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생태계 비전 포럼’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책 생태계의 오늘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책 생태계는 깜깜이 시장이다. 우리가 뭔가를 크게 놓치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에선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 주최로 ‘책 생태계의 오늘을 말하다’를 주제로 한 ‘책 생태계 비전 포럼’이 열렸다. 이날 강연자로 초대된 장강명 소설가는 현재 독자들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유명 저자나 대형 출판사, 베스트셀러, 문학상에 의지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네이버영화’와 ‘네이버책’ 같은 포털의 영화와 책 코너를 비교했다. “영화 코너에선 누적 관객수와 평론가와 관객이 작성한 한줄 평과 평점이 나와 있다. 여기에 들어가 보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책 코너에는 판매량도 없고, 독자평도 숫자가 너무 적고, 신뢰도도 떨어진다. 언론이나 전문가 서평도 신간에 치우쳐 있고, 비판적인 평도 거의 없다. 모든 책이 다 좋다고 하니 혼란을 느낄 뿐이다. 독자들은 이런 서평을 보고 책을 샀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몇번 반복되면 결국 한국 문학 같은 특정 분야의 책이나 더 나아가선 책 자체를 안 읽게 되어버린다.”
그는 ‘독자들의 문예운동’을 일으키자고 제안했다. 핵심은 ‘독자의 언어’와 ‘데이터베이스’다. 독자들이 읽은 책을 서로 추천하고 이것들을 집적한 뒤 독자들에게 이용이 편리하도록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독자들에게 ‘이 책 또는 웹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은 이 작품도 좋아할 것’이라는 추천이 확장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월간지 <책>에서 책별로 작품성, 오락성, 선정성 등 5가지 항목별로 점수를 주는 레이더 차트를 도입했는데, 이 방식을 온라인상에 도입해 독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한줄 평도 남기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엄청나게 웹소설을 많이 읽는데, 웹소설도 추천하면서 ‘이런 (책으로 나온) 소설도 좋아할 거야’라고 권유하면 독자층을 넓혀갈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부가 세종도서 선정 지원사업을 민간에 넘기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세종도서는 정부가 전국 공공도서관 등에 비치할 우수 도서를 선정해 종당 1000만원까지 구매해주는 지원 사업으로, 1968년부터 시행돼왔다. 정원옥 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가가 도서의 우수성을 심사하여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검열”이며 “원래 민간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출판산업에 대한 전문성과 공정성, 신뢰성을 갖춘 출판단체가 주관하는 것이 사업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고, 공정성과 객관성,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 연구원은 대학에서 수업을 위해 교재를 복사하는 대신 저작권자에게 ‘수업목적보상금’을 나눠주는 저작권법(62조 2항)의 개정을 ‘출판 적폐 청산’의 중요 과제로 꼽았다. 현재 저작권자만 받게 되어 있는 보상금을 출판권자인 출판사에도 함께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14년부터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가 대학으로부터 재학생 1인당 일정한 액수를 보상금으로 거두고 있지만, 저작권자와 연락이 되는 출판사의 도움을 받지 못해 보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법이 고쳐지지 않으면 보상금은 저작권자에게도 출판권자에게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출판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출판계의 개혁 요구에 응답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개혁에 저항하고 기존의 제도와 관행을 유지하려는 수구적 태도마저 감지된다”고 비판했다.
방송에서 거의 사라진 책 프로그램을 되살려야 한다는 요청도 나왔다.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사무처장은 “방송법은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애니메이션·대중음악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편성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방송법을 개정해서 국내 방송사가 일정 비율 이상의 책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위는 이날 포럼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2차례의 국제 포럼을 포함해 매달 한 차례씩 모두 10번의 포럼을 열고 책 생태계를 살릴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제안할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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