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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 대학, 그 오욕과 회한의 100년사

등록 2018-02-08 20:49수정 2018-02-09 17:13

역사학자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사학·국가·시장 권력 3축으로
불모지였던 현대 대학역사 정리해
‘사회와 대학 민주화는 쌍둥이’

대학과 권력-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
김정인 지음/휴머니스트·1만9000원

‘숭고하고 순수한’ 학문이라는 꽃은 사실 대학이라는 ‘더러운 진창’에서 피어난 것이 아니었을까?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교수(사회과교육과)가 최근 출간한 <대학과 권력>을 읽다가 이런 이미지가 머리에 그려졌다. 현대 한국 대학의 전체 역사를 정리하고 평가한 사실상 최초의 시도인 이 책에서 김 교수는 대학권력, 국가권력, 시장권력 3주체를 중심으로 ‘오욕과 회한’의 한국 대학사를 재구성했다.

조선 땅에 처음으로 세워진 서구적 개념의 근대 대학은 경성제국대학(이후 서울대학교로 전환)이었다. 조선 말기 갑오개혁(1894년) 때와 대한제국 시기 박은식 같은 개화파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대학을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일제의 침략으로 현실화되진 못했다. 일제가 1924년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본인들의 이민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제국대학 설립은 조선인들이 직접 돈을 모아 대학을 세우려고 했던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저지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일제는 조선인들에겐 대학보다 한 단계 낮은 전문학교 설립만을 허가해줬고, 1920년대를 전후해 보성, 연희, 숭실, 이화 등 유명 사학 전문학교들이 속속 생겨났다.

1960년 4월25일 전국 27개 대학 258명의 교수가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 모여 3·15 부정선거와 4·19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물러날 것을 주장한 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자”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서울 시내에 있는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1960년 4월25일 전국 27개 대학 258명의 교수가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 모여 3·15 부정선거와 4·19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물러날 것을 주장한 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자”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서울 시내에 있는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들 사학은 일제가 1945년 패망하고 미군정 아래에서 고등교육 재건 사업에 참여하면서 대학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국가 재정이 허약한 상태에서 고등교육을 확대하다 보니 사립대학이 우후죽순 늘어나 전체의 70%를 차지하게 됐고, 현재까지도 이 비율은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 토지개혁을 앞둔 대지주들은 토지소유권을 지키고 더 나아가 돈도 벌기 위해 앞다퉈 대학 설립에 나섰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정부가 대학들의 요구로 대학생 징집을 연기해주는 조처를 시행한 것도 대학이 몸집을 불리는 데 발판을 제공해줬다. 소와 밭을 판 돈을 들고 모여든 학생들로 인해 학기 초마다 전체 통화량의 4분의 1이 대학등록금으로 들어갈 정도였다. ‘우골탑’이란 말은 이때부터 사용됐다.

당시 사학 설립자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당시 사학 설립자 대부분은 기본재산을 한 푼도 내지 않고 학생들의 등록금을 걷어서 건물도 짓고 학교도 운영했다. 정부 방침을 무시하고 정원을 초과해 학생을 모집하며, 등록금도 마음대로 올려 급기야 “대학 망국론”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보다 못한 이승만 정부에서 사학재단 운영지침을 만들었는데, 이에 반발한 사학들이 전국사립대학연합회를 결성했다. 회장과 부회장으로 추대된 백낙준 연희대(현 연세대) 초대 총장과 유진오 고려대 초대 총장은 “2류, 3류, 4류 대학들 (…) 교육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젊은 사람들이 잔뜩 나와 시장판 같이 떠들어대는” 통에 이들도 한두 번 나가고 발길을 끊었다고 회고했다.

1994년 9월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석희 교육개혁위원회의 위원장으로부터 교육개혁안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이 교육개혁안은 다음해 5·31 교육개혁으로 구체화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4년 9월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석희 교육개혁위원회의 위원장으로부터 교육개혁안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이 교육개혁안은 다음해 5·31 교육개혁으로 구체화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이승만 정부가 사학과의 싸움에 번번이 물러섰던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전 대통령 본인부터 사립대 설립에 뛰어든 장본인이었다. 그는 측근 정부 관료들을 이용해 기업과 대중으로부터 기금을 걷은 뒤, 인천과 하와이의 첫 글자를 따서 인하공과대학을 만들었다. 친일파이자 우익이었던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과 백낙준, 유진오는 정계와 행정부 요직을 넘나드는 권력의 일원이었고, 대학권력의 화신이었던 이 3인방은 정부의 정책도 무력화할 만큼 대단한 위세를 자랑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시절은 국가권력이 대학권력의 주도권을 잡은 시기였다. ‘조국 근대화’라는 새로운 과제에 맞춰 과학기술 분야를 강화하려면 막대한 돈을 들여 교수와 시설을 확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정부와 기업의 돈을 끌어와야 했다. 정부에선 외국에서 들여온 차관 분배와 정부 지원금을 지렛대로 대학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갔다. 1970년대 들어 유신체제로 전환한 박정희 정권은 ‘실험대학’ 정책으로 대학교육의 내용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마치 부산일보와 정수장학회처럼 대구대와 청구대를 통합해 사립대인 영남대를 만들었고 스스로 ‘교주’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이승만과 별다르지 않았다.

