 가장 효과적으로 꾸며낸 이야기가 바로 유대인 세계 음모론이었다”고 갈파한 바 있다.
2015년 4월 폴란드 남부 오시비엥침(독일명 아우슈비츠)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 앞에서 한 방문객이 설명문을 읽고 있다. 오시비엥침/조일준 기자
2015년 4월 폴란드 남부 오시비엥침(독일명 아우슈비츠)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터를 찾은 방문객들이 유대인을 실어나르던 열차 화물칸 앞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오시비엥침/조일준 기자
이런 음모론은 히틀러의 ‘독일인의 생활공간’ 개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여느 민족처럼 독일도 고유의 ‘생활공간’이 필요하며 그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가진다는 이 논리는 ‘영토 확장’의 당위적 욕망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미 당대에 독일이 확장할 빈 땅이나 식민지가 더는 없다는 것.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은 유럽 자체에서 땅을 획득하는 것(…)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유럽의 공간들이 실제로 비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독일의 동쪽에서 늘 ‘외국 성분들’이 다스리는 땅”이 눈에 들어왔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소비에트 연방 영토였다. “독일이 동유럽 유대인을 제거하고 그들의 성채라는 소련을 무너뜨림으로써 세계적인 힘을 획득할 수 있다는 냉혹하고 체계적인 결론”은 어디까지나 ‘자기 방어’일 따름이었다. 유럽에서 유대인을 제거하는 것은 “지구가 치료되는 ‘생태회복’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히틀러가 처음부터 유대인 ‘절멸’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애초 구상은 유럽 땅 바깥,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쫓아내면 그만이었다. 독일이 동유럽 점령지의 유대인을 즉시 모두 죽이지 않고 게토와 수용소를 만들어 살려둔 이유도 그래서다. “독일인들에게 게토는 유대인을 어떤 이국적인 장소로 추방하기 전에 모아 두는 오수 저장 탱크”였다. 열등한 종족이 유폐돼 사라져야 할 ‘검은 땅’, 즉 ‘블랙 어스’(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는 한때 마다가스카르와 팔레스타인이었다가 나중엔 시베리아 동토로 바뀐다. 그리고 그 모든 시도가 실패하자 히틀러는 마침내 유대인 말살이라는 ‘최종 해결’을 결심한다. 학살극이 집중된 장소들은 독일의 소련 침공에 앞서 소련이 지배했던 곳, 이어 독일이 재점령해 국가를 파괴하고 소련 제도를 폐지한 곳이었다. 바로 이런 곳들이 스나이더 교수가 주목한 ‘이중 점령’ 지역이자 ‘국가 없는 상태’의 지역이다.
2015년 4월 폴란드 남부 오시비엥침(독일명 아우슈비츠)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터 안의 기념관에 나치 독일의 가스 학살 희생자들의 생전 사진이 전시돼 있다. 오시비엥침/조일준 기자
1943년 1월 폴란드 유대인들의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나치 독일군에 진압된 뒤 체포되어 방공호에서 강제로 연행되는 유대인들. 위키피디아
독일 인접국인 폴란드의 남부 오시비엥침(독일어로 아우슈비츠)에 있는 수용소는 홀로코스트의 상징적 장소이지만, 이곳에선 몇몇 유대인 생존자들이 남아서 집단기억을 전한다. 그러나 “동유럽의 ‘검은 땅’에 있던 트레블린카, 베우제츠, 소비노르, 헤움노에 들어갔던 유대인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지은이는 “홀로코스트가 아우슈비츠로만 국한되는 한 아우슈비츠는 그 영향을 받은 대다수 국가들의 바뀐 풍경과 절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우슈비츠의 둘레에 물리적인 가시철망은 물론 정신의 가시철망도 쳐져 있었”던 현실이야말로 ‘아우슈비츠의 역설’이다.
하여 지은이는 ‘국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경계하면서 국가의 선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민주적 통제를 강조한다. “국가가 없으면 권리는 당연히 유지할 수 없다.(…) 우파의 시각에서 국가를 즐겁게 부숴 버리거나, 좌파의 시각에서 마치 다 안다는 듯이 그 파편들을 응시하는 것은 유혹적이지만 위험하다.” 스나이더의 국가론에 대헤선 지난해 봄 번역본이 나온 후속작 <폭정>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