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시스터
로저먼드 럽튼 지음, 윤태이 옮김/나무의철학(2018) 속내까지 알 정도로 가깝지만, 다시는 안 볼 듯 싸우는 사이. 제일 강력한 경쟁자이자, 제일 친밀한 동맹. 우리가 자매를 묘사할 때 쓰는 말들이다. 같은 디엔에이(DNA)를 공유한 자매들은 비슷하기에 서로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그만큼 한데 묶여 비교되거나 동일시되는 일도 많기에 서로 떨어지기를 갈망한다. 여기에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두 자매가 있다. 비어트리스와 테스. 뉴욕의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는 언니 비는 평생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았다. 런던의 예술 학교에 다니는 동생 테스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어느 일요일, 비는 엄마에게서 동생 테스가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는다. 바로 런던으로 날아간 비는 임신 중이었던 테스가 정체 모를 사람에게서 지속적 위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동생의 실종이 우연이 아님을 직감한다. 결국, 테스는 며칠 뒤에 비극적인 모습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경찰을 포함한 그 누구도 비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로저먼드 럽튼의 <시스터>의 도입부이다. 2010년에 발표된 <시스터>는 작가의 데뷔작임에도 꽤 영리하게 짜인 소설이다. 심리 스릴러 계열의 이 작품은 정교한 서사 기법으로 독자성을 확보하려 한다. 비의 관점에서 1인칭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는 테스의 실종이 발발한 시점부터 비의 행적을 따라가는 이야기와 모든 사건이 끝난 듯한 시점에 비가 국선변호사인 라이트씨에게 진술하는 이야기가 교차한다. 독자는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었다는 말은 듣지만, 범인의 정체와 동기에 대해서는 끝까지 알지 못한 채 따라간다.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충격을 줄 반전까지 준비해두었다. 그렇지만 <시스터>가 남다른 건 특이한 서술 방식 때문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 작품은 현재 영미 스릴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일반적 경향을 띠고 있어서 특별해진다. 전통적인 스릴러에서 여성은 쉽사리 피해자의 처지로 떨어졌고 남성에게 구원받았지만, 요즈음의 스릴러들에서 위험에 처한 여성을 구하는 사람은 또 다른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다른 피해자의 처지를 공감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인간과 제도에 대항해서 싸운다. 즉, <시스터>는 제목에 충실하게, 너른 의미의 자매에 대한 소설이다. 역사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 하는 여성은 늘 망상이라거나 감정 과잉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비는 이런 주위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생 테스의 삶에 대한 의지를 믿고서 끈질기게 단서를 찾아다닌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만난 다른 피해자들도 동생처럼 끌어안는다. 마지막에 이르면 비 본인도 자신이 구해낸 새로운 자매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같은 자매라고 해도 여성은 각각의 개성과 입장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모두 다른 세계의 여성을 자매애로 묶어주는 건 공통의 위협에 맞서서 서로를,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구할 것이라는 신념이다. 가볍게 취급되었던 여성의 삶에 귀를 기울여주고, 이 세계를 살아갈 용기를 심어주는 사람, <시스터>는 이것이 ‘자매’의 정의라고 말하는 듯하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로저먼드 럽튼 지음, 윤태이 옮김/나무의철학(2018) 속내까지 알 정도로 가깝지만, 다시는 안 볼 듯 싸우는 사이. 제일 강력한 경쟁자이자, 제일 친밀한 동맹. 우리가 자매를 묘사할 때 쓰는 말들이다. 같은 디엔에이(DNA)를 공유한 자매들은 비슷하기에 서로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그만큼 한데 묶여 비교되거나 동일시되는 일도 많기에 서로 떨어지기를 갈망한다. 여기에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두 자매가 있다. 비어트리스와 테스. 뉴욕의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는 언니 비는 평생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았다. 런던의 예술 학교에 다니는 동생 테스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어느 일요일, 비는 엄마에게서 동생 테스가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는다. 바로 런던으로 날아간 비는 임신 중이었던 테스가 정체 모를 사람에게서 지속적 위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동생의 실종이 우연이 아님을 직감한다. 결국, 테스는 며칠 뒤에 비극적인 모습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경찰을 포함한 그 누구도 비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로저먼드 럽튼의 <시스터>의 도입부이다. 2010년에 발표된 <시스터>는 작가의 데뷔작임에도 꽤 영리하게 짜인 소설이다. 심리 스릴러 계열의 이 작품은 정교한 서사 기법으로 독자성을 확보하려 한다. 비의 관점에서 1인칭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는 테스의 실종이 발발한 시점부터 비의 행적을 따라가는 이야기와 모든 사건이 끝난 듯한 시점에 비가 국선변호사인 라이트씨에게 진술하는 이야기가 교차한다. 독자는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었다는 말은 듣지만, 범인의 정체와 동기에 대해서는 끝까지 알지 못한 채 따라간다.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충격을 줄 반전까지 준비해두었다. 그렇지만 <시스터>가 남다른 건 특이한 서술 방식 때문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 작품은 현재 영미 스릴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일반적 경향을 띠고 있어서 특별해진다. 전통적인 스릴러에서 여성은 쉽사리 피해자의 처지로 떨어졌고 남성에게 구원받았지만, 요즈음의 스릴러들에서 위험에 처한 여성을 구하는 사람은 또 다른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다른 피해자의 처지를 공감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인간과 제도에 대항해서 싸운다. 즉, <시스터>는 제목에 충실하게, 너른 의미의 자매에 대한 소설이다. 역사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 하는 여성은 늘 망상이라거나 감정 과잉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비는 이런 주위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생 테스의 삶에 대한 의지를 믿고서 끈질기게 단서를 찾아다닌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만난 다른 피해자들도 동생처럼 끌어안는다. 마지막에 이르면 비 본인도 자신이 구해낸 새로운 자매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같은 자매라고 해도 여성은 각각의 개성과 입장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모두 다른 세계의 여성을 자매애로 묶어주는 건 공통의 위협에 맞서서 서로를,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구할 것이라는 신념이다. 가볍게 취급되었던 여성의 삶에 귀를 기울여주고, 이 세계를 살아갈 용기를 심어주는 사람, <시스터>는 이것이 ‘자매’의 정의라고 말하는 듯하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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