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에서 1인 출판사 온다프레스를 차린 박대우 대표(왼쪽)와 속초시에서 서점과 게스트하우스를 결합한 ‘북스테이 완벽한 날들’을 운영하는 최윤복 대표. 박 대표는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 쑥스럽다며 책으로 얼굴을 살짝 가렸다. 최 대표는 온다프레스의 첫번째 책인 ‘온다 씨의 강원도’에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온다.’ ‘파도’라는 뜻의 이탈리아 단어다. 잔잔한 파도가 치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 해수욕장 근처에 ‘온다프레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1인 출판사가 생겼다. 국내 출판사 중에 가장 높은 곳(위도)에 있을 이곳은 출판편집자 박대우(41) 대표가 아내, 딸과 함께 사는 집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지난해 8월 고성으로 이주했다. 그는 계간지 <황해문화>, 개마고원, 창비 출판사를 거쳐 13년간 편집자로 일해온 베테랑 편집자였다. 그런 그에게 언제부턴가 불면증이 찾아왔다. 48시간 또는 72시간 동안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과감하게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랑 어울리지 않는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산책을 사랑하는 그에게 서울의 미세먼지는 남들보다 큰 고통이었다. 회사 동료들을 이끌고 파주 출판단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정도로 산책광이지만 잿빛 하늘로 뒤덮여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지난해 초 하루 여행을 온 고성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세먼지에 지쳐 있던 중 ‘한국에서 가장 청정한’이라는 수식어에 이끌려 와보니 단번에 ‘여기서 살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해 6월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돼 고성, 속초와 서울이 차로 2시간 내외면 갈 수 있는 곳이 된 점도 좋았다. 지난해 6월 창비를 퇴사해 목공학교에서 목공을 배운 뒤 두 달 뒤 고성으로 이주했다.
애초엔 출판 편집이 아닌 목공이나 뱃일, 명태 손질 같은 몸으로 하는 일을 하려고 했지만 막상 일을 맡기란 쉽지 않았다. 마침 강원산업경제진흥원에서 창업 지원 사업을 보곤 하루 만에 기획안을 써내 출판 지원금을 받았고, 출판사를 만들게 됐다. 그는 “다시 출판을 하게 됐지만, 이제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가 내고 싶은 책을 내게 된 점이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출간한 출판사의 첫 책 <온다 씨의 강원도>에는 최근 강원도 양양, 속초, 고성으로 이주한 20~30대 9명의 인터뷰가 담겼다. 박 대표로선 ‘이주 선배'들이 왜 이곳에 왔고,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스테이 완벽한 날들’ 운영자 최윤복 대표와 딸이 다니는 아야진초등학교 교사이자 시인인 박성진씨 등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주변 사람들과 이들로부터 소개받은 서핑숍 대표, 조선소 운영자, 지역 활동가 등이 그들이다. 창비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 편집자이자 이젠 사진가이면서 작가인 김준연(아이엔티 스튜디오 대표)씨가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정리하고 글을 덧붙였다. 산책을 좋아하는 박 대표답게, 각 사람에게 자신만의 산책길과 맛집을 추천받아 넣었다.
앞으로 온다프레스는 인터뷰집을 주요하게 낼 생각이다. 재즈 뮤지션 팻 메시니의 인터뷰집 <팻 메시니>와 시장 상인들을 인터뷰한 <이야기를 그려 드립니다>도 잇따라 출간했다. 절판된 솔로몬 볼코프의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상록 <증언>도 판권을 가져와 다시 출간할 예정이다.
고성 지역의 집값이 경기 일산에서 살던 아파트보다 더 비쌀 정도로 집값이 폭등하는 중이라 월셋집밖엔 구할 수 없었지만, 일산으로 다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이번달부터는 집 앞 봉포해변에서 서핑을 배우고, 다음달엔 해변에 텐트 쳐놓고 사무실로 쓸 생각이다. 창비에서 받아온 외주 편집일과 출판사 일, 아내가 하는 책 디자인 수입을 합치면 세 가족이 살아갈 만하다.
어디서든 고개를 들면 설악산이 보이고, 밤에 누우면 파도 소리가 들려오며, 새벽에 동네 공판장에 나가면 갓 잡은 팔뚝만한 방어 세 마리를 1만원에 살 수 있는 이곳. 여기서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고성/글·사진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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