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의 고금유사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는 의식주를 주제로 쓴 여성의 생활교양서다. 빙허각이 서울 명문가의 여성이었으니, 이 책은 대체로 서울의 사족, 곧 경화세족(京華世族)의 생활문화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18세기 경화세족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규합총서>는 방대하고 다채롭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음식의 조리에 관한 부분이다. 내용이 풍부하기도 하거니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자료들이 실려 있다. 냉면을 퍽 즐기는 나는 옛 문헌에서 냉면에 관한 자료를 찾아왔는데, 어느 날 <규합총서>를 읽다가 냉면에 관한 서술을 읽고는 넋 나간 사람처럼 혼자 실실 웃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럼, 어디 냉면에 관한 부분을 읽어보자. “동치미국에 가는 국수를 넣고, 무·오이·배·유자를 같이 저며 얹고, 돼지고기와 계란 부친 것을 채 쳐서 흩고 후추와 잣을 뿌리면 이른바 냉면이다.” 요즘은 동치미국물에 고기육수를 섞는데 빙허각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수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어(국수틀에 눌러 뽑는 것인지, 아니면 칼국수 식인지) 좀 유감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서울에서는 집에서도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 아닌가.
냉면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자료는 장유(張維, 1587-1638)가 남긴 ‘자줏빛 육수에 냉면을 말아 먹고’(紫漿冷?)란 시다. 이 시가 제공하는 정보는 차가운 자주색의 육수에 흰 국수를 말아서 먹었다는 것이 전부지만, 어쨌든 이 시로 17세기 초반에 냉면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는 있다. 이후 냉면에 관한 자료가 더러 나오는데, 대개의 경우 평안도와 황해도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예컨대 정약용(丁若鏞)은 서흥도호부사(瑞興都護府使) 임성운(林性運)에게 주는 시에서 “시월이라 관서에 한 자나 눈이 쌓이면, 겹겹이 휘장에 푹신한 담요로 손님을 붙잡아두고, 벙거짓골에 사슴고기 굽고는, 길게 뽑은 냉면에 푸른 배추김치 내어오네”라고 말하고 있는데, 서흥 역시 황해도의 고을이다. 이런 사정을 최영년(崔永年, 1859-1935)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 “개성 서쪽은 모두 냉면을 잘 만든다. 평양은 그 중 냉면의 최고 명산지다.”라고 간단히 정리한 바 있다.
그렇다면 서울 냉면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서울의 세시풍속을 읊은 유만공(柳晩恭, 1793-?)의 풍속시집 <세시풍요(歲時風謠)>에 냉면에 관한 정보가 실려 있다. “서경(西京) 냉면과 송경(松京)의 구운 고기를 판다지만, 그 맛을 내기 어려우니 그를 어찌 하리오?”(西京冷?松京炙, 倣樣來難奈爾何). 이 시는 서울 시정의 술집을 읊은 것인데, 여기 등장하는 ‘서경’은 다름 아닌 평양이다(송경은 개성). 곧 서울의 술집에서 파는 냉면은 평양냉면을 배워 만든 것이었던 것이다. 맛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지만, 어쨌거나 서울냉면이 평양냉면이고, 평양냉면이 서울냉면인 것이다.
뜬금없이 왜 냉면 이야기냐고? 남한 예술단이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었단다. 부러워라! 지금 형편으로 통일까지는 안 바라더라도 남북간의 왕래가 자유로워져서 나 역시 옥류관에서 본바닥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이제 날도 더워졌으니 점심 때 냉면이나 먹으러 갈까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지난 2일 오후 평양 냉면 전문점인 옥류관에서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원인 걸그룹 레드밸벳이 냉면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