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황광수 지음/아르테·1만8800원
〈니체-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
이진우 지음/아르테·1만8800원
〈클림트-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전원경 지음/아르테·1만8800원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 카뮈, 나쓰메 소세키, 베냐민, 프로이트, 마르크스, 아리스토텔레스, 아인슈타인, 베토벤….
인류의 사상과 문화·예술사에 불멸의 명성을 남긴 거장들이다. 추천 도서나 명작 감상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황홀하지만 머리깨나 무거운 이름들. ‘언젠가 꼭 읽어야지(감상해야지)’ 하면서도, 바빠서, 어려워서, 가닥이 안 잡혀서, 미뤄졌던 이름들이기도 하다.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으면서도 작가의 삶과 작품의 고갱이를 놓치지 않게 다가갈 순 없을까? 그런 이들에게 맞춤한 책들이 시리즈로 나온다. 출판사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그것.
니체 초상화(에드바르 뭉크, 1906년) 아르테 제공
‘푸른 작업복을 입은 클림트’(에곤 실레, 1913년) 아르테 제공
셰익스피어 초상화(작자 미상, 1610년경) 아르테 제공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라는 콘셉트를 내건 ‘클래식 클라우드’는 한국의 대표 작가 100명이 친절하면서도 전문적 식견을 갖춘 여행 가이드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 속에만 머물 뿐 눈길이 채 닿지 않았던 고전 명작의 세계로 안내한다. 국내에서 특정 분야 또는 장르에 집중한 기행문이나 답사기 형식의 단행본은 제법 있지만, 이번처럼 여러 장르를 망라한 대규모 기획 출판은 처음이다. 아르테 쪽은 “김영곤 대표가 아주 오래 전부터 이 기획을 구상했으며, 전문가 자문을 얻어 시리즈 목록과 최적의 필자를 확정하고 구체적인 기획과 현지 취재 등 프로젝트 진행은 2013년부터 본격화했다”고 밝혔다.
이 시리즈는 기획의 방대한 규모와 치밀한 구성, 독특한 방식으로 눈길을 붙든다. 문학, 철학, 음악, 미술, 과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거장 100명을 선정한 뒤, 해당 분야의 국내 전문가 100명이 각각 짝을 이뤄 한 권씩의 단행본을 내놓을 계획이다. 취재와 집필을 맡은 지은이들은 거장들이 태어나고 사랑하고 방황하고 고뇌하며 명작들을 잉태하고 탄생시킨 공간들을 찾아 작가의 숨결과 사유를 더듬는다. 그렇게 다닌 곳만 유럽·미주·아시아 등 세계 12개국 154개 도시에 이른다. 필자들의 해외 취재 비용은 출판사가 지원했다.
각 책들에선 명작들의 내용을 작가가 살았던 시공간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들여다보고 세밀한 해설을 곁들인다. 작품과 방문지의 컬러 사진들, 작가의 발자취를 좇은 지은이의 동선을 표시한 지도는 독자가 지은이와 함께 여행하는 것 같은 현장감을 주면서 입체적이고 풍부한 이해를 돕는다. 이때 여행지는 거장이 직접 발을 디딘 곳일 수도, 단지 거장의 상상 속에서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일 수도 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인류 문화유산이랄 만한 고전 작품의 세계로 답사여행을 떠나는 동시에, 작가의 깊숙한 사유 세계를 거니는 내면여행을 하게 된다.
프랑스 파리의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전경(왼쪽) 과 내부. ⓒ이승원, 아르테 제공
첫 세 권의 주인공은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제1권 <셰익스피어>의 안내자이자 지은이는 출판 편집 20년에 이어 문학평론 30년째인 황광수씨. 그가 꼭 일흔살이 되던 2014년 여름 혼자서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책의 부제) 유럽 여러 나라의 21개 도시를 누빈 취재 여행길은 고스란히 ‘셰익스피어 루트’가 되어 책에서 되살아난다.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영국을 벗어나 유럽 여행을 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상상력만으로 전 유럽을 무대로 한 작품의 배경 장소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예컨대 햄릿, 오셀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각각 헬싱외르(덴마크), 베네치아와 베로나(이탈리아)라는 도시가 아니라면 형상화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지은이는 16세기 셰익스피어 시대의 원통형 극장을 재현한 런던 셰익스피어 글로브에서 기원전 1세기 지중해 세계를 무대로 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감상하며 셰익스피어 사극의 특징을 정리하는가 하면, 베네치아의 운하길을 따라 <베니스의 상인>을 만나는 시간여행을 떠난다.
스위스 알프스 알불라 산의 율리어 고개(해발 2284미터).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라인강과 흑해로 흘러가는 도나우강이 갈라지는 유럽의 분수령이다. 기독교적 가치관에 굳어진 선과 악의 저편에서 새로운 도덕을 만들고자 했던 니체는 이 상징적인 고개를 넘었다. 아르테 제공.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카스파르 프리드리히, 1818). 니체는 마지막 저작인 <이 사람을 보라>(1888)에서 “내 글들의 공기를 호흡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든 그것이 높은 곳의 강렬한 공기라는 걸 안다”고 설파했다.
<니체>에선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가 ‘망치를 들고 신과 대면한 철학자’의 궤적을 좇았다. 니체가 24살 때 교수직을 얻은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시작해, 알프스와 그 너머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를 거쳐 다시 독일 뢰켄의 생가와 묘지까지, 니체가 스스로를 유폐하며 방랑한 길을 따라가며 니체 사상과 작품이 영글어가는 과정을 재구성한다. 해발 1800미터의 알프스 고산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음성을 듣고 ‘영원회귀’ 사상을 정초하는 과정, 프랑스 니스에 머물면서 ‘권력에의 의지’ 개념을 바탕으로 기존 가치체계를 전복하던 시절, 베네치아에서 지적 영감을 주는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 광기와 발작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인간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다”(<이 사람을 보라>)라며 파괴의 철학을 완성해간 만년까지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클림트, 1907). 아르테 제공.
<클림트>는 예술비평과 문화콘텐츠산업을 공부한 전원경씨가 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은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림트의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좇아 예술의 도시 빈의 곳곳을 찾아다닌 책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명으로 지어진 부르크 극장의 천장화, 레오폴트 미술관과 빈 미술사 박물관, ‘키스’ ‘유디트’ ‘신부’ 등 클림트의 대표작들이 걸린 벨베데레 미술관, 클림트가 뇌출혈로 스러지기까지 마지막 창작혼을 불태웠던 클림트 빌라 등이 포함돼 있다.
황금빛 화가 클림트가 평생 가장 사랑한 여인 에밀리 플뢰케에게 보낸 편지들. 아르테 제공
아르테의 원미선 문학사업본부장은 “시리즈의 책들은 거장들의 다채로움만큼이나 지은이들의 문체와 콘텐츠의 결이 다르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 구성상의 공통점도 있다”고 밝혔다. 우선, 책의 앞날개를 펼치면 가장 먼저 거장의 초상을 만난다. 다음 쪽에는 작품과 관련된 대표 이미지(사진 또는 그림)를 실었다. 그 뒷면엔 지은이가 거장의 흔적들을 찾아다닌 여정을 지도로 한눈에 보여주고, 각 장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달았다. 이어 프롤로그에서 지은이가 “나에게 OOO는 누구인가. 왜 지금 OOO인가’를 설명한 뒤, 독자와 함께 본격적인 여행길에 오른다. 또 맨 뒤에는 에필로그에 이어 ‘키워드로 본 작가의 작품 세계’, 그리고 거장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들에 초점을 맞춘 작가 연보를 인포그래픽으로 곁들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