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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내게 역사 보는 눈 열어준 건 ‘양키마담’들”

등록 2018-01-03 05:01

민주화운동가 문동환 목사
97살에 새책 <두레방 여인들> 펴내
미국 군사주의 비판·대안 모색

문익환·윤동주 탄생 100주년 맞아
“‘어떻게 사느냐’의 중요성 새삼 느껴”
올해 97살로 <두레방 여인들>을 낸 문동환 목사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한겨레>와 만나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형 문익환 목사에 대해 “형님은 국민운동에 앞장을 서고, 김일성도 만나서 통일의 횃불도 되고, 기념할만하지. 형이 그런 역할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싶어”라고 말했다.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올해 97살로 <두레방 여인들>을 낸 문동환 목사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한겨레>와 만나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형 문익환 목사에 대해 “형님은 국민운동에 앞장을 서고, 김일성도 만나서 통일의 횃불도 되고, 기념할만하지. 형이 그런 역할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싶어”라고 말했다.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 문 대통령이 일을 꽤 잘하는 모양이지?”

1970~80년대 서슬퍼런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도 타협하지 않는 형형한 정신으로 재야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지도자. 진보적인 민중신학자로 정권에 의해 두차례 한신대 교수직에서 해직당한 학자이자 목회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평화민주당(평민당)을 이끌고,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 위원장으로 활동한 정치인. 그런 그가 97살의 지친 몸으로 침상에 누워 있었다. 최근 <두레방 여인들>(삼인)이란 새 책을 펴낸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자택을 찾아온 <한겨레> 취재진에게 그는 농담처럼 물었다. “옛날에 문동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 역사에서 사라지려 한다는 것을 기사화하려는 거야?”

문동환 목사는 90대에 접어들어서 오히려 더 왕성한 저술 활동을 이어왔다. 2012년 <바벨탑과 떠돌이>(삼인), 2015년 <예수냐 바울이냐>(삼인), 2017년 <두레방 여인들>까지 2~3년 주기로 새책을 써냈다. 두레방은 그의 아내인 문혜림 여사가 1986년 의정부에 설립한 민간단체다.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성착취 근절과 탈성매매, 군사주의 반대를 위해 활동한다. 책은 두레방과 인연을 맺은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처절한 사연들을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해, 그 원인이 된 군사·산업사회 미국에 대한 비판, 그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 원주민 인디언들과 출애굽 히브리 공동체의 생명문화 전통을 재조명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문 목사는 “두레방 여인들은 대부분 농촌에서 올라와서 동생들 공부시키기 위해 몸을 판 희생적인 사람들이야. 세상은 그들을 ‘양키 마담’이라고 격하하지만, 이들이 두레방에서 친교를 나누면서 삶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맺히게 됐어. 거기서 내가 역사를 보는 눈을 발견했어. 인간이 경쟁적으로 살 때는 비참하게 되지만 오랜 고난을 통해서 생명의 꽃이 피고 열매 맺는다고.” 유영님 두레방 원장은 책에서 “문 박사님이 인생의 마지막 과제로 생각하셨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 목사는 지난 4월까지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신문을 보고, 원고를 다듬는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집필 활동은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아들 문태근씨는 전했다. 근래에 문 목사는 침상에 누워서 라디오를 들으며 세상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하루 세 번 아내 문혜림 여사와 함께 식사하는 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문씨는 “두 분이 식사를 할 땐 식사기도 노래를 부르고, 잠자리에 들기 전엔 꼭 아버지가 어머니께 키스를 해주신다”고 말했다.

1987년 2월 전국적으로 벌어진, 군부 정권의 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군 추모와 규탄 시위에 참가한 문동환 목사(가운데)가 부인 문혜림(왼쪽)·형수인 고 문익환 목사 부인 박용길(오른쪽)씨와 함께 종로 거리에서 입마개를 쓴 채 최루가스를 견디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7년 2월 전국적으로 벌어진, 군부 정권의 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군 추모와 규탄 시위에 참가한 문동환 목사(가운데)가 부인 문혜림(왼쪽)·형수인 고 문익환 목사 부인 박용길(오른쪽)씨와 함께 종로 거리에서 입마개를 쓴 채 최루가스를 견디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문 목사가 인터뷰를 한 바로 다음 날 1917년 12월30일 태어난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윤동주가 우리 형하고 가까운 친구야. 나는 그때 아이라서 윤동주하고 직접 접촉은 많이 못 했어. (윤동주는) 떠들썩하게 자기를 나타내는 친구는 아니었어. 깊이 사색하면서 아름다운 시를 적어냈지. 나도 50살이 지나서 그걸 발견했거든. 그런데 일본인들한테 죽임을 당했어. 참 기가 막히지. 나처럼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껴.”

올해는 형 문익환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문익환 목사는 영화 <1987>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열사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가족을 중심으로 올 6월까지 서울 강북구 수유동 통일의 집을 박물관으로 재단장하는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계획 중이다. 최근 문 목사가 떠올리는 형 문익환 목사의 모습은 그가 1987년 12월 대선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재였던 평화민주당(평민당) 입당 제안을 받았을 때 입당을 만류하던 모습이었다. “형님이 내가 정계에 뛰어드는 걸 반대했어. ‘이미 몸을 더럽힌 내가 여기서 하면 되지 너는 더럽히지 말라’면서. 형님이 나를 많이 아껴줬지.”

재작년 9월 문 대통령이 조카인 배우 문성근과 함께 문 목사의 자택으로 병문안을 온 적이 있다. 이 인연으로 지난해 5월 문 목사가 문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엽서를 보냈고, 그 다음 달 문 대통령이 답장을 보내오기도 했다. 문 목사는 인터뷰 마지막에 문 대통령과 정치권에 이렇게 당부했다. “내 염원이라면 문 대통령이 민주화운동과 아시아 평화에 공헌하고, 중공(중국)과 친하게 돼서 중공을 통해 북조선에 영향을 주고, 남북조선이 가까워지도록 정치를 해주기를 바랄 뿐이지. 정당들은 경쟁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정말 사회를 좀 더 민주적인 세상으로 만드는 선의에서 경쟁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세상이 오는 것이 나의 꿈이야.”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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