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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반도 평화체제’를 넘어 ‘동북아 비핵무기지대’로

등록 2018-04-26 20:25수정 2018-04-27 18:16

한반도 문제 전문가 이삼성 교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큰 틀과
촘촘한 팩트 바탕된 현실 분석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핵무장국가 북한과 세계의 선택
이삼성 지음/한길사·2만7000원

2017년은 1990년대 중반 전쟁 위기로까지 치달았던 ‘북핵’ 위기가 다시금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달은 시기였다.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매진해왔던 북한은 2017년 9월 6차 핵실험과 잇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 시험 등을 거치며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이 실현됐다”고 선포하는 데 이르렀다. 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듯 보였을 때, ‘평화’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삼아 얼어붙었던 남북 대화가 활성화됐고, 그 결과 오늘(4월27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이라며 “비핵화” 의지를 천명한 상태다. 과연 이 새로운 흐름은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를 어디로 데려갈까?

2017년 11월30일 북한이 공개한 화성-15형 발사 장면. 화성-15형은 미국의 선제타격 가능성과 그 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북한이 개발하고 있으며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한길사 제공
2017년 11월30일 북한이 공개한 화성-15형 발사 장면. 화성-15형은 미국의 선제타격 가능성과 그 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북한이 개발하고 있으며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한길사 제공

때마침 한반도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학자 이삼성 한림대 교수(정치행정학과)의 새 책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가 출간됐다. 한반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일구는 길을 천착해온 지은이의 사유를 담은 책이다. 수없이 많은 팩트들을 꼼꼼하게 점검하는 한편 현실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거대 담론까지 검토하며, 지은이는 사법적·군사적 접근이 아닌 정치적·외교적 접근을 통해서만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의 질곡을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현실의 구조를 드러내고,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왜곡된 인식 체계를 공격해 무력화시키는 것이 그의 주된 작업이다.

2017년 9월3일 북한이 공개한 영상의 한 장면. 이날 북한이 강행한 6차 핵실험은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정을 받았다. 한길사 제공
2017년 9월3일 북한이 공개한 영상의 한 장면. 이날 북한이 강행한 6차 핵실험은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정을 받았다. 한길사 제공

일각에선 최근 북한의 ‘평화 제스처’가 ‘시간 벌기’ 작전에 불과하며 북한은 핵무장을 포기할 의도가 근본적으로 없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한미 양국은 북한을 진지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이 요구하는 평화협정에 응하지 않으면서 군사적 압박에 골몰했지만, 전면적인 전쟁의 참화와 위험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고 비판한다. 쉽게 말해 오늘날 ‘핵무장 국가’ 북한은 ‘언젠간 망할 것’이라는 강경보수파의 ‘전략적 인내’ 속에서 만들어진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90년대 북핵 위기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체결했던 ‘제네바 합의’의 파기는, 정치·외교적 해법을 외면하고 사법·군사적 접근만 고집해 실패를 낳은 역사적 선례이자 오늘날 위기의 출발점이다. 지은이는 애초 ‘에너지 생산 목적’과 ‘군사적 목적’ 둘 다 염두에 뒀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미국의 압박과 ‘상호작용’을 하며 군사적 목적으로만 흐르게 됐다고 짚는다.

2017년 9월3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군인이 북한이 6차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내용의 방송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7년 9월3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군인이 북한이 6차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내용의 방송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처럼 개별적인 팩트와 국면에 대한 분석 자체도 촘촘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사유의 큰 틀이다. 지은이는,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질서의 연속성이 강하며, 중층적이고 다차원적인 동시에 상호작용성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고 본다. ‘대분단체제’의 기축은 미국과 일본의 연합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라 할 수 있는데, 한반도의 휴전선을 비롯해 다양한 국지적 분단들이 이와 중층적인 상호작용을 벌인다는 풀이다. 지은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대분단체제’가 서로 적대적인 군사동맹체계로 양극화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서로의 군사적 위협을 줄여 ‘공동안보’로 나아가는 것이 절실하다.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는 단지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만드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궁극적 목표는 동아시아 전반에 공동안보의 질서를 확장하는 것”이며, 그 출발점은 '동북아 비핵무기지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것은 남북한과 일본 등 세 나라가 핵무기의 제조와 반입 등을 배제하는 비핵무기지대를 만들고, 미국, 중국, 러시아는 이 지대 안에서 핵무기의 사용, 반입, 통과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6자회담은 그러한 노력을 뒷받침할 조건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지난 2월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에 참석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 북한대표단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지난 2월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에 참석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 북한대표단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1년 만에 다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의 큰 의미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핵무장 완성은 한국의 진보적 정권 출범과 결합하여 한국의 균형외교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외교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지은이는 “한국의 균형외교가 열어낸 새로운 공간 속에서, 북한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종속이나 의존에서 탈피해 자주외교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주외교의 길은 북한으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핵무장을 해체하는 결심을 포함해 미국과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또 이렇게 구축된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질곡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야를 확보하게 해줄 것이다.

남북, 북미 협상에 대한 지은이의 구체적인 분석과 제안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핵무장도, 비핵화 선언도, 북한에겐 결국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수단이다. 미국의 ‘핵 선제 사용’ 전략뿐 아니라 ‘첨단 재래식’ 전쟁 능력에서의 심각한 비대칭도 북한으로선 큰 위협이다. 때문에 지은이는 “미국은 북한에게 ‘핵 선제 사용’ 구상을 배제하는 소극적 안전보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첨단 재래식’ 무기체계에 의한 위협 또한 신뢰성 있게 배제해야 할 것”이라 말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유연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지은이는 김정은 위원장 역시 ‘선대의 유훈’을 들어 주한미군 철수를 평화협정 체결의 필수조건으로 고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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