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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욕설이라는 그 ‘우아한’ 세계

등록 2018-05-17 19:30수정 2018-05-17 19:38

HOLY SHIT-욕설, 악담, 상소리가 만들어낸 세계
멀리사 모어 지음, 서정아 옮김/글항아리·2만2000원

<악의 꽃>이라는 문학사에 길이 남을 시집을 낸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말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말하는 능력을 잃고 병상 신세를 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 문구만은 잊지 않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그 말을 하는 통에 수녀들마저 그를 병원에서 내쫓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전설의 문구는 “제기랄”(cr?nom)이었다. 욕설이란 것이 얼마나 우리의 존재 깊이 남아 있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홀리 쉬트)는 중세 르네상스 영문학 고대부터 현재까지 영어라는 언어의 불경하고 천박하고 외설적인 말의 역사를 지적으로 탐색한 책이다. 저자인 멀리사 모어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영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다. 특정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거나 하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라서 오히려 학자들이 다루기 어려운 욕설의 세계를 파고든 것이 아닐까 싶다.

“왔노라, 씹했노라, 집에 갔노라.” 고대 로마의 건축물에 남겨진 낙서를 보면서 그는 고대 로마의 외설어가 지금과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여기서 그는 상소리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 한 가지를 얻어낸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사람들은 마음이 쓰이는 대상에 대해 상소리를 지껄인다. 상소리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수 세기에 걸쳐 사람들의 정서적 삶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이야깃거리들을 소소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다.”

18~19세기는 신의 몸이 물러나고 인간의 몸이 신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몸에 관련된 언어들이 금기어가 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바지조차도 “형언할 수 없는” “이름을 내걸 수 없는 것”이란 완곡어로 사용됐다. 이유는 바지를 벗을 때 사람이 벌거벗게 되고, 성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줬기 때문이란다.

빅토리아 시대에 쌓아올린 이런 수치심의 벽은 양차 세계대전 등 극단의 충격으로 무너져 내렸다. 성행위를 언급하는 말과 욕설을 공개적으로 거리낌 없이 하는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다. 집단 구성원들이 미워하는 대상을 향한 향한 욕설은 구성원들 사람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유대감을 강화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대목은 최근 국내 일부 방송인들이 공개적으로 욕설을 함으로써 인기를 끄는 이유를 얼마간 이해하게 해준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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