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뜸의 거리
고노 후미요 글·그림. 홍성민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7000원
고노 후미요 글·그림. 홍성민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7000원
잠깐독서
2005년 일본에 원폭의 아픈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기에는 시간이 퍽이나 흘렀다. 하지만 만화가 고노 후미요는 시간을 탓하는 게 아니라, 다시금 살아 남은 자의 무책임을 꼬집는다. 히로시마 출신인 자신조차 “무섭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되는 이야기, 파고들어서는 안 될 영역”이라며 그 그림자로부터 도망쳐왔다.
그가 지난해 10월 <저녁뜸의 거리>라는 만화를 펴낸 이유다. 후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국이 원폭의 참상을 모른 채 평화를 누리는 이 꺼림칙함은 내가 히로시마 사람으로서 (원폭 문제와 무관하다고) 느꼈던 부자연스러움보다 크게 생각되었다.”
책은 “최근 10년 동안의 만화계에서 가장 큰 수확”이란 상찬과 함께, 그해 12월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만화부문 대상을, 올 5월에는 데즈카 오사무 만화상 신생상을 받았다. 만화의 가치를 인정한 건 물론이거니와 애써 지우려했던 원폭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다는 걸 방증한 셈이다.
책은 1955년 히로시마로 돌아간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던 순간, 미나미는 우치코를 두고 달아난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자신의 몸 속에 새 생명을 잉태하는 일이 죄인 탓이다. 8월6일 피폭을 당한 이후부터다. “죽어 나뒹구는 시체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걷게 되었”고 “헛디딘 발에 시커멓게 탄 시체의 피부가 벗겨져 미끄러지기도 했다.” 도처에 죽어가는 자를 외면했던 기억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미나미의 죄책감과 같은 피폭의 아픔이 조카들을 통해, 21세기에 들어서까지 얼마나 질기게 이어지는지, 책은 담박하고, 심지어 필체도 가볍게 그려나가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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