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마녀의 씨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현대문학(2017) 작년인 2017년 특히 더 조망 받은 작가가 있다면, 아무래도 마거릿 애트우드일 것이다. <시녀이야기>(황금가지)가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 ‘훌루’에서, <그레이스>(황금가지)가 또 다른 스트리밍 사이트인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원작 소설에도 새로이 관심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된 이 작품들이 현재와 강렬한 연결점을 가지면서 빛이 바래지 않는 생명력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애트우드가 이제 현대의 고전 작가 반열에 들어섰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녀의 씨>는 애트우드가 영원한 고전 셰익스피어를 다시 쓴 2016년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서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다시 해석한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하나인 이 소설은 여러 희곡 중에서도 <템페스트>를 재해석했다. 다른 작품들이 셰익스피어 원전을 직간접적으로 이용하기는 했지만, <마녀의 씨>는 연극 <템페스트>를 직접적인 뼈대로 삼았다. 메이크시웨그 극장의 예술감독으로서 매번 독창적인 극을 내놓아 성공을 거둔 펠릭스 필립스는 동생에게 배반당한 프로스페로처럼 믿고 의지했던 부하 직원 토니에게 배신을 당해 그 자리에서 쫓겨난다. 사랑하는 딸 미란다의 환영과 함께 외딴곳에서 은둔하던 펠릭스는 플레처 교도소에서 문학 수업을 맡아 수감자들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만들어나간다. 그렇게 12년이 흐르고, 문화유산부 장관이 된 토니와 그를 쫓아내는데 협조했던 장관 샐 오낼리, 펠릭스에게 호의적이었던 로니 고든, 샐의 아들 프레디가 플레처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자 펠릭스는 최대의 복수극을 계획한다. <마녀의 씨>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노골적으로 세 겹의 층위에서 재현된다. 하나는 펠릭스가 수감자들과 함께 해석하며 제작하는 교도소 연극으로서의 템페스트이다. 두 번째는 교도소를 방문한 토니 일행을 두고 벌어지는 복수 작전으로의 템페스트이다. 세 번째는 펠릭스의 삶 그 자체인 템페스트이다. 축출당한 왕과 그가 사랑하는 딸이 사회에서 그들을 밀어낸 자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이 나머지 두 겹의 템페스트와 얽히면서 <마녀의 씨>는 정교하게 건설된다. 이 모든 템페스트를 관통하는 주제는 물론 복수이다. 내 자리를 빼앗고 밀어낸 이들에게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복수심은 인간에게 핵심적 감정이지만, 한편으로는 부정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결국은 복수하는 자까지도 제물로 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행해진 불의를 갚아주지 않고 사는 삶이 고요하기만 하단 말인가? 좋은 복수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기도 하다. 흔히 복수의 반대말은 용서라고들 한다. 복수를 잊지 않는 사람이 결국에는 용서도 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마녀의 씨>를 읽었을 때 발견한 것은 복수의 반대편에는 결국 자유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복수심에 사로잡혀 섬에 갇혀 있던 프로스페로가 결국에는 요정 아리엘과 마녀의 씨 캘리반을 풀어주고 받아들였듯이, 펠릭스도 은유의 감옥인 복수로부터 자기를 풀어낸다. 우리의 삶에는 적어도 한 번은 폭풍우처럼 복수가 밀어닥친다. 거기서 침몰하지 않고 자유로워지기, 모든 복수자들이 궁극에는 달성해야 할 과업이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현대문학(2017) 작년인 2017년 특히 더 조망 받은 작가가 있다면, 아무래도 마거릿 애트우드일 것이다. <시녀이야기>(황금가지)가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 ‘훌루’에서, <그레이스>(황금가지)가 또 다른 스트리밍 사이트인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원작 소설에도 새로이 관심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된 이 작품들이 현재와 강렬한 연결점을 가지면서 빛이 바래지 않는 생명력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애트우드가 이제 현대의 고전 작가 반열에 들어섰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녀의 씨>는 애트우드가 영원한 고전 셰익스피어를 다시 쓴 2016년 작품이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서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다시 해석한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하나인 이 소설은 여러 희곡 중에서도 <템페스트>를 재해석했다. 다른 작품들이 셰익스피어 원전을 직간접적으로 이용하기는 했지만, <마녀의 씨>는 연극 <템페스트>를 직접적인 뼈대로 삼았다. 메이크시웨그 극장의 예술감독으로서 매번 독창적인 극을 내놓아 성공을 거둔 펠릭스 필립스는 동생에게 배반당한 프로스페로처럼 믿고 의지했던 부하 직원 토니에게 배신을 당해 그 자리에서 쫓겨난다. 사랑하는 딸 미란다의 환영과 함께 외딴곳에서 은둔하던 펠릭스는 플레처 교도소에서 문학 수업을 맡아 수감자들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만들어나간다. 그렇게 12년이 흐르고, 문화유산부 장관이 된 토니와 그를 쫓아내는데 협조했던 장관 샐 오낼리, 펠릭스에게 호의적이었던 로니 고든, 샐의 아들 프레디가 플레처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자 펠릭스는 최대의 복수극을 계획한다. <마녀의 씨>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노골적으로 세 겹의 층위에서 재현된다. 하나는 펠릭스가 수감자들과 함께 해석하며 제작하는 교도소 연극으로서의 템페스트이다. 두 번째는 교도소를 방문한 토니 일행을 두고 벌어지는 복수 작전으로의 템페스트이다. 세 번째는 펠릭스의 삶 그 자체인 템페스트이다. 축출당한 왕과 그가 사랑하는 딸이 사회에서 그들을 밀어낸 자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이 나머지 두 겹의 템페스트와 얽히면서 <마녀의 씨>는 정교하게 건설된다. 이 모든 템페스트를 관통하는 주제는 물론 복수이다. 내 자리를 빼앗고 밀어낸 이들에게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복수심은 인간에게 핵심적 감정이지만, 한편으로는 부정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결국은 복수하는 자까지도 제물로 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행해진 불의를 갚아주지 않고 사는 삶이 고요하기만 하단 말인가? 좋은 복수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기도 하다. 흔히 복수의 반대말은 용서라고들 한다. 복수를 잊지 않는 사람이 결국에는 용서도 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마녀의 씨>를 읽었을 때 발견한 것은 복수의 반대편에는 결국 자유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복수심에 사로잡혀 섬에 갇혀 있던 프로스페로가 결국에는 요정 아리엘과 마녀의 씨 캘리반을 풀어주고 받아들였듯이, 펠릭스도 은유의 감옥인 복수로부터 자기를 풀어낸다. 우리의 삶에는 적어도 한 번은 폭풍우처럼 복수가 밀어닥친다. 거기서 침몰하지 않고 자유로워지기, 모든 복수자들이 궁극에는 달성해야 할 과업이다. 박현주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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