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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옥류관 냉면

등록 2018-04-05 19:07수정 2018-04-05 19:38

강명관의 고금유사

지난 2일 오후 평양 냉면 전문점인 옥류관에서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원인 걸그룹 레드밸벳이 냉면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오후 평양 냉면 전문점인 옥류관에서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원인 걸그룹 레드밸벳이 냉면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는 의식주를 주제로 쓴 여성의 생활교양서다. 빙허각이 서울 명문가의 여성이었으니, 이 책은 대체로 서울의 사족, 곧 경화세족(京華世族)의 생활문화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18세기 경화세족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규합총서>는 방대하고 다채롭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음식의 조리에 관한 부분이다. 내용이 풍부하기도 하거니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자료들이 실려 있다. 냉면을 퍽 즐기는 나는 옛 문헌에서 냉면에 관한 자료를 찾아왔는데, 어느 날 <규합총서>를 읽다가 냉면에 관한 서술을 읽고는 넋 나간 사람처럼 혼자 실실 웃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럼, 어디 냉면에 관한 부분을 읽어보자. “동치미국에 가는 국수를 넣고, 무·오이·배·유자를 같이 저며 얹고, 돼지고기와 계란 부친 것을 채 쳐서 흩고 후추와 잣을 뿌리면 이른바 냉면이다.” 요즘은 동치미국물에 고기육수를 섞는데 빙허각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수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어(국수틀에 눌러 뽑는 것인지, 아니면 칼국수 식인지) 좀 유감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서울에서는 집에서도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 아닌가.

냉면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자료는 장유(張維, 1587-1638)가 남긴 ‘자줏빛 육수에 냉면을 말아 먹고’(紫漿冷?)란 시다. 이 시가 제공하는 정보는 차가운 자주색의 육수에 흰 국수를 말아서 먹었다는 것이 전부지만, 어쨌든 이 시로 17세기 초반에 냉면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는 있다. 이후 냉면에 관한 자료가 더러 나오는데, 대개의 경우 평안도와 황해도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예컨대 정약용(丁若鏞)은 서흥도호부사(瑞興都護府使) 임성운(林性運)에게 주는 시에서 “시월이라 관서에 한 자나 눈이 쌓이면, 겹겹이 휘장에 푹신한 담요로 손님을 붙잡아두고, 벙거짓골에 사슴고기 굽고는, 길게 뽑은 냉면에 푸른 배추김치 내어오네”라고 말하고 있는데, 서흥 역시 황해도의 고을이다. 이런 사정을 최영년(崔永年, 1859-1935)은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 “개성 서쪽은 모두 냉면을 잘 만든다. 평양은 그 중 냉면의 최고 명산지다.”라고 간단히 정리한 바 있다.

그렇다면 서울 냉면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서울의 세시풍속을 읊은 유만공(柳晩恭, 1793-?)의 풍속시집 <세시풍요(歲時風謠)>에 냉면에 관한 정보가 실려 있다. “서경(西京) 냉면과 송경(松京)의 구운 고기를 판다지만, 그 맛을 내기 어려우니 그를 어찌 하리오?”(西京冷?松京炙, 倣樣來難奈爾何). 이 시는 서울 시정의 술집을 읊은 것인데, 여기 등장하는 ‘서경’은 다름 아닌 평양이다(송경은 개성). 곧 서울의 술집에서 파는 냉면은 평양냉면을 배워 만든 것이었던 것이다. 맛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지만, 어쨌거나 서울냉면이 평양냉면이고, 평양냉면이 서울냉면인 것이다.

뜬금없이 왜 냉면 이야기냐고? 남한 예술단이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었단다. 부러워라! 지금 형편으로 통일까지는 안 바라더라도 남북간의 왕래가 자유로워져서 나 역시 옥류관에서 본바닥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이제 날도 더워졌으니 점심 때 냉면이나 먹으러 갈까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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