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카파. 1937년 5월 스페인 내전의 현장을 16㎜ 영사기로 촬영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근대의 발명품인 사진은 맨 처음부터 본성이 혼란스러웠다. 과학/마술, 예술/상업, 저널리즘/감시, 창조/모방 같은 상반되는 평가 속에서 의혹과 논란의 대상이었다. “꿈꾸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을 그린다는, 기술 복제에 대한 거부감과 비난이 그 시작이었다.
이 모든 논란에 아랑곳없이 포토저널리즘에 굵은 획을 새긴 사진가들이 있다. 미국 언론학자 수지 린필드는 비평서 <무정한 빛―사진과 정치폭력>의 3분의 1을 할애해 3명의 인물과 그들의 사진 철학을 조명한다. 로버트 카파(1913~54, 헝가리→미국), 제임스 낙트웨이(69·미국), 질 페레스(71·프랑스)가 그들이다.
■ ‘낙관주의자’ 카파 티브이(TV)가 등장하기 전 포토저널리즘의 전성기인 1930~50년대까지 가장 전형적인 전쟁사진가. 스페인 내전의 한순간인 <어느 병사의 죽음>은 전설적 작품으로 기억된다. 2차 대전, 인도차이나 전쟁 등에서도 최전선을 누볐다. 린필드는 “전쟁 한복판에서 찍었든 민간인 사이에서 찍었든 카파가 스페인에서 찍은 사진은 자발성을 기념하는 사진이며, 인간임을 경험하는 것이 전시에조차, 강압 아래서조차 경이로 가득한 매우 기쁜 일인임을 암시한다”고 평가했다.
■ ‘파국주의자’ 낙트웨이 20세기 후반의 전쟁과 학살, 대형 재난 등을 담은 낙트웨이의 사진은 카파와 대척점에 있다. 묘사는 충격적일 만큼 잔인하며 본능적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린필드는 그의 사진이 아니라 현시대가 그렇다고 설명한다. “로버트 카파가 정치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충동이 일치하던 행복한(?) 시대를 살았다면, 우리는 그런 충동들이 산산조각 난 야만적 허무주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카파는 명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낙트웨이는 그런 주장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 ‘회의주의자’ 페레스 그는 장례식장과 묘지를 자주 찾았다. 이런 곳은 분명 혁명가를 위한 장소다. “타나토스, 즉 죽음의 본응이 혁명의 동력이며, 모든 장례식은 감정적 카타르시스이며 정치적 저항이자 복수의 산실”인 법이다. 보스니아 내전, 이슬람혁명 직후 이란, 르완다 내전의 인종청소 등을 담은 그의 사진에는 “위로할 길 없는 깊은 비애가 스며 있으며, 대개의 좌파 사진을 특징짓는 허세는 찾아볼 수 없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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