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김종광 지음/다산책방·각 권 1만4000원 “감히 내 말에 거역하는 자가 있지를 않나. 부모 핑계를 대고 가지 않겠다는 자가 없나. 갖은 이유로 왕명을 우습게 아니 어찌된 일인가? 내가 그 꼴을 더는 못 보겠노라. 너희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어도 가도록 하여라.” 이렇게 영조가 버럭 하며 등을 떠밀어 1763년 8월3일 배를 타게 된 제11차 조선통신사. 세명의 사신을 필두로 역관, 격군, 악공 등 500여명의 사내들은 서울을 떠나 대마도, 오사카, 나고야, 후지산을 거쳐 도쿄에 닿았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장장 332일의 여정. 청나라 연경에는 뇌물을 써서라도 가려는 사람이 줄을 섰지만, 왜국행에 대해서 양반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꽁무니를 뺐다. 태풍 한번에 황천길로 떠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민과 종들은 서로 가겠다고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기해년(1719) 무지년(1748) 두 사행 때 왜국 다녀온 것들이 다 부자가 되었다며? 노만 젓다 왔는데도 일확천금했다며? 가야지, 나라도 그런 횡재수가 없을쏘냐.” 어차피 여기서도 굶어죽거나 맞아 죽을 판이니 장밋빛 소문에 희망을 걸었다. 능청스런 입담과 해학에 능한 소설가 김종광의 역사소설 <조선통신사>는 ‘오합지졸’에 가까운 500여 사내들의 일본 여행을 시트콤처럼 재현해낸다. “왕후장상과 영웅호걸이 나오지 않는 역사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의도에 걸맞게 종놈과 격군과 소동의 입을 빌려서다. 틈만 나면 음주와 투전에 목숨을 걸고, 음담과 영조 뒷담화에 열을 올리고, 거친 풍랑과 고래도 만나고, 오랑캐라 깔보던 일본 문화에 깜짝 놀라고, 통신사 역사상 전무후무한 살인사건까지 겪는다. <해사일기> <일본록> 등 당시 기록을 충실히 참고해 18세기 조선 민중의 삶이 손에 잡힐 듯 완성된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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