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동화책 출판사 원더블리는 출판 기술에 컴퓨터 코딩기술을 접목해 각각 다른 이야기가 담긴 맞춤형 동화책을 만들어 주는 ‘로스트 마이 네임’ 서비스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5년 출판사로서는 이례적으로 구글 벤처 등으로부터 900만 달러(약 1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원더블리 누리집 갈무리
국내외 출판계에선 종이책 대신 새로운 개념과 형태의 책들이 독자들을 찾아가는 ‘실험’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여는 제2차 ‘책 생태계 비전 포럼'이 ‘책의 새로운 얼굴'이라는 주제로 26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에선 전자책(ebook), 가상현실(VR)책, 증강현실(AR)책, 오디오북, 블록체인북 등 디지털 신기술을 적용한 다양한 개념의 책실험에 성공한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례들을 조명했다.
가장 먼저 독자들을 만나온 전자책에서도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 출판 그룹 하퍼콜린스는 ‘임펄스’라는 디지털 임프린트 브랜드를 만들어 무명,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1~3천원에 팔고, 선인세 없이 판매 수익에 따라 인세를 정산하는 새로운 모델을 선보였다. 2016년 출시된 독일의 ‘파페고' 앱은 종이책을 산 뒤에 앱으로 종이책 페이지를 찍으면 읽은 부분부터 최대 25%까지 전자책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종이책을 사도 전자책의 편리함까지 누릴 수 있도록 해 종이책의 판매를 돕는 기술인 것이다.
책의 ‘개인화’도 중요한 흐름이다. ‘슬라이스북'은 독자가 기존의 전자책에서 원하는 부분을 뽑아내 새롭게 편집해 만든 자신만의 책을 말한다. 국내 출판사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선 이미 2009년부터 대학교수 등이 필요한 부분만 골라 교재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리딩패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의 동화책 출판사 원더블리는 독자인 아이의 이름 철자에 따라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담긴 종이책을 제작해 보내주는 서비스 ‘로스트 마이 네임'으로 전 세계에 200만부를 팔았다. 이중호 한국출판콘텐츠 대표는 “종이책의 장점도 아직 많기 때문에 종이책에 다양한 기술이 결합하는 형태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보통신기업 ‘퀀텀 스토리 컴퍼니’는 눈싸움 놀이 등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가상현실(VR)책 ‘오퍼레이션 유’를 선보였다. 지난해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8 국제가전제품박람회(CES)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보통신기업 ‘퀀텀 스토리 컴퍼니’는 눈싸움 놀이 등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가상현실(VR)책 ‘오퍼레이션 유’를 선보였다. 지난해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8 국제가전제품박람회(CES)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가상현실·증강현실책은 기존의 책의 개념을 근본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선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가상현실책 ‘오퍼레이션 유’가 여러 매체에서 우수 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책의 배경이 된 장소에서 마치 포켓몬고를 하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보물찾기 등 다양한 임무를 부여해 해결해나가도록 하는 ‘스토리 투어리스트’ 서비스는 스웨덴의 벤처 기업 경연대회 ‘우수 기업 20’에 선정됐다.
26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열린 제2차 책 생태계 포럼에서 발표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18 책의 해 조직위 제공
오디오북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영역이다. 미국에선 오디오북 시장이 지난해엔 25억달러가량의 매출을 기록해 5년 전보다 두배 가량 성장했고, 매년 출판 종수도 30%씩 증가하고 있다. 이는 중국, 영국, 독일도 비슷한 상황이다. 특히 ‘아마존 에코’와 ‘구글홈’ 등 음성제어 인공지능 스피커가 확산되고,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이 오디오북 기능을 추가하는 등 기기의 발전이 오디오북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 서정호 미디어창비 디지털사업본부장은 “현재로선 국내 오디오북 컨텐츠가 부족해서 독자들이 잘 찾지 않는데, 초기 전자책처럼 정부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오디오북 출판을 지원한다면 곧 많은 독자들이 호응할 것”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도 새로운 책 유통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글을 쓴 사람에게 전자화폐를 지급하는 ‘스팀잇’처럼 종이책 출판으로 받을 수 있는 인세보다 더 많은 수익을 주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작가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코인으로 투자하는 블록체인 기업 ‘퍼블리카’도 만들어졌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은 중고서적 거래에 잠재력이 크다. 김성민 아이웰콘텐츠 대표는 “중고책 거래 내역이 블록체인에 투명하게 저장된다면 거래할 때마다 저자와 출판사에게 인세를 지급할 수 있다. 그러면 독자는 책을 중고로 쉽게 팔 수 있으니 부담 없이 새 책을 사고, 저자와 출판사도 중고 거래마다 수익이 발생해서 서로 이득”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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