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변혁운동 주도한 NL
탄생부터 흥망성쇠 기록과 성찰
“NL의 공과, 냉철히 돌아보자”
탄생부터 흥망성쇠 기록과 성찰
“NL의 공과, 냉철히 돌아보자”
박찬수 지음/인물과사상사·1만5000원 지난달 6일, 국회에선 때아닌 주사파 논란이 일었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출신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겨냥해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사파, 전대협 운동권이 장악한 청와대”라고 색깔론을 들고나온 것이다. 1980년 후반부터 30년간 한국의 사회변혁운동을 이끌어온 ‘엔엘’(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이라 불리는 운동 사조의 변천을 제대로 모르면 전 의원의 말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알 수가 없고, 더 나아가 한국 현대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5공 시절 군에 강제징집됐다가 엔엘 열풍에 휩싸인 대학가로 돌아온 82학번 복학생이었고, 1989년엔 전대협 3기 출범식을 취재했던 말단 경찰기자, 2012년엔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파동 보도를 책임진 편집국장이었던 박찬수 <한겨레> 논설실장은 엔엘의 역사를 정리할 적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엔엘 사조가 우리 사회에 남긴 흔적 중 가장 아픈 부분은 과거의 잘잘못을 공개적으로 성찰하지 않고 격동의 시기를 지나쳐온 점”이라며 지난해 <한겨레> 토요판에 15회로 연재했던 기사를 대폭 보강해 책으로 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이 학살을 방조한 데 대한 반감으로 인해 국내에선 반미 정서가 퍼지기 시작했다. 광주,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은 이런 반미 정서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1985년 반미와 통일운동을 전면에 내세우는 엔엘의 첫번째 자생적 그룹이 만들어졌다. 서울대 본부서클인 고전연구회에서 활동하던 김영환(법대 82학번), 정대화(법대 82학번) 등 10여명의 학생이 서클 산하에 ‘단재사상연구회’라는 언더서클을 만든 것이다. 1986년 봄, 김영환이 ‘강철’이란 필명으로 주체사상을 따르자는 내용의 ‘강철서신’을 대학가에 뿌렸고, 이는 학생운동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다. 단재사상연구회가 전국 주요 대학에서 그동안 학생운동의 주도 세력인 서클을 해산하는 운동을 주도하면서, 엔엘은 학생운동권의 주도권을 틀어쥐게 된다. 물론 이런 서클 해체가 학생운동의 재생산 구조를 무너뜨려, 1990년대 이후 학생운동 쇠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는 비판도 이후 나온다.
1989년 6월29일 한양대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남한 쪽 준비위원회 발대식을 하기 위해 임종석 전대협 의장(가운데)이 원형극장에 들어서고 있다. 임 의장은 신출귀몰한 행보와 수려한 외모로 대중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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