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류승연 지음/푸른숲·1만5000원
개그맨 심형래와 정준하, 배우 김수현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동네 바보 형'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심형래는 ‘영구'라는 개그 캐릭터로, 정준하는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김수현은 동명의 웹툰을 영화화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모두가 이들을 보며 웃을 때, 같이 웃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다.
지난해 8월 <허핑턴 포스트>에 “티브이에서 ‘동네 바보 형'을 추방합시다!”라는 글을 쓴 이가 있다. 전직 기자이자 10살짜리 발달장애 아들을 둔 류승연씨다. 류씨도 자신이 ‘장애’와 관련된 삶을 살리라곤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학구열이 높은 부모님 덕에 강남 대치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못된 성질머리를 살려서” 기자가 됐다. <아시아 투데이> 정치부 등 6년간 기자로 국회를 출입하며 40대 정치부장, 50대 편집국장을 꿈꾼 당차고 독한 기자였다. 그러던 2009년 9월,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결혼하고 3년이 되도록 아이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인공수정을 통해 쌍둥이를 임신했다. 아이들은 예정보다 3개월 빨리 나왔지만, 정작 출산 과정에선 둘째 아이가 뱃속에서 너무 오래 지체했다. 아들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대변을 가리지 못했다. 집안 곳곳에 볼일을 봐놓기 일쑤였다. 잠결에 용변을 보고 기저귀를 빼내서 아침에 가보면 이불, 바닥, 책상까지 똥이 묻어 있기도 했다. 아들에게 선긋기, 오려붙이기 같은 초등학교 수업은, 일반인이 양자역학을 배우는 것과 진배없다.
하지만 장애 아이만이 주는 기쁨도 있다. 항상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노출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아이를 보면 가족들도 덩달아 순수해진다. 이런 일이 있었다. 아들은 집에 손님이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손님이 집에 가려 한다’고 생각한 아들은 다급히 손님들의 외투를 안아다 부엌에 던진다. 그러면 외투가 안 보여서 손님들이 집에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애가 없는 아이 부모보다 행복이 두 배 정도 많다면 힘든 일은 대략 열 배쯤 많은 것 같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데는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 한 장애아이를 둔 선배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장애 아이 엄마들 사이에 그런 말이 있어. 한 달에 1백만원을 투자하면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서너 살 수준의 학습 능력밖에 못 갖지만, 2백만원 이상씩 투자하면 초등학교 3, 4학년 수준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고. 3, 4학년만 돼도 한글 읽을 줄 알고 더하기 빼기 다 할 수 있으니 사람 구실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거지.” 이런 말을 듣고도 재활치료를 받게 하지 않을 부모들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치료가 많으니 치료비를 감당하기가 만만찮다.
하지만 이런 치료도 맘대로 받을 수 없다. 원하는 치료를 받기 위해선 300~500 대 1에 이르는 경쟁률을 뚫거나, 2년씩은 기다려야 한다. “대치동 엄마들? 흥!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대치동 엄마들보다 더한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게 바로 우리 장애 아이 엄마들이랑께!”
속 터지는 행정 시스템도 엄마를 싸움닭이 되게 한다. 아이는 말도 못 하고, 지능이 2~3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장애 1등급이 분명한데도, 병원에선 다른 아이들의 점수와 평균을 내는 이상한 방식으로 2등급 판정을 냈다. 주민센터 공무원들도 2년 정도 되면 담당자가 계속 바뀌어서 장애 업무를 잘 몰라, 부모들이 서류 작업을 수차례 다시 해야 하는 헛고생을 하기도 한다.
제일 아쉬운 것은, 아프면 의사, 소송은 변호사를 찾아가면 되지만, 장애를 얻게 되면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류씨는 장애인 교통카드 사용법부터 특수교육 신청까지 번번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그가 “장애 컨설턴트가 절실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의 저자 류승연씨(왼쪽 두번째)가 장애가 있는 아들 동환이(맨 오른쪽) 등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류씨는 “장애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장애가 이 사회의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푸른숲 제공
책 곳곳에서 어떤 어려움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긍정의 힘으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그지만, 그 또한 진지하게 아이와 같이 죽는 것을 고민한 적이 있다. 비장애인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 학부모들이 교육부에 아들의 퇴학을 요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였다. 아이가 주변 아이를 할퀴는 일이 몇 번 있고 난 후였다. 그 일 직후에 탈장 수술까지 받아 누워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류씨는 ‘이대로 아들과 같이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고쳐야 할 대상은 자신이나 아들이 아닌 세상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온라인 매체에 연재를 시작했고, 지난 2년간 쓴 글을 묶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펴냈다. 4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류씨는 “장애아 육아 수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보통 수기는 장애아를 부모의 희생으로 비장애인과 비슷하게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다. 평생 안고 사는 거다. 그렇기에 장애인들도 인간답게 살아갈 세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책을 썼다.”
지난해 9월,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 토론회에서 무릎을 꿇었던 장애 학생 학부모들의 모습은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류씨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수학교에 반대하는 이유는 내 자녀가 장애 아이들에게 해를 당할까 걱정해서다. 하지만 장애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위험이 아니라 기회다. 비장애인 아이들이 장애 아이들하고 같이 지내면 따로 인성, 사회성 교육을 할 필요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들과 한 마을에서 생활하면 자신과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존하는 능력이 체득된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 시스템을 촘촘하게 짜둬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발달장애인은 25만명에 이른다. 출산 연령이 높아져 기형아 출산이 늘어나고, 과로 끝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네살 아이 지능으로 되돌아가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 2일, 청와대 앞에서 발달장애인과 가족 등 3천명이 집회를 열고, 200명이 삭발을 했다. 이들이 왜 시위를 벌였는지는 둘째치더라도, 이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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