전두환 정부에선 민심 수습책으로 전문대, 지방분교, 방송통신대학 등을 시작해, 고등교육 인구가 10년 만에 57만명(1980년)에서 149만명(1990년)으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교육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김영식 전 교육부 차관이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일 큰 관심사는 학원 소요 진압이었다. (…) 문민정부 이전까지는 대학 경쟁력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고 회고한 데서도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어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사학재단의 로비로 1990년 재단이 마음대로 학교를 휘두를 수 있도록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줬다. 재단 이사장의 친인척은 총장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삭제했고, 총장과 학장에게 있던 대학교수와 직원 임면권도 재단에 넘겨줘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학 비리와 분규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2015년 3월24일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학교에서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교수와 학생, 교직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5년 3월24일 강원도 원주시 상지대학교에서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교수와 학생, 교직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원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문민정부가 들어선 김영삼 정권부터는 ‘시장권력’이 점점 주도권을 확대해가는 과정이었다. 1995년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김영삼 정부는 그 유명한 ‘5·31 교육개혁’을 시행했다. 그 핵심은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자유롭게 대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해준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이었다. 대학진학률이 80%에 이르는 지금의 현실은 바로 이 조치에 기반을 둔다. 대학 정원 자율화와 준칙주의로 대학 ‘공급자’가 폭발적으로 늘자, ‘수요자’인 학생들이 선택권을 쥐게 됐다. 대학들은 처음으로 스스로 개혁에 나섰는데, 그 방향은 대학의 상업화와 학문의 실용화였다. 1996년 삼성이 성균관대를 인수한 것은 대학 기업화의 역사에서 ‘시장권력’이 주도권을 쥐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대학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됐고, 대학은 스스로에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총장들은 저마다 ‘최고경영자(CEO) 총장’을 자임했고, 교수들은 기업에 취업한 직장인이 되어갔다.

대학의 역사에 오욕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 4·19혁명으로 학원 민주화운동이 일어나 학도호국단이 폐지됐고 학생회, 교수회 등이 생겨났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학 자율화 조치가 시행돼 대학마다 교수협의회가 만들어지고, 직선 총장제가 시행됐다. 김정인 교수는 “사회 민주화가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대학의 자치와 자율, 그리고 민주화가 주목받으며 학원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는 일은 이후 현대사에서도 계속 반복되었다”고 말한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종교와 함께 구악과 적폐의 마지막 보루로 꼽히는 일부 사학 재단의 전횡을 제압하고 대학 민주화의 염원을 이뤄낼 수 있을까?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학계의 ‘대학 문제’ 침묵은 사학 권력 탓”

“일본에선 대학학이 따로 있을 정도로 연구가 활발하다. 하지만 한국 학자들이 대학을 역사화하고 성찰하지 못하는 것은 사학이 지배하는 대학 구조와 관련 있다. 사립대 교수들이 자기 학교 문제조차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서 대학을 연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학자들은 왜 자신이 속한 대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내놓지 않았던 걸까? 이 질문에 최근 <대학과 권력>을 펴낸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사진)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답했다. 그는 연구와 강의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 <독립을 꿈꾸는 민주주의> 등 저서 집필 등으로 바쁜 중에도 10여년간 지속적으로 대학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왔다고 한다.

책의 절반이 구한말부터 이승만 정권까지의 이야기인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대학권력들이 막 등장하는 형성기여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론 “박정희 정권 이후 자료들이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기록관을 두고 1차 자료를 보관해둔 대학도, 치부를 과감히 드러내고 반성하는 대학사(史)를 낸 곳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최근에야 결성된 대학사 연구 소모임 학자들과 함께 대학권력, 국가권력, 시장권력 3주체 각각을 더 자세히 연구해 들어갈 예정이다.

최근 <대학과 권력>을 출간한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사진 김정인 제공
최근 <대학과 권력>을 출간한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사진 김정인 제공

그는 책 말미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학 개혁 방향을 제안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피해갈 수 없게 된 대학 구조조정을 대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사립대학을 공영화하고, 국공립대학의 비중을 확대해야 하구요.” 그는 구조조정을 할 때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을 별개로 접근해 대학 양극화 문제도 같이 해결하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주문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공립대 네트워크를 임기 내에 추진하고 싶다”(<한겨레> 2월7일치 12면)고 밝힌 것에 대해, 김 교수는 “국공립대나 사립대 쪽의 반발이 거셀 텐데, 이런 반발을 뚫고 나갈 정도의 의지가 있을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국공립대 네트워크란, 전국의 국공립대학이 공동의 운영체제를 마련한 뒤 수업 및 학점을 교류하고 더 나아가 공동입학·공동학위까지 주는 방식을 말한다.

김 교수는 대학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던 중 1988년 서울대 학생들이 남한만의 단독올림픽 개최를 규탄하면서 기습적으로 시위를 벌일 것에 대비하여 교수들이 직접 교문 경비에 나선 장면을 찍은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의 사진이 당시 국가권력과 대학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2004년 서울대학교에서 발간된 <대학신문 사진으로 본 서울대학교 50년>이란 사진집에 실린 이 사진에는 “당국은 86년 아시안게임에 이어 88년 올림픽 기간 중에도 ‘가정 학습’이란 명목으로 대학가에 임시 휴교령을 내렸다”는 설명을 실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주간을 맡고 있는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진 자체가 국가권력과 대학의 종속을 보여주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기사에 사진을 쓰게할 수 없다”면서 사진 제공을 거부했다.

이에 김 교수는 “그 사진은 내가 2004년 사진집 발간 작업을 하며 대학신문사에 추천한 사진 중 하나다. 그때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는데 2018년에 문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현재 서울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사진 김정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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