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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보수의 품위

등록 2017-12-07 20:13수정 2017-12-07 23:05

[강명관의 고금유사]
1751년 담헌 홍대용(洪大容)은 자신의 종고모부이자 스승인 김원행(金元行)을 찾아가 궁금한 바가 있다고 말을 꺼냈다. 김원행은 “무슨 일인가? 말해보라”고 선선히 답했다. 김원행은 송시열을 떠받드는 노론의 정통을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김원행에게 새파란 담헌이 쏟아낸 말은 모두 송시열과 노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중 압권은 “‘여구’(驪狗)란 추한 욕설로 미워한 것이 너무 심합니다”라는 말이었다.

‘여구’는 ‘여주(驪州)의 개자식’이란 욕이었다. ‘여주의 개자식’은 다름 아닌 송시열의 정적 윤휴(尹鑴)였다. 송시열은 윤휴를 증오한 나머지 ‘여주의 개자식’이라 불렀던 것이다. ‘여주의 개자식’만이 아니었다. 송시열은 윤휴를 여러 별명으로 불렀다. 여주에 사는 윤휴가 다리에 신경통을 앓았기 때문에 그것을 꼬집어 ‘여각’(驪脚) 곧 ‘여주의 병든 다리’라 불렀고, 때로는 ‘흑수’(黑水) 곧 ‘검은 물’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여’(驪) 자는 원래 ‘검은 말’을 뜻하므로 ‘검은 물’이라 불렀던 것이다.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였던 송시열은 엄정하고 절제된 삶의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하여 뭇사람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윤휴에게만은 자제력을 잃고 더러운 언사를 내뱉었던 것이다.

송시열은 원래 윤휴와 함께 학문을 토론하던 다정한 벗이었다. 하지만 기해예송(己亥禮訟) 때 윤휴는 서인 송시열과 의견을 달리해 대립했고, 이내 남인의 편에 앞장을 섰다. 송시열과 윤휴는 정적이 된 것이다. 하지만 당파적 대립만으로 송시열이 윤휴를 ‘여주의 개자식’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다 깊은 이유는 윤휴가 주자를 비판하고 자신만의 새 학설을 주장한 데 있었다. 윤휴가 나름 진보적 학자인 데 반해 송시열은 주자의 학문에 한 점의 오류도 없다고 믿었던 보수파였다. 여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주자는 대단한 학자이자 사상가였지만, 무오류의 존재일 수는 없었다. 윤휴가 주자의 무오류성을 비판한 것은 학문의 세계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비판은 송시열의 학문적 권위의 근거를 허무는 것이었다. 가장 아픈 곳을 찔린 나머지 송시열은 절제력을 잃고 윤휴를 ‘여주의 개자식’ ‘검은 물’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는 욕설로 평소의 품위를 잃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자신이 철석같이 믿던 진리가 눈앞에서 부정당하는 사람의 심리를!

자신을 보수라 일컫는 자유한국당의 대표, 최고위원, 국회의원들이 쏟아내는 말을 듣노라면, 품위라고는 한 점도 없다. 시정잡배의 언사다. 이게 이 사람들의 본색인 성싶다. 권력이 그들을 가리고 있을 때는 본색이 드러나지 않았다. 권력의 외피가 벗겨지자 본래 갖고 있었던 생각과 언어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그들은 아픈 곳을 찔린 송시열과 다를 바 없다. 송시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송시열은 깊은 공부가 있었지만, 자유한국당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그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기야 최근 이들의 정치적 행각을 보노라면, 그들이 보수였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막말을 태연히 내뱉는 한 그들은 앞으로도 보수가 아닐 것이다. 끝으로 물어보자. 송시열과 노론이 정치권력을 장악했던 조선사회가 발전을 했던가, 아니면 스스로 무너져갔던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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