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후드 프로젝트
-유전자와 문화의 이중 나선 사이에서
데이비드 슬론 윌슨 지음, 황연아 옮김/사이언스북스·2만5000원
데이비드 슬론 윌슨이 주도한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의 무대가 된 빙엄턴시 전경. 사이언스북스 제공
찰스 다윈 이래로 진화론은 눈부신 연구성과를 제출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나날이 넓혀가고 있다. 그렇다면 진화론이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바꾸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한개 전체 도시를?
진화생물학자이자 진화인류학자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 뉴욕주립대 교수가 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했다. 그가 주도한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BNP)를 비롯해 지역사회에 뛰어든 학자의 모험담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은 책이다.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의 시작은 이랬다. 그는 2003년에 자신이 있는 뉴욕주립대의 연구 대학 4곳 중 한곳인 빙엄턴대 교수로 일하면서, 진화론적 관점으로 연구하는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과 함께 연계 전공 학위 프로그램인 ‘에보스’(EvoS)를 시작해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이에 고무된 그는 에보스의 학생들과 자원을 활용해 현장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랜트 부부가 핀치를, 제인 구달이 침팬지를 연구하듯, 윌슨은 도시를 자신의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빙엄턴대가 있는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 뉴욕주 빙엄턴시를 진화론적 연구방법론으로 연구하고 개선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먼저 그는 시 교육감의 도움을 얻어, 공립 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발달에 기여하는 ‘개인 성향’과 ‘외부 환경’을 측정하는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를 학생의 거주지와 경제적 수준 등을 보여주는 정보와 합쳐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구현했는데, 도시 곳곳에서 좋은 이웃이 많이 사는 ‘도덕적 언덕’과 반사회적인 이웃이 많은 ‘죽음의 계곡’이 융기·침강한 드라마틱한 지형도가 나왔다. 이어 그는 설문조사 결과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발한 실험을 고안했다. 그중 하나는 대학원생들과 할로윈과 크리스마스 때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집 바깥을 장식으로 꾸민 집들을 일일이 조사하는 것이었다. 집 밖을 장식으로 꾸민 사람들은 이웃과 명절의 기쁨을 나누려는 선한 이웃이라고 본 것이다. 두 가지 실험 결과에서 나타난 지형도는 서로 상당히 비슷했다. 그는 “만일 우리가 친절한 행동을 선호하는 환경 또는 ‘생태적 지위’를 이해할 수 있다면, 친절한 행동의 생태적 지위를 넓히고 불친절한 행동의 생태적 지위를 축소시켜 지리정보시스템상의 골짜기를 언덕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이웃 학문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또다른 ‘네이버후드 프로젝트’에도 뛰어든다. 인문학자와 의기투합해 ‘공공정책을 위한 진화 연구소’를 만들고, 가톨릭이 바티칸에서 연 진화론 콘퍼런스 등 다양한 대화의 장을 다니며 만난 연구성과물을 정력적으로 소개한다. 윌슨은 대양 위에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교육, 심리학, 종교, 경제, 도시학 등 이웃 ‘학문의 섬’(지은이는 ‘상아 군도’라고 표현한다)들을 찾아가 어린아이처럼 빛나는 눈으로 그 섬에서 일궈낸 성과에 찬탄한다. 그러고는 진화론이 각 분야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거대한 발견임을 열정적으로 전파하고, 진화론적 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윌슨의 타 영역을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주는 영역이 바로 종교다. 윌슨은 그 자신도 무신론자이지만 새로운 무신론 운동의 ‘네 기수’ 대니얼 데닛,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강경한 태도와는 사뭇 다른 자세를 취한다. 그는 “신(新)무신론자들에 대해서 가장 화나는 점은 이들이 진화가 종교의 본질에 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대해서는 무시한 채 합리성과 과학과 진화의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그에게 종교는 일상의 필요에 적응하며 진화해온 문화적 체계다. 종교에 문제가 있다면 주먹을 휘두를 것이 아니라, 진화론을 통해 종교의 본질을 밝히고, 대화를 통해 믿음에서 비합리성을 제거해나가도록 돕는 것이 진화학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과학과 종교 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템플턴재단의 지원을 받아, 종교의 본질을 연구하는 데 협력할 진화학자와 종교학자의 공동체를 만들고, 사후 세계관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진화와 적응이란 관점에서 어떤 사후 세계관이 왜 특정한 시기와 장소에서 발생했고, 왜 다른 사후 세계관보다 잘 전파됐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온 2011년까지 빙엄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는 5년 동안 진행됐는데, 아직 도시를 개선하기 위한 실제 작업에 착수한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윌슨이 그의 공언대로 빙엄턴을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21세기판 ‘언덕 위의 도시’로 만들 수 있을지는 후속작이 나와야 알 수 있겠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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