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지음, 김의정 옮김/글항아리·3만8000원 청나라 초기 생활실용서적 <한정우기>를 옮겼다. 희곡, 연출, 미용·의상, 주거, 가구, 음식, 가드닝, 건강 등 8부 가운데 앞부분 희곡, 연출을 제외한 6개부에 해당한다. 지은이 이어(李漁, 1611~1685)는 절강성 태생으로 명 말기에 출사를 하려다 왕조가 바뀌는 통에 이를 포기하고 마흔 살 무렵 남경으로 이주해 주변인의 삶을 살았다. 공연단을 꾸려 기획연출을 하고 스스로 희곡대본과 소설을 썼다. 출판사를 차려 자기 책과 다른 사람의 책을 펴냈다. 관심도 다양하여 희곡 외에 건축, 음식, 가드닝 등에 일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예순에 집필한 책은 관심사를 중심으로 경험에서 얻은 지식과 느낌을 집대성했다. 소재와 분량이 방대한 만큼 글쓰기 방식과 사유의 깊이가 들쭉날쭉하다.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을 많이 집어넣어 잡스런 느낌조차 든다. 당대 사회상과 지식인의 사고방식, 출판유통의 양태를 들여다보는 창으로 제격이다. 조선에서 출간된 <양화소록> 유의 원조일 법하다. 지은이는 이씨 성을 자부한다. 오얏(자두)을 ‘집안의 과일’이라고 소개하며 “이 꽃이 존재한 이래 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며 과연 자기 집안 나무답다고 설명한다. 이 책을 두고도 “모든 것을 완전하게 갖추어 백대에 걸쳐 수정되지 않을 경전”이라고 뻥친다. 스스로 근본은 사대부임을 과시한다. “내 평생 오직 저술을 좋아하여 근심도 책에 의지하여 해소하고 분노도 책에 의지해서 풀었으며, 불평불만의 기운도 책에 의지하여 제거하였다”고 썼다. 취미생활은 정도가 깊어 벽의 지경. 그가 남경(항주)으로 이사한 이유도 그곳의 수선화 때문이다. 쉰여섯 되던 해 설을 쇠면서 돈이 없어 옷을 모두 저당잡혔는데, 수선화가 필 무렵 한푼도 없었다. 가족들이 그 꽃을 한 해 못 본다고 어떻게 되겠냐고 하자 “일년 수명을 줄일지언정 한 해의 꽃을 줄일 수 없다”며 비녀와 귀걸이를 저당잡혀 수선화를 사들인 일화를 소개한다. 난향을 즐김에서도 그런 경향이 드러난다. 난초를 두는 방에 잇대어 별실을 꾸미고 두 공간을 오가며 후각을 깨워 향기를 제대로 즐겼다. 살구나무를 소개하는 데 이르면 약점이 잡힌다. 살구가 나무 가운데 가장 음탕하다고 말하고 열매가 열리지 않으면 처녀의 치마를 나무에 묶으면 주렁주렁 열매가 맺힌다고 썼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시험해보니 과연 그랬다”며 다른 나무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소신이 무척 뚜렷하다. 전문가들이 뭐라 하건 먹기 좋아하는 것을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거꾸로 입맛에 당기지 않으면 먹지 않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배고픔이 70%일 때 먹고 70%의 배부름에서 멈추라고 썼다. 죽순을 바람직한 음식으로 추천하는 대목에선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내보인다. 그가 소개하는 ‘퇴일보’(退一步) 양생법은 참고할 만하다. 여름철, 뙤약볕 아래 거닌 뒤 거실로 들어와 더위를 삭이고, 겨울철 눈바람 속을 한바탕 돌고 들어와 홑벽집의 따뜻함을 느끼는 방식. 이건 마음이 가난한 사람한테 권하는 방식으로 부자한테는 해당되지 않겠다. 재물이 행락의 자원이되 많으면 오히려 사람을 얽어매는 도구가 되기로서니, 부자한테 재물을 분배하도록 권할 수 있겠냐는 것. 그것은 산을 잡아뽑고 바다를 뛰어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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