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미들코프 지음, 이종인 옮김/사회평론·5만5000원 1760년대 이전만 해도 미 대륙의 거주자(원주민 제외)도 영국 왕의 백성이었다. 조선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20여년 사이 이들은 백성에서 자유, 상식, 급기야 혁명을 말하는 주권자들로 변모했다. 조선은 영조에서 정조로 이동했을 뿐이다. 이 비교불가의 변혁이 견인되거나 추인한 미국 초기의 정치·사회·민중사를 유명 사학자 로버트 미들코프가 1천쪽 가까이의 서적에 담았다. 1783년 미 독립의 동력을 두고, 대영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식민지 경제 착취 가중이란 외부 원인, 청교도·자유주의 성향의 내부 원인 따위로 개략할 순 있다. 하지만 진짜 인과는 정연하게 추려내기 어려워 보인다. 역사는 우연의 필연적 만남인 탓이다. 영국의 과세정책에 대한 초기 항의 때만도 지도자에게든 민중에게든 ‘독립’은 목표도 과제도 아니었다. 미들코프의 말마따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랭클린조차 “실용적인 사람이었”고 “실용적인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 제도가 예전의 비리를 모두 뛰어넘었다”는 불만이 활자화한 신문 기고(전쟁 전), “영국 왕이 여기 있다면 그자의 심장을 꺼내 구워 먹어버리고 싶다”는 저잣거리 날선 언어(전쟁 중)는 산개한 민중들이 서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혁명’ 앞에 사열해감을 보여준다. 이 역시 궁문을 닫은 이후의 상소 접수를 금하고, 새해 앞둔 도성민에게 이자 붙여 쌀을 꾸어주는 조선의 1783년과 대비된다. 책은 미국 독립전쟁사라 일러도 부족함 없다. 대영제국 군대에 맞선 ‘백성’들이 게릴라전으로 승리를 쟁취해가는 과정이 전투 지형도와 함께 고증되었다. ‘옥스포드 미국사’의 첫 권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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