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망라하는 통합지식 갈망”
진화론·에너지보존법칙이 촉발
분자생물학·진화심리학·행동경제학…
경계 넘나드는 융합 새 지평 열어
진화론·에너지보존법칙이 촉발
분자생물학·진화심리학·행동경제학…
경계 넘나드는 융합 새 지평 열어
피터 왓슨 지음, 이광일 옮김/책과함께·3만3000원 “우리가 과학의 역사를 통해 누차 배우는 것은, 지식의 확장으로 말미암아 과거에는 서로 무관했던 현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 관계를 새롭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덴마크 핵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국제 통일과학 백과사전> 첫째 권(1938)에 쓴 기고의 한 구절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선조들로부터 모든 것을 망라하는 통합적 지식에 대한 갈망을 물려받았다.” 짧게 잡아도 르네상스(14~16세기) 이후 몇백년간 서구가 주도해온 자연과학은 쪼개고 또 쪼개어 존재의 시원과 물질의 근본을 찾아온 과정이 한 축을 이뤘다. 다른 한 축은 관측과 사고실험에 기대어 광대무변한 천체의 탄생과 운동 원리를 규명하고자 했다. 학문 영역이 덩달아 세분되면서 장벽도 생겨났다. 그런데, 각기 다른 분야의 지식이 상당한 정도로 축적된 어느 순간 새 지평이 열렸다. 경계를 넘나드는 통합 연구가 낯설지 않게 된 것. 학제간 분화가 더는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시야를 좁힌다. 영국 저널리스트 출신의 지성사 저술가 피터 왓슨은 최신작 <컨버전스>에서 그런 현상의 배경과 과정, 미래 전망을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짚어낸다. 왓슨은 <생각의 역사 1, 2>(2005~2009), <거대한 단절>(2012)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원제 ‘컨버전스’(convergence)는 ‘수렴’(한곳으로 모임), ‘융합’ 정도로 풀이된다. 앞서 미국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1998년에 쓴 <컨실리언스>(consilience)의 번역본을 최재천 교수가 2005년 <통섭-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제목으로 옮긴 바 있다. ‘수렴’이든 ‘통섭’이든, 좀체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던 분야들의 전문 지식이 서로 연결되고 조화를 이루며 단일성을 향하는 현상은 이미 대세다. “(오늘날) 과학은 철학, 윤리, 역사, 문화, 나아가 정치에까지 침투해 어떤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대해 학계 일부에선 ‘과학 환원주의’ 또는 ‘지적 제국주의’라는 비판도 나온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였던 중세가 이젠 ‘철학은 과학의 시녀’ 시대로 바뀌는 게 아니냐는 우려일 테다(이때 ‘시녀’는 실은 ‘없어서는 안 될 보조자’라는 뜻에 가깝다). 그러나 지은이는 컨버전스야말로 “현대 과학사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지적 전환”이라고 확신한다. “과학들이 상호 수렴됨으로써 드러난 총체적 일관성과 질서가 새로운 역사의 단계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으며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 시대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그 출발점을 18세기 중반에서 찾는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과학사는 대개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의 마법’(세계는 질서정연하며 몇몇 자연법칙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편집자 주)에서 시작하거나, 코페르니쿠스-케플러-갈릴레이-뉴턴으로 이어지는 천문학 분야의 주요한 관찰과 발견, 또는 1660년대 영국왕립학회와 파리 왕립아카데미 창설로 대표되는 ‘과학혁명’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과학들의 거대한 통합과 컨버전스는 그보다 한참 뒤인 1850년대에 시작한다. 에너지 보존(열역학 제1법칙)이라는 아이디어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 관한 이론이 세상에 알려진 때가 바로 1850년대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세른) 강입자가속기의 일부 장치인 뮤온 관형코일의 모습.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지대에 있는 이 설비는 길이 27㎞, 지름 3m의 거대한 원형 터널 구조로, 원자핵이나 미립자를 거의 빛의 속도로 충돌시킬 때 생기는 물리 현상을 관찰하는 실험 장치다. 초미시 세계인 입자물리학 실험으로 천문학의 영역인 ‘빅뱅’을 소규모로 재현해, 찰나에 이뤄진 우주 탄생의 비밀을 직접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CERN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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