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역사저술가 박천홍
활자로 본 조선의 근대 조명
1880년대 신문·출판 태동기
매체 변화가 수반한 충격 다뤄
활자로 본 조선의 근대 조명
1880년대 신문·출판 태동기
매체 변화가 수반한 충격 다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의 편집실로 추정되는 사진. 는 외교통상 사무 전반을 담당했던 통리아문 소속의 박문국에서 발간했다. 자료사진
-1883년, 지식의 질서가 바뀌던 날
박천홍 지음/너머북스·2만8000원 진정하고도 유일한 혁명은 텍스트를 읽고 쓰는 데서 일어난다. 이 점을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강렬하게 보여줬다. 그렇다면 이 땅에선 텍스트의 혁명이 어떤 모습으로 일어났을까. 박천홍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은 2003년 ‘철도’를 다룬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2008년 ‘이양선’을 주제로 한 <악령이 출몰하는 조선의 바다>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들에서 근대가 조선사회와 충돌한 현장을 재구성해내는 탁월한 역사 글쓰기를 보여줬다. 그런 그가 전작으로부터 10년 만에 새 책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번엔 ‘활자’다. 그가 주목한 시기는 우리나라에 서양식 활자문화가 들어온 1880년대다. 이 때 최초로 서양식 연활자(납으로 주조한 활자)로 인쇄한 신문인 <한성순보>와 <한성주보>가 만들어졌고, 출판사인 ‘광인사’ ‘박문국’이 세워진다. 성리학과 중국이 독점하던 지위가 흔들리고 일본과 서양의 담론들이 들어와 ‘복수의 사상들이 경쟁하는 시대’가 열린 이 시대의 변화상이 책에 담겼다. 특정 학과에 매여 있는 학자가 아닌 그가 베어내는 살코기가 그려내는 결은 자못 독특하다. 공간의 구애됨 없이 한-중-일을 끊임없이 횡단하고, 정치 외교 문화를 관통한다. 텍스트의 내용 분석에만 치중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그 물성에도 주목했다. 이 책에서 조선 정부가 처음으로 구입한 ‘족답 인쇄기’의 수입 경로와 <한성순보>의 발행부수와 가격 등 그가 새롭게 밝혀낸 사실이 적지 않은 점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성순보> 창간호. 아단문고 소장
‘신문 보는 노인’ 1910년 전후, 듀크대 도서관, 시드니 갬블 컬렉션 소장.
유길준은 신문을 간행할 한성부 박문국 설치와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은 시행규칙인 ‘한성부 신문국 장정’을 만들었다. 첫째 줄에 “국의 이름은 박문이라고 부른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글은 <저사집역>에 실려 있다. 아단문고 소장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난 박천홍 재단법인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은 “타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이번엔 낮선 사상을 만나고 이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갔는지를 봤다”라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낯선 것과 충돌하는 지점이 내 관심사”
“재단 업무를 하는 틈틈이 작업을 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자료도 너무 많이 봤다. 인도와 포르투갈 자료까지 들춰봤다. 원래 1000쪽을 예상했는데 과감하게 3분의 1 정도를 들어냈다.”
2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활자와 근대>의 지은이 박천홍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출판저널> 편집장을 거쳐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재단법인 아단문고에서 일하고 있다. 문고의 유일한 일꾼으로서, 혼자서 문서 작업과 관리, 전시 등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고문서 아카이브에서 일한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소장 자료들을 마음껏 열람하고 저술에 반영할 수 있었다. “타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다. 전작들에서 다룬 철도나 이양선도 낯선 문명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빚어지는 충돌의 지점에 주목한 것이었다. 이번엔 낯선 사상을 만나고 이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갔는지를 봤다.”
박 실장이 앞으로 낼 책들은 어떤 것들일까. “갑오개혁부터 을사조약까지 1900년대 초반에 애국계몽운동이 일어나면서 민족 언론과 출판에도 뜨거운 활기가 돈다. 이 시기를 들여다보기 위해, 그 계기를 마련한 1880년대부터 탐구를 시작한 것이 이번에 낸 책이다. 앞으론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책과 언론, 출판, 서점 등 근대 지식의 형성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저술 작업을 할 생각이다.”
박 실장은 매천 황현(1855~1910)과 1890년대 한국을 방문한 지리학자 겸 여행작가였던 영국 여성 이사벨라 버드 비숍을 재조명하는 책도 준비하고 있다. 국권이 침탈되자 음독 자살을 한 내부자 황현의 시각과 정반대편의 관찰자인 비숍의 시각을 교차시켜 당시를 되살려 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책이 10년 만에 나왔는데 너무 길어진 것 같다”며 “앞으론 2년에 한 번씩 200~300쪽 짜리 짧은 책을 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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