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글·그림/교양인·1만4800원 웅크린 사람의 형상을 지구본으로, 24조각 나눈 파이를 시계 판으로 삼는다. 사람이 곧 세상이고, 무슨 ‘한방’도 ‘금방’ 가는 시간 속에 속절없다.(“인생이 ‘한방’이란 말에 현혹된 자는, 인생은 ‘금방’이라는 말을 깨닫지 못한 자다.”) 지은이 김영훈 <한겨레> 화백의 그림은 이렇게 쉽게 온다. 그리고 오래 머문다. 좋은 그림은 보는 이 안에서 스스로 충분한 휴식시간을 갖는 방식으로 머무른다고 생각한다. “단번에 세상을 ‘박음질’하려 애쓰지만 한 땀 한 땀 정성껏 꿰매는 게 ‘삶’이다.” 한 땀 한 땀 꿰매진 성실한 작품은 감상자의 기억 속에서 비로소 쉰다. 오래, 수작일수록 더 오래. 짧고 묵직한 언어와 간명한 그림에 담긴 성찰. 지은이가 2013년부터 현재까지 <한겨레>에 연재해온 ‘김영훈의 생각 줍기’를 토대로 그림산문집을 펴냈다. 지은이가 그리고 쓰는 ‘그림산문’의 소재는 일상의 흔한 풍경에서 온다. 우산꽂이에서. “자식은 종종 부모를 ‘우산’ 취급한다. 화창한 날은 ‘불편’해하고, 궂은 날은 그 밑에 숨는다.” 배수구를 보면서. “‘교만’의 배수구는 바닥보다 높고, ‘겸손’의 배수구는 바닥보다 낮다. 교만한 자가 역겨운 것은 ‘배설’ 못한 오물의 악취 때문이다.” 길거리에서도. “‘숨’ 쉬는 대지는 발자국을 남기지만… 딱딱하게 ‘굳은’ 아스팔트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성찰과 영감이 가득한 곳은 일상임을 그는 깨우친다. 일상 끝에 휴식이 필요한 모든 이 역시 수고와 정성으로 매 순간을 작품으로 만드는 존재일지 모른다. 책 속에서 쉬고 싶은 당신에게 권한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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