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어릴적 도살장 가는 소 보며 느낀 안타까움
미 유학 때 경험 통해 동물보호운동으로 이어져
복제개 스너피 나왔을 때 동물실험 반대 외쳤지만
기사 한줄 안 나오는 것 보고 충격 받아
“동물보호는 결국 인간보호…친구처럼 대해야”
권은정의 인터뷰 무제한/생명체 학대방지 포럼 박창길 대표
멧돼지는 나쁘다. 밤중에 나타나 아파트 주민을 놀라게 하고 길 가던 무고한 시민을 다치게 했다. 경찰, 소방대, 경비원 아저씨들이 아무리 쫓아가도 고분고분 잡히지도 않았다. 거무튀튀하게 고집도 세게 생긴 놈이 애를 먹이더니 결국 잡혀 몽둥이에 맞았는지 피를 흘리며 끌려간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줄 몰랐을까? 우리의 ‘안 친절한’ 인간성을 드러내게 만든 나쁜 멧돼지들. 그들은 왜 도시의 불빛을 찾았을까? 생명체학대방지포럼을 맡고 있는 박창길 대표(57.성공회대학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인간이 오히려 멧돼지 영역 침범
“글쎄요. 도시로 왜 나오는지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멧돼지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없어요. 어디에, 얼마나 살고 있는지 잘 모르지요. 멧돼지를 깡패처럼 다루는데, 강도 추적하듯이 잡는 과정도 아주 잔인해요…. 인간에게 불편을 끼친다고 해서 극단적이고 손쉬운 해결책을 쓴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그가 약간 일반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내가 알기로 그는 동물보호에 관한 한 너무나 원칙적이어서 때론 근본주의적인 면이 있는 분인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말을 잇는다.
“그런데 말이죠. 멧돼지에게도 일종의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의 국가를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만이 이 땅의 주인은 아니잖습니까? 모두가 자기 영역을 이루고 살 권리가 있어요. 멧돼지가 우리를 침입한 게 아니고 우리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는 왜 생각하지 않지요? 개발한다고 산속을 헤집어 놓은 건 우리입니다. 동물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주 쉽게 잊어버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문제.” 그가 절대 낭만적인 얘기가 아니라고 하건만 나는 눈앞에 만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멧돼지 국가, 오소리 나라, 수달의 영토…. 이번에는 그가 약간 톤을 낮춰 말한다. “제가 한 말이 아니고 호주의 플럼우드라는 여성학자가 한국에 와서 한 말입니다.”
박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이었다.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도 자리를 함께 했던 동물보호운동 기자회견 자리였다. 느린 톤이지만 자기 확신이 강한 그의 침착한 어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드러나게 앞장서서 운동하지 않는데도 그의 활동 내용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동물의 편에 서서 말하기 시작한 지 햇수로 6년. 그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몇 년 사이에 아주 좋아졌다고 인정한다.
“동물 보호소나 유기동물 이야기도 뉴스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동물학대사건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심도 놀랄 정도이고요. 지난번 대못 고양이 사건 같은 것을 그냥 두고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만 보더라도 관심의 정도가 아주 높아진 것 같습니다.”
박 대표가 공부한 것이나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도 동물이나 생명체학대방지 운동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동물보호운동가로 나선 특별한 계기 또한 없다. 중학생 때였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면서 동물의 운명에 절망감, 안타까움을 느낀 기억이 그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다고 하면 되려나.
“인간은 싸울 수 있지만 동물은 그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구나 하는 절망감을 느꼈지요. 운동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공부하러 미국 갔다가 동물보호 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났지요. 인간이 운동해서 동물들의 처우가 개선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 운동이 큰 흐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큰 기쁨이었지요.”
그는 현재 한창 진행 중인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해 여러 단체가 힘을 모으고 있는데 거기서도 앞장서고 있다. 활동을 하면서 그는 이 분야 운동이 언론으로부터 많이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지난번 복제견 스너피 출현 때 동물단체들이 동물실험 반대피켓을 들고 서울대 수의학과 앞에서 시위를 했었다. 수많은 기자들이 그들을 보았을 텐데도 단 한 줄의 기사도 실리지 않은 것을 보고 충격이 컸다. 생명과학의 발전을 알리는 축포소리에 동물보호 운운하는 ‘엉뚱한’ 목소리는 뭉개져 버렸다.
‘고통 느끼는 동물’ 실험 안돼
굳이 멋들어진 과학발전과 겨루지 않더라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동물권은 언제나 뒷전이다. 조류독감으로 비상이 걸리면 닭, 오리들은 산채로 땅에 묻힌다. 병 발생 이전 단계의 인간의 책임이나 의무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대수롭지 않은 존재’인 가축들이 사라져 갈 뿐이다. 그는 몇 년 전 있었던 구제역 발생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군대를 동원해 1만 마리를 1주일간 생매장했습니다. 돼지를 산채로 묻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또 돼지를 묻고.” 이 일을 한 젊은 군인들도 처음엔 괴로워하다 나중에는 눈에 핏발이 서더라고 한다.
