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실제로 겪어보니까 제가 생각하던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근데 저도 그 사람들이 볼 때는 극렬 좌익운동가였던 거잖아요.”

김홍모(47) 작가는 1997년부터 8개월간 영등포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3수 끝에 들어간 홍익대학교에서 광주민주항쟁의 참상을 접하고 학생운동을 하다가 부총학생회장까지 돼 전국에 수배령이 떨어졌었다. 그가 배정된 방은 살인, 강도, 조직폭력 등 5대 범죄를 저지른 이들 중에서도 전과 3범 이상의 ‘빵재비’들이 모여 있는 강력누범방. 김 작가가 “다들 빵 생활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마찰은 피하고 최대한 재미있게 시간을 ‘깨려고’ 하는” 조직폭력과 강도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강력누범방에서 겪었던 일들을 <좁은 방>이라는 만화로 풀어냈다.

방장이자 ‘뼈대 있고 족보 있는’ 조직 내 넘버 투인 ‘상현이 형’은 신기하게도 조정래 <태백산맥>, 황석영 <장길산> 같은 진보적 작가들이 쓴 대하소설을 소장하고 있다. 틈만 나면 일본어 공부를 하는 상현이 형은 김 작가가 감옥 생활에 적응해 초범들을 골탕 먹이자 “학생이면 학생다워야 할 것 아냐!”라며 호통을 치기도 한다. 나중에 출소해서 홍익대 학생회실을 찾아온 상현이 형과 몇 번 만났지만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이외에도 퇴물 건달 장소팔, 감기약을 많이 먹어 약간 모자란 앵벌이 용식이 등 다양한 사람들과 있었던 재미있고도 훈훈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지난 6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 작가는 “정말 나쁜 사람도 있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넣지는 않았어요. 범죄자를 미화시킨 것처럼 느낀 분들에겐 양해를 구합니다”라고 말했다.

만화에선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담지 않았지만 수감 생활 초반에는 동료들과 많이 싸웠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빨갱이’들을 싫어하는 택시강도 수감자가 “너희 마음은 알겠는데, 너네는 졌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우리가 민중과 학우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싸웠다는 생각에 그 말이 많이 아팠죠.” 극 중 주인공인 ‘용민’은 다른 구치소 내 처우개선과 김영삼 정권을 규탄하는 단식투쟁을 벌여 승리를 일궈냈다. 그 영향을 받은 같은 방 재소자들이 구치소장에게 ‘성실’이란 경례를 하지 않는 저항을 한다. “그분들이 ‘경례를 하지 않은 건 제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더라고요. 같이 시위를 하면서 저도 변하고 그분들도 변한 거죠. 제가 이분들의 마음을 얻었구나 하는 감동이 있었어요.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영화 <1987>처럼 80년대 민주화운동을 그린 작품이 종종 나오지만, <좁은 방>처럼 90년대 학생운동을 다룬 작품들은 찾기가 힘들다. “그때는 절박하고 처절했죠.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됐어요.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이든 미투 운동이든 인간이 인간답게 존엄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김 작가가 극 중 주인공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용민’이라고 쓴 것도, 이 일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권 때인 1심 때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 법원의 태도 변화로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1998년 출소해 돌아간 학교에서 김 작가는 학사 경고 누적으로 제적된 상태였다. 재입학이 가능했지만 하지 않았다. 이후 그림공장이란 민중미술운동단체에서 노동자대회 걸개그림을 그리거나 시사만화를 기고하는 일을 했다. 2006년부터 <소년탐구생활>로 개인 작품을 내기 시작해 <두근두근 탐험대>, <내 친구 마로> 같은 어린이창작만화를 냈다. 김수박, 김성희 작가 등과 함께 <내가 살던 용산>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빨간약> 같은 사회성 짙은 만화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덕분에 박근혜 정부의 300인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고, 국정원 사찰도 당했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제주도민으로서 제2공항 건립 반대운동에도 릴레이 만화 그리기 등으로 함께 하는 중이다. 현재 케이툰에 연재 중인 <신들의 섬>은 제주도 설화와 저항의 역사에서 영감을 받은, (미국으로 보이는) 제국의 침략과 그에 대항하는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만화다. 올해 연재를 시작할 만화는 제주 해녀들의 항일 항쟁이나 세월호 중 어떤 것을 소재로 할지 고민 중이다. “연재처를 찾는 게 고민이죠. 이런 비상업적인 만화는 늘 힘들어요. <좁은 방>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니까 웹툰 플랫폼들이 다들 연재를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연재처를 찾는 데 오래 걸렸어요. 초판도 1천부 밖에 못 찍었어요.”

이 작품은 만화판 ‘슬기로운 감빵생활’인 걸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이 만화는 2010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창작지원작에 선정됐고, 지금은 없어진 웹툰 플랫폼 <어른>에서 2015~2016년 연재됐다. 그는 지난 1월 종영한 티브이엔(tvN)의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대한 법적 대응을 고민 중이다. “기본적인 포맷과 주제의식, 전개방식이 비슷해요. 게다가 배식할 때 밥 많이 달라고 하는 부분이나, 내가 있던 방이 3상6방으로 나오는데 드라마에선 2상6방이고, 저는 서울 서부에 있는 영등포구치소에 있었는데 드라마에선 서부구치소로 나오는 등 내 작품을 봤으리라고 의심되는 부분이 많아요. 방송사에서 먼저 제 작품을 참고했다고 밝혔으면 넘어갔을 텐데 기분이 상당히 나쁘더라고요. 도둑맞은 느낌이어요. 법적 대응을 하려고 여러 사람 의견을 들어보고 있습니다. 자꾸 문제를 제기해야 이런 행태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