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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여성들이여 목소리를 높여라, 더 크게

등록 2017-12-14 19:30수정 2017-12-14 19:43

수전 팔루디의 ‘페미니즘 고전’
26년 만에 번역출간
대중매체에서 쏟아져 나온
반페미니즘 반동 물결 분석

백래시-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아르테·3만8000원

먼 훗날 미래의 역사가들은 2010년대 후반의 한국을 뭐라고 기록할까? ‘메갈리아와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몸체를 드러낸 강력한 페미니즘의 물결이 일어난 뒤…'에 이어질 문장을 말이다. ‘과거 여성 참정권을 획득했을 때처럼 낙태 합법화, 남녀 소득 평준화 등 돌이킬 수 없는 여성 권리의 진전을 일궈냈다' 아니면 ‘마주쳐 일어난 남성들의 격렬한 반동에 부딪혀 주저앉아버렸다'?

1991년 출간돼 페미니즘의 고전 반열에 오른 미국 언론인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가 출간 26년 만에 한국에 뒤늦게 상륙했다. 26년의 세월을 거슬러 온 그녀가 우리를 붙들고 말한다. ‘백래시’(반격)를 조심해야 한다고. “반(反)페미니즘적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 이는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공격이다.”

미국에서도 그랬다. 여성의 권리는 목표에 가까워져 온 것 같지만 마치 점근선처럼 결코 목적지에 안착하지는 못했다. 1910년대 초, 여성운동가들은 참정권 투쟁을 시작했고 1920년 여성 투표권을 쟁취했다. 하지만 1920년은 미스아메리카대회가 시작된 해이기도 했다. 재향군인회와 애국여성회는 여성 지도자들을 ‘빨갱이’로 몰아댔고 전세는 역전됐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들에게 수백만개의 고소득 일자리를 제공하고 강인한 직장 여성을 애국자로 추앙했다. 1941년은 원더우먼이 탄생한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여성들부터 직장에서 몰아냈다. 정부와 미디어는 여성들에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백래시>가 주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책이 나온 시기인 1980년대다. 대중매체를 통해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메시지는 간명했다. ‘집에 가라.’ ‘애 낳아서 길러라.’ ‘모든 문제의 근원은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들을 ‘페미-나치'라고 부른 극우 방송인 러시 림보가 만든 프로그램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던 시절이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스티븐 킹의 소설 <미저리>(1990)에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불을 내뿜는 악마 같은 여자로 부풀렸고, <위험한 정사>(1987)에선 한 무시무시한 독신녀가 유부남의 가정을 파멸로 떨어뜨리려 한다. 영화와 텔레비전에서는 (지금의 한국처럼) 남자만 득실대는 마초 활극이 워낙 넘쳐 나서 여성 배역의 수가 크게 줄 정도였다. 방송 토크쇼에 나온 ‘전문가'들은 ‘페미니즘이 여성들을 더 비천한 삶으로 몰아넣는다’고 충고했다.

20대 여성들의 페이스북 단체인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지난해 6월1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가해자 중심적인 언론보도와 사회의 여성혐오 조장에 일조하는 강남역 살인사건 관련 언론보도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불꽃페미액션’모임은 지난해 5월17일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를 시작해 여성으로서 느끼는 모든 폭력과 여성혐오에 행동으로 저항하는 커뮤니티이다.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20대 여성들의 페이스북 단체인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지난해 6월1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가해자 중심적인 언론보도와 사회의 여성혐오 조장에 일조하는 강남역 살인사건 관련 언론보도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불꽃페미액션’모임은 지난해 5월17일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를 시작해 여성으로서 느끼는 모든 폭력과 여성혐오에 행동으로 저항하는 커뮤니티이다.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마지막으로 일부 ‘해방된' 여성들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일부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독립 신화 때문에 출세 가도를 달렸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직장 생활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했다’고 고백하는 회고록을 내 인기를 얻었다. 팔루디는 “그것(반격)이 사적인 색채를 띨 때, 한 여성의 내부에 똬리를 틀고 안에서 그녀의 관점을 바꿔버릴 때, 그래서 그녀가 억압은 모두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상상하게 될 때, 그리고 결국 그녀 역시 자발적으로 이 반격에 동참하게 될 때 반격은 가장 위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독립적인 여성을 공격하고 헐뜯기 위한 공격들은 조작과 왜곡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다. 특히 언론이 맨 앞줄에 섰다. “성공한 여성은 비참한 삶을 산다”는 장기 대규모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뉴욕 타임스>, <포브스> 같은 곳에 글을 기고하던 심리학자 스럴리 블로트닉은 사실 학력과 연구를 위조한 사기범이었다. 1986년 하버드와 예일대의 교수들이 결혼 경험이 없는 30살 대졸 여성이 결혼할 가능성은 20%, 35살은 5%, 40살은 1.3%로 떨어진다는 수치를 연구 단계에서 언론에 흘렸고, 미국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뉴스위크>는 이 수치를 ‘결혼 부족 사태’라는 제호와 함께 급격히 꺾이는 그래프를 표지에 실으면서 40살 여성은 결혼보다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곧 미국 인구조사국의 여성 연구자 진 무어먼의 연구(30살은 66%, 35살은 41%, 40살은 23%)로 반박당했고, 3년 반 뒤 하버드와 예일대 연구진은 결혼 통계를 빼놓고 결과를 발표했다. <뉴스위크>는 20년 뒤인 2006년의 같은 주, ‘20년 전 우리는 왜 틀렸는가’라는 제목으로 <백래시>에서 팔루디가 자신들을 비판했던 내용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했다.

