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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본에 ‘촛불집회’ 전파하는 일본인

등록 2018-05-03 05:03수정 2018-05-03 07:35

-작가 무라야마 도시오 인터뷰-
촛불혁명 134일 기록 담은
‘광장의 목소리’ 한·일 양국서 출간
“한국 시위 문화, 일본에도 영향”
<광장의 목소리>를 출간한 무라야마 도시오(65)가 2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광장의 목소리>를 출간한 무라야마 도시오(65)가 2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987년 7월9일 연세대학교에서 치러진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에 몰려든 수많은 군중들 속엔 34살의 일본인 젊은이가 있었다. 영결식에서 열사 26명의 이름을 부르는 문익환 목사의 연설과 100만 군중과 함께 걸어서 서울시청 앞까지 행진했던 그날의 뜨거움을 그는 지난 겨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다시 느꼈다. 이젠 그 뜨거움을 잊어버린 것 같은 일본의 시민들에게 다시 일깨우기 위해 일본인 무라야마 도시오(65)는 촛불집회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가 최근 다카기 노조무(65)란 필명으로 <광장의 목소리-일본인의 눈으로 바라본 촛불혁명 134일의 기록>이란 책을 냈다. 1972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그는 전공투 등 1968년 이후 일본의 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아 대학을 중퇴하고 돼지가죽 가공공장에 취업해 7년간 일했다. 그는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 나오는 혁명가 김산에게 매료돼 1986년 한국으로 와 고려대와 연세대 어학당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그 뒤 일본 교토에 살면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관광가이드와 통역 일을 하면서 배우 안성기를 다룬 <청춘이 아니라도 좋다>(2011), 일본에서 한국으로 라면이 건너온 과정을 다룬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2015)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다음 책은 한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쓰고 싶다”는 생각에 2016년 7월 아내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현재 일본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학원 주변인 종로2가의 고시원에서 지내는 그는 가까운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2016년 10월29일 시작된 1차부터 모두 12차례 참여했다. 책은 국내 언론사 기자들이 쓴 기사에 못지 않은 촛불집회 르포와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담겼다. 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해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여 정권을 교체한 촛불집회는 일본만이 아닌 세계에 알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 책은 지난해 8월 일본에서 <한국에서 일어난 일, 일본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간됐다. 다카기씨는 웃으며 “‘아베 정권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가르쳐드립니다’라는 제목을 쓸까 생각도 해봤는데, 너무 노골적이라서 자제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한국의 시위 문화가 일본에 영향을 주는 흐름이 두드 지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의 촛불집회를 본따서 우리도 밤에 촛불을 들고 해보자고 한게 지난해부터다. 원래 일본은 주말 낮에 시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밤에는 모이지 않았었다.” 지난달 19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3만명(주최측 추산) 가량이 모인 아베 퇴진 집회에서 윤민석씨가 만든 세월호 추모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일본어로 부르는 영상이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엔 랩을 부르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원래 시위에 나와 노래를 같이 부르는 건 일본에선 없는 문화다. 87년 6월항쟁 당시에도 시위에서 민중가요를 많이 부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져서 노래 가사를 적은 기고를 일본 언론사에 보내기도 했다.”

그는 공문서 조작, 자위대 문서 은폐, 총리 친구 특혜 의혹 등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을 한” 아베 정권이 퇴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위의 규모가 작은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오랫동안 집권한 자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언론 장악 등을 통해 교묘한 시스템을 쌓아왔다. 2009년부터 3년간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는데 그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국정운영을 잘 못해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줬다. 한국에선 진보적인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유지할만큼 지지기반이 있고, 정권을 맡을 능력이 있지만 일본에선 자민당을 대신할 세력이 약하다.”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 화해 국면에서 소외를 자초한 정권이 현재 상황인식에도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 아베 정권은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최대한 이용해 선거에서 이기고 군비를 확충하는데만 관심이 있었지 갑자기 평화 국면으로 접어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보수세력은 그동안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자극해 정권을 유지해왔고, 이번에도 핵문제 해결없이 평화협정은 시기상조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아사히신문도 전적으로 통일과 화해를 지지하는 논조는 아니다”라고 일본의 여론을 전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의 교류가 희망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한국에선 동학농민운동부터 내려오는 민중항쟁의 역사가 있고 이번 촛불집회도 그런 역사를 이어받은 것이다. 반면 일본은 1960~70년대 투쟁의 경험을 이어받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이 저항의 경험을 공유하고 돕는다면 고착화된 일본의 정치 상황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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