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헌목 지음/반비·1만8000원 서울과 수도권을 뒤덮고, 한적한 농촌 마을에까지 기어코 올라가는 아파트. 아파트를 보면 지겨움을 넘어 증오가 느껴지지만, 또한 아파트는 한국 인구의 절반 이상, 도시민의 70%가 거주하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 방식이기도 하다. 정헌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인류학자로서 아파트에 대한 이런 양가적 감정을 뒤로하고,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 아파트 단지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란 무엇인지”, 삶의 현장인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이 안에서 공동체를 꾸릴 가능성은 없는지 묻는다. 정 교수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2년 동안 서울 인근 수도권 한 도시의 대단지 아파트를 대상으로 현장연구(필드워크)를 시작한다. 지인을 통해 부녀회 임원과 가까운 주민을 만나 인터뷰를 시작했으나 벽에 부딪혀, 자율방범대를 통해 간신히 인터뷰를 이어갔다. 2005년 만들어진 온라인 커뮤니티에 8년간 올라온 수만건에 달하는 글과 게시물부터 댓글까지 모두 읽었다. 예전처럼 잦은 매매를 통해 자산을 불려나갈 가능성이 줄어든 비강남권 아파트에서 오래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아파트는 삶의 터전이면서, 가치가 떨어져서는 안 되는 소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8살 여아가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는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에서도 지은이는 강고한 ‘무관심의 문화’에 틈새가 생기고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목격한다. 사건 이후 두 달간 분개한 30~40명의 부모가 똘똘 뭉쳐 관리사무소와 시청을 상대로 강력하게 항의해 시장의 사과를 받고, 재발 방지 대책을 실시하도록 하는 데까지 이른다. 하지만 침묵하는 다수는 사고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것은 아파트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견지했고, 잠시 만들어졌던 공동체도 좌초하고 만다. 지은이는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서도, 낮아서도 곤란하다는 묘한 긴장 관계 속에 한국의 브랜드 아파트 단지는 매 순간 달라지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현실화될 수 있는 ‘공동체’의 잠재성을 품은 채 우리 곁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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