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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식의 질서는 어떻게 바뀌는가

등록 2018-03-22 20:22수정 2018-03-22 23:59

주목받는 역사저술가 박천홍
활자로 본 조선의 근대 조명
1880년대 신문·출판 태동기
매체 변화가 수반한 충격 다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의 편집실로 추정되는 사진. 는 외교통상 사무 전반을 담당했던 통리아문 소속의 박문국에서 발간했다. 자료사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의 편집실로 추정되는 사진. 는 외교통상 사무 전반을 담당했던 통리아문 소속의 박문국에서 발간했다. 자료사진

활자와 근대
-1883년, 지식의 질서가 바뀌던 날

박천홍 지음/너머북스·2만8000원

진정하고도 유일한 혁명은 텍스트를 읽고 쓰는 데서 일어난다. 이 점을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강렬하게 보여줬다. 그렇다면 이 땅에선 텍스트의 혁명이 어떤 모습으로 일어났을까.

박천홍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은 2003년 ‘철도’를 다룬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2008년 ‘이양선’을 주제로 한 <악령이 출몰하는 조선의 바다>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들에서 근대가 조선사회와 충돌한 현장을 재구성해내는 탁월한 역사 글쓰기를 보여줬다. 그런 그가 전작으로부터 10년 만에 새 책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번엔 ‘활자’다.

그가 주목한 시기는 우리나라에 서양식 활자문화가 들어온 1880년대다. 이 때 최초로 서양식 연활자(납으로 주조한 활자)로 인쇄한 신문인 <한성순보>와 <한성주보>가 만들어졌고, 출판사인 ‘광인사’ ‘박문국’이 세워진다. 성리학과 중국이 독점하던 지위가 흔들리고 일본과 서양의 담론들이 들어와 ‘복수의 사상들이 경쟁하는 시대’가 열린 이 시대의 변화상이 책에 담겼다.

특정 학과에 매여 있는 학자가 아닌 그가 베어내는 살코기가 그려내는 결은 자못 독특하다. 공간의 구애됨 없이 한-중-일을 끊임없이 횡단하고, 정치 외교 문화를 관통한다. 텍스트의 내용 분석에만 치중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그 물성에도 주목했다. 이 책에서 조선 정부가 처음으로 구입한 ‘족답 인쇄기’의 수입 경로와 <한성순보>의 발행부수와 가격 등 그가 새롭게 밝혀낸 사실이 적지 않은 점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성순보> 창간호. 아단문고 소장
<한성순보> 창간호. 아단문고 소장

책은 1840년대 중국 남부의 홍콩, 마카오, 상하이의 잉크 냄새 자욱한 인쇄소에서 시작한다. 서양 기독교 선교사들은 성경을 대량으로 인쇄하는 것에 선교의 명운을 걸었다. 이 사투는 미국 장로회가 파견한 윌리엄 갬블이란 걸출한 인쇄기술자가 승리로 이끈다. 그가 연이은 기술 혁신으로 완성한 근대 연활자 한문 인쇄술은 이후 동아시아의 지식 생산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상하이 미화서관에서 일하던 갬블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가 바로 ‘일본의 구텐베르크’로 불리는 일본 근대 활판인쇄술의 선구자 모토키 쇼조다. 그가 만든 인쇄소가 훗날의 쓰키지활판제조소였고, 1879년 이 회사의 활자 견본집에 조선문자 41개가 최초로 등장한다. 이 한글 활자들로 일본인들이 한국땅에서 처음으로 만든 신문 <조선신보>와 조선어 교재 <교린수지>가 인쇄됐다.

1882년 임오군란의 뒤처리를 하기 위해 22살의 박영효가 특명전권대신으로 일본에 파견됐다. 그는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일본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임무도 띠고 있었다. 박영효는 김옥균과 함께 ‘일본 근대화의 대부’ 후쿠자와 유키치(현재 1만엔권에 초상이 그려져 있다)를 만났다. 문화를 단초로 조선을 일본의 지배 아래 두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던 후쿠자와는 차관 제공에 발벗고 나섰고, 신문 발간 사업을 권유했다. 박영효는 차관 12만원의 일부를 족답 인쇄기(발로 밟는 힘으로 가동됨)와 활자, 식자 기구 등을 사는 데 사용했다. 1882년 12월22일자 <도쿄니치니치신문>이 “이미 (도쿄에) 머물고 있던 박(영효) 공사가 (…) 우리 인쇄국에서 별도로 제작한 푸트 인쇄기 두 대를 제조해 보냈다”라고 조선 수신사 일행의 동정을 보도한 기사는 근대 서양식 인쇄기가 조선에 처음 들어온 상황을 가장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자료로 이 책에서 처음 발굴한 자료다.

‘신문 보는 노인’ 1910년 전후, 듀크대 도서관, 시드니 갬블 컬렉션 소장.
‘신문 보는 노인’ 1910년 전후, 듀크대 도서관, 시드니 갬블 컬렉션 소장.

박영효는 귀국한 지 한 달 뒤에 고종의 명으로 파격적이게도 한성판윤, 오늘날 서울특별시장 자리를 맡게 된다. 박영효는 한성부에 박문국을 만들어 신문 발간 사업을 추진했지만, 석 달 만에 좌천돼 이 사업도 중단됐다.