동물에 대한 학대는 결국 타인에 대한 착취의 시작이 아닌가. 동물을 보호하자는 말은 결국 인간을 보호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은 진짜 모르는지, 아니면 모른 척 하는지 그는 안타깝기만 하다.
박 대표는 국민적 관심사인 생명공학 문제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생각의 자락을 폈다. 그는 무지 할말이 많지만 일단 동물실험법에서 그 대상을 ‘고통을 인식하는 모든 동물’로 규정할 것을 요구했다.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할 때 생물학적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게 근대국가에서의 일반적인 윤리 기준입니다. 서구에서는 그 대상을 모든 척추동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 말, 돼지, 개와 기타 청장이 정하는 동물로 한정되지요.”
무슨 청장? 그가 대답한다.
“식약청장이지요. 기타 동물이라 함은 식약청에서는 청장이 정하는 대로, 또 농림부는 장관이 정하는 대로 정해집니다. 그때 그때 경우에 따라 정하겠다는 것이지요. 허, 참…. 윤리적인 인식이 아직 없다는 징표이지요.” 이 대목에서 그의 헛웃음이 섞인다.
그는 파충류, 곤충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올챙이나 매미를 채집해 들여다 보고 나서는 함부로 버리는 게 과연 옳은가 물어볼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채식주의자다. 가죽 제품을 쓰지 않지만 돈을 넣고 다닐 지갑은 필요하다. 가게에 가서 제일 싼 걸 고른단다. 싼 것은 대부분 가죽이 아닌 ‘내자’이니까. 그가 확인 차원에서, “이거 진짜 가죽 아니지요?”하고 물으면 가게주인은 백이면 백, 펄쩍 뛰면서 “그 무슨 섭한 말씀, 만져보시라, 백 프로 소가죽이다”라고 우긴단다. 결국 그는 지갑을 못 사고 그냥 나온다. 주인이 우기니 명분을 찾지 못해서다. 좀 답답하다. 뭘 물어보나, 대충 그냥 사들고 나와서 쓰면 될텐데. 이점에서 그가 보통사람들과 다르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는 아주 원칙적이다. 그는 집에서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좁은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아, 한번 닭을 키운 적은 있다.
“아이가 병아리를 사가지고 왔는데 점점 크더군요. 방이다 거실이다 돌아다니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부모님 댁에 보냈지요. 마당이 있거든요. 그런데 닭이 사납다고 싫어하셨어요. 닭한테 알맞은 거처를 찾아주느라 애를 먹었지요. 나중에 시골에 사는 친척이 기를 수 있다고 하고 또 절대 잡아먹지 않겠다고 서약을 해서 데려다 줬지요.” 결국 닭은 인근 야생동물에게 채여가고 말았노라고 말할 때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음을 나는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길을 가다가도 동물이 죽어 있으면 지나치지 않는다. 잘 수습해서 ‘편하게 쉴 수 있게’ 묻어준다. 그의 학교 연구실은 주인 잃은 고양이가 새 거처를 찾을 때 까지 잠시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자…가죽 제품도 안써
반려동물 1천만 시대가 되었다. 정부는 내년부터 예방접종, 목줄, 배변봉투를 준비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매기기로 결정했다는데 그의 의견은 이렇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지금 초등학교 교과서만 보더라도 아이들한테 동물에 대해 말해주는 내용이 없어요. 버려지는 유기동물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데 책임감 없이 동물을 충동적으로 구입한 탓이지요.
장난감이 아니라 친구나 벗, 반려의 의미로 동물을 대해야 해요. 동물의 수명이 한 15년이라고 하면 그동안 감당할 수 있나, 또 동물의 고유한 생활방식이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심사숙고 해야지요.” 한 철 반짝하고 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인다.
“우리가 결혼할 때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동물을 대하는 그의 태도, 우직하게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박대표를 보니 대충, 그까이 꺼, 하면서 제 속 편한대로 사는 내가 좀 부끄러워진다.
“그런데 말이죠. 멧돼지에게도 일종의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의 국가를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만이 이 땅의 주인은 아니잖습니까? 모두가 자기 영역을 이루고 살 권리가 있어요. 멧돼지가 우리를 침입한 게 아니고 우리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는 왜 생각하지 않지요? 개발한다고 산속을 헤집어 놓은 건 우리입니다. 동물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주 쉽게 잊어버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문제.” 그가 절대 낭만적인 얘기가 아니라고 하건만 나는 눈앞에 만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멧돼지 국가, 오소리 나라, 수달의 영토…. 이번에는 그가 약간 톤을 낮춰 말한다. “제가 한 말이 아니고 호주의 플럼우드라는 여성학자가 한국에 와서 한 말입니다.”
채식주의자이자 근본주의적 동물보호론자로서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박창길 교수. 그에게 ‘애완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라 친구나 벗이자 반려의 의미를 가진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권은정/전문 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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