1986년 여성의 결혼 가능성에 대해 잘못된 수치를 보도한 <뉴스위크> 표지.
1986년 여성의 결혼 가능성에 대해 잘못된 수치를 보도한 <뉴스위크> 표지.
이 시기에 이런 반격이 일어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1970년대 초반은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들의 지지가 가장 크게 확대된 시기였다. 이 짧은 시기에는 여성해방이 일종의 유행이었고 그 이후로 이 유행은 잦아들었다. (…) 1980년대에 접어들자 남성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 여성의 권리를 크고 완전한 것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지은이는 정치경제적 상황이 큰 원인이었다고 분석한다. 보수 성향인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재임한 1981~1989년 정부는 세출을 줄였고, 노조를 분쇄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경제의 중심축이 이동했고, 생산직 남성 노동자 수백만명이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젊은 베이비붐 세대의 남성들은 ‘아버지와 형들’이 누린 부의 수준에 도달할 수 없었다. “여성들은 점점 급진적인 성향을, 남성들은 점점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다. 레이건을 가장 많이 지지한 집단이 젊은 남성이었던 것이다.” 이 분석은 청년 취업률이 사상 최악 수준이고, 젊은 남성들이 여성혐오의 선봉에 선 지금의 한국에도 유효하다.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도 미국과 같은 경로를 밟을까? 마치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보낸 뒤 보수우익의 반격으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이 찾아온 것처럼? 팔루디는 지난 200년간 여성들이 전투에서 승리했던 때는 세 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졌을 때라고 했다. 단도직입적인 의제, 대중행동, 물리적 저항. “(1920년에) 여성들이 결국 투표권을 거머쥘 수 있게 된 것은 전미여성당 당원들이 국회의사당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자신들의 몸을 백악관 문에 쇠사슬로 결박하고 투옥과 강제 급식을 견뎌낸 뒤였다.” 1989년에도 수세에 몰린 낙태 선택권 옹호 운동의 판세를 뒤집은 것은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옹호하는 여성 50만명이 국회의사당에서 행진을 하며 워싱턴 디시(D.C.) 최대의 시위를 벌이고 낙태 클리닉 문에서 낙태 반대 시위대와 맞붙었을 때”였다. 거대한 규모로 운집한 여성들(과 연대한 남성들)이 강남역 10번 출구만이 아니라 모든 출구를 에워쌀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백래시>의 저자 수전 팔루디. ⓒ지그리트 에스트라다 2016
<백래시>의 저자 수전 팔루디. ⓒ지그리트 에스트라다 2016
출간 15년 뒤… “우리의 더 큰 적은 자본주의의 유혹”

수전 팔루디가 1991년 <백래시>를 출간했을 때 그는 32살이었다. 한국어판으로 664쪽에 이르는 본문과 120쪽이 넘는 미주로 이뤄진 두툼한 책을 잡으면, 합리성을 무기로 ‘반(反)여성운동 진영’ 전체와 싸우려 했던 젊은 언론인의 결기가 느껴진다.

팔루디는 2006년 쓴 출간 15주년 기념 서문에서 여성들이 직면한 더 큰 어려움은 정치와 미디어의 반격 보단 자본주의의 유혹이라고 지목한다. 기업들은 ‘자기 결정’은 ‘자기 계발’로 ‘경제적 독립’은 ‘구매력’으로 페미니즘의 윤리를 살짝 비틀었다. 기업들은 팔루디에게도 청바지나 하이힐 심지어는 가슴 확대 수술 브랜드에 그녀의 페미니스트 인장을 박아달라는 권유를 해왔다(물론 거절했다). 팔루디는 여성들이 고위 정치인과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 자체는 애초부터 페미니즘 운동의 목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아무리 많은 스톡옵션과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의회 의석과 이사회 자리를 차지한다 해도 현 상태가 유지되는 한 여성들은 정치적 교착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팔루디는 지금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여성들의 다음 공습은 지금과 같은 세상에 대한 공격”이 될 것이라는 여성해방의 적들의 우려를 현실이 되게 해주자고 말한다.

문화평론가 손희정은 해제에서 <백래시>가 ‘백인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의 한계에 갇혔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사실과, 대중문화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적대적으로만 설정해 그 둘 간의 긍정적 상호작용은 폐기해 버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백래시>를 읽으며 반복적으로 기시감을 느꼈다”면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 충분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고, 그것이 팔루디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라고 말한다. 특히 손희정은 “여성들은 절박함 속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정부는 여전히 낙태죄 폐지가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페미니스트의 싸움은 짧게 끝나지 않는다. 선언을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 페미니즘에 모두를 거는 열정보다는 나가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 <백래시>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이라고 말한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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