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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장티푸스 메리’는 어떻게 마녀가 되었나

등록 2018-01-25 19:20수정 2018-01-25 22:36

위험한 요리사 메리-마녀라 불린 요리사 ‘장티푸스 메리’ 이야기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곽명단 옮김/돌베개·1만2000원

1906년 미국의 휴양지로 유명한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한 상류층 저택에서 가족과 하인들 6명이 집단으로 장티푸스에 걸린다. 치사율이 20%에 이르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당시엔 면역법이나 치료법이 없었지만, 다행히 이들은 생명을 건진다.

역학자 조지 소퍼는 끈질긴 추적 끝에 그 저택에서 일하던 여성 요리사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37살의 아일랜드 이민자 메리 맬런. 그가 요리사로 거쳐온 집마다 장티푸스가 발병해 그 숫자가 24명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건당국은 경찰관과 함께 그녀를 체포했다. 병원에 끌려간 맬런은 법원의 명령서 없이 소변과 대변, 혈액 표본을 채취당했다. 그녀가 장티푸스 보균자임이 확인됐다.

<뉴욕 아메리칸>은 1909년 6월 30일자 기사에 실은 그림에서 솥에서 피어오른 연기에 비춰진 해골 모양의 모습을 그려넣는 등 메리 멀런을 마녀처럼 형상화했다. 뉴욕 공립 도서관, 돌베개 제공
<뉴욕 아메리칸>은 1909년 6월 30일자 기사에 실은 그림에서 솥에서 피어오른 연기에 비춰진 해골 모양의 모습을 그려넣는 등 메리 멀런을 마녀처럼 형상화했다. 뉴욕 공립 도서관, 돌베개 제공

1907년 한해만 전국에서 장티푸스로 2만8971명이 사망해 ‘국가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상황이었다. 사람들의 이성은 작동하지 않았다. 황색저널리즘으로 유명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운영하는 신문사 <뉴욕 아메리칸>은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하며 “인간 장티푸스균”이란 선정적인 제목을 썼다. 몇달 후엔 맬런을 마녀처럼 묘사한 삽화와 함께 실명을 공개한 큼지막한 기사를 내보내 80만부를 팔아치웠다. 학회에선 어떤 의사가 그를 ‘장티푸스 메리’라고 부른 별명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이 별명은 ‘타락’한 여성들을 뜻하는 말로까지 쓰인다.

1909년 6월 <뉴욕 아메리칸>은 메리 맬런의 실명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 ‘장티푸스 메리’”란 표현과 함께 맬런이 해골처럼 생긴 장티푸스균을 계란처럼 깨뜨려 프라이팬에 넣고 있는 커다란 삽화를 그려 보도했다. 뉴욕 공립 도서관, 돌베개 제공
1909년 6월 <뉴욕 아메리칸>은 메리 맬런의 실명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 ‘장티푸스 메리’”란 표현과 함께 맬런이 해골처럼 생긴 장티푸스균을 계란처럼 깨뜨려 프라이팬에 넣고 있는 커다란 삽화를 그려 보도했다. 뉴욕 공립 도서관, 돌베개 제공

그는 3년 뒤에 ‘요리사를 그만두고, 매달 보건국에 보고’하기로 하는 조건으로 풀려난다. 5년 뒤, 한 병원에서 25명이 장티푸스에 걸리고 2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맬런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이름을 바꾸고 문제의 병원 주방에 요리사로 취직한 것이 드러나고 그는 또다시 병원에 수감된다. 그 뒤 69살에 뇌졸중으로 사망할 때까지 23년 동안 병원이 있는 섬을 나오지 못한다.

메리 맬런으로 추정되는 인물(왼쪽)이 노스브라더섬에서 다른 환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 <뉴욕 아메리칸> 1909년 6월 30일자. 뉴욕 공립 도서관, 돌베개 제공
메리 맬런으로 추정되는 인물(왼쪽)이 노스브라더섬에서 다른 환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 <뉴욕 아메리칸> 1909년 6월 30일자. 뉴욕 공립 도서관, 돌베개 제공

매우 인상적인 사실은 같은 시기 토니 라벨라, 앨폰스 코틸스, 프레더릭 모슈처럼 똑같이 수십명의 장티푸스 집단 발병을 일으킨 건강 보균자 남성들은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을 뿐 ‘장티푸스 프레더릭’ 같은 모멸적인 별명으로 불리거나 신문 기사에 오르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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