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사학·국가·시장 권력 3축으로
불모지였던 현대 대학역사 정리해
‘사회와 대학 민주화는 쌍둥이’
사학·국가·시장 권력 3축으로
불모지였던 현대 대학역사 정리해
‘사회와 대학 민주화는 쌍둥이’
김정인 지음/휴머니스트·1만9000원 ‘숭고하고 순수한’ 학문이라는 꽃은 사실 대학이라는 ‘더러운 진창’에서 피어난 것이 아니었을까?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교수(사회과교육과)가 최근 출간한 <대학과 권력>을 읽다가 이런 이미지가 머리에 그려졌다. 현대 한국 대학의 전체 역사를 정리하고 평가한 사실상 최초의 시도인 이 책에서 김 교수는 대학권력, 국가권력, 시장권력 3주체를 중심으로 ‘오욕과 회한’의 한국 대학사를 재구성했다. 조선 땅에 처음으로 세워진 서구적 개념의 근대 대학은 경성제국대학(이후 서울대학교로 전환)이었다. 조선 말기 갑오개혁(1894년) 때와 대한제국 시기 박은식 같은 개화파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대학을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일제의 침략으로 현실화되진 못했다. 일제가 1924년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본인들의 이민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제국대학 설립은 조선인들이 직접 돈을 모아 대학을 세우려고 했던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저지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일제는 조선인들에겐 대학보다 한 단계 낮은 전문학교 설립만을 허가해줬고, 1920년대를 전후해 보성, 연희, 숭실, 이화 등 유명 사학 전문학교들이 속속 생겨났다.
1960년 4월25일 전국 27개 대학 258명의 교수가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 모여 3·15 부정선거와 4·19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물러날 것을 주장한 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자”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서울 시내에 있는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4년 9월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석희 교육개혁위원회의 위원장으로부터 교육개혁안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이 교육개혁안은 다음해 5·31 교육개혁으로 구체화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5년 3월24일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학교에서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교수와 학생, 교직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학계의 ‘대학 문제’ 침묵은 사학 권력 탓”
“일본에선 대학학이 따로 있을 정도로 연구가 활발하다. 하지만 한국 학자들이 대학을 역사화하고 성찰하지 못하는 것은 사학이 지배하는 대학 구조와 관련 있다. 사립대 교수들이 자기 학교 문제조차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서 대학을 연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학자들은 왜 자신이 속한 대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내놓지 않았던 걸까? 이 질문에 최근 <대학과 권력>을 펴낸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사진)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답했다. 그는 연구와 강의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 등 저서 집필 등으로 바쁜 중에도 10여년간 지속적으로 대학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왔다고 한다.
책의 절반이 구한말부터 이승만 정권까지의 이야기인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대학권력들이 막 등장하는 형성기여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론 “박정희 정권 이후 자료들이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기록관을 두고 1차 자료를 보관해둔 대학도, 치부를 과감히 드러내고 반성하는 대학사(史)를 낸 곳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최근에야 결성된 대학사 연구 소모임 학자들과 함께 대학권력, 국가권력, 시장권력 3주체 각각을 더 자세히 연구해 들어갈 예정이다.
그는 책 말미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학 개혁 방향을 제안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피해갈 수 없게 된 대학 구조조정을 대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사립대학을 공영화하고, 국공립대학의 비중을 확대해야 하구요.” 그는 구조조정을 할 때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을 별개로 접근해 대학 양극화 문제도 같이 해결하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주문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공립대 네트워크를 임기 내에 추진하고 싶다”(<한겨레> 2월7일치 12면)고 밝힌 것에 대해, 김 교수는 “국공립대나 사립대 쪽의 반발이 거셀 텐데, 이런 반발을 뚫고 나갈 정도의 의지가 있을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국공립대 네트워크란, 전국의 국공립대학이 공동의 운영체제를 마련한 뒤 수업 및 학점을 교류하고 더 나아가 공동입학·공동학위까지 주는 방식을 말한다.
김 교수는 대학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던 중 1988년 서울대 학생들이 남한만의 단독올림픽 개최를 규탄하면서 기습적으로 시위를 벌일 것에 대비하여 교수들이 직접 교문 경비에 나선 장면을 찍은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의 사진이 당시 국가권력과 대학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2004년 서울대학교에서 발간된 <대학신문 사진으로 본 서울대학교 50년>이란 사진집에 실린 이 사진에는 “당국은 86년 아시안게임에 이어 88년 올림픽 기간 중에도 ‘가정 학습’이란 명목으로 대학가에 임시 휴교령을 내렸다”는 설명을 실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주간을 맡고 있는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진 자체가 국가권력과 대학의 종속을 보여주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기사에 사진을 쓰게할 수 없다”면서 사진 제공을 거부했다.
이에 김 교수는 “그 사진은 내가 2004년 사진집 발간 작업을 하며 대학신문사에 추천한 사진 중 하나다. 그때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는데 2018년에 문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현재 서울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사진 김정인 제공
최근 <대학과 권력>을 출간한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사진 김정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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