하지만 고종의 명으로 박문국이 통리기문 산하 동문학의 소속기관으로 1883년 7월 다시 만들어졌고, 그해 10월1일 <한성순보> 창간호가 나왔다. 신문은 매호 3천5백부 가량 인쇄돼 일반인들에게도 팔렸다. 이는 특수한 신분계층에게만 배타적으로 유통되던 ‘성스러운’ 책과 신문이 돈만 있다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상품’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발간 1년 후인 1884년 10월 갑신정변 때 박문국과 인쇄공장이 불타버려 <한성순보>의 역사는 일단락된다. 하지만 고종의 명으로 1885년 12월 <한성주보>가 발간된다. 순보와 주보, 출판사 광인사의 출판물들은 서양과 일본 등 다양한 외부 지식 유통의 경로를 만들었고, 도전 받지 않았던 절대 권위의 성리학을 비교와 검토, 회의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유길준은 신문을 간행할 한성부 박문국 설치와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은 시행규칙인 ‘한성부 신문국 장정’을 만들었다. 첫째 줄에 “국의 이름은 박문이라고 부른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글은 <저사집역>에 실려 있다. 아단문고 소장
유길준은 신문을 간행할 한성부 박문국 설치와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은 시행규칙인 ‘한성부 신문국 장정’을 만들었다. 첫째 줄에 “국의 이름은 박문이라고 부른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글은 <저사집역>에 실려 있다. 아단문고 소장

특히 주보에선 획기적인 문체 혁신이 이뤄졌다. 순보는 순한문이었으나, 주보엔 한문, 한글, 국한문 세가지 형식의 기사가 공존했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지만 이후 하층민, 여성, 아이들의 언어로 낮게 여겨진 한글이 국가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한문의 문체 독점이 깨졌다는 의미였다.

한성주보는 3년을 채우지 못하고 1888년 6월 폐간된다. 내부의 반발이나 다른 나라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열악한 재정과 구독료 수금의 어려움에 따른 적자라는 허망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이 시대의 의미를 평가한다. “순보와 주보는 관보로서 비판적 언론 활동의 제약과 이윤 동기의 부족, 독자층의 제한 등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 바깥의 거대한 세계에 대한 지식을 선택적으로 소개·가공·해석함으로써 지식의 개방성을 촉진했다. 또 권력의 하향적 침투라는 전통적 방식을 지양하고 민의상달의 이념을 지면에 구현하려 했다. (…) 두 언론출판 기구(박문국과 광인사)는 1890년대 이후 애국계몽기의 근대 언론과 민족주의 출판이 꽃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신문의 태동기를 다룬 이 책을 새로운 매체의 전환기에 읽는다는 점이 각별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매체의 변화는 세계관과 사상, 사회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130여년 전엔 인쇄기 한 대 들여오는 것이 국가적 사업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손에 인쇄기를 들고 있는 세상이 됐다. ‘모든 사람이 발행인’인 이 시대에, 매체의 변화가 일으킬 영향을 예측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는 소통의 확대에 손을 보탤지 성찰하는 책임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 아니다.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난 박천홍 재단법인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은 “타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이번엔 낮선 사상을 만나고 이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갔는지를 봤다”라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난 박천홍 재단법인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은 “타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이번엔 낮선 사상을 만나고 이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갔는지를 봤다”라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낯선 것과 충돌하는 지점이 내 관심사”

“재단 업무를 하는 틈틈이 작업을 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자료도 너무 많이 봤다. 인도와 포르투갈 자료까지 들춰봤다. 원래 1000쪽을 예상했는데 과감하게 3분의 1 정도를 들어냈다.”

2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활자와 근대>의 지은이 박천홍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출판저널> 편집장을 거쳐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재단법인 아단문고에서 일하고 있다. 문고의 유일한 일꾼으로서, 혼자서 문서 작업과 관리, 전시 등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고문서 아카이브에서 일한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소장 자료들을 마음껏 열람하고 저술에 반영할 수 있었다. “타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다. 전작들에서 다룬 철도나 이양선도 낯선 문명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빚어지는 충돌의 지점에 주목한 것이었다. 이번엔 낯선 사상을 만나고 이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갔는지를 봤다.”

박 실장이 앞으로 낼 책들은 어떤 것들일까. “갑오개혁부터 을사조약까지 1900년대 초반에 애국계몽운동이 일어나면서 민족 언론과 출판에도 뜨거운 활기가 돈다. 이 시기를 들여다보기 위해, 그 계기를 마련한 1880년대부터 탐구를 시작한 것이 이번에 낸 책이다. 앞으론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책과 언론, 출판, 서점 등 근대 지식의 형성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저술 작업을 할 생각이다.”

박 실장은 매천 황현(1855~1910)과 1890년대 한국을 방문한 지리학자 겸 여행작가였던 영국 여성 이사벨라 버드 비숍을 재조명하는 책도 준비하고 있다. 국권이 침탈되자 음독 자살을 한 내부자 황현의 시각과 정반대편의 관찰자인 비숍의 시각을 교차시켜 당시를 되살려 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책이 10년 만에 나왔는데 너무 길어진 것 같다”며 “앞으론 2년에 한 번씩 200~300쪽 짜리 짧은 책을 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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