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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300년 대표 작가들의 글에 접속하라

등록 2017-11-30 19:48수정 2017-11-30 20:40

한국 산문선(전 9권)
안대회·이종묵·정민·이현일·이홍식·장유승 편역
/민음사·각 권 2만2000원(전권 16만원)

지난 100년 사이 한문에서 한글로 글말이 옮겨오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점점 많은 사람이 이 땅에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글을 그대로 읽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인들은 다른 언어권의 글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글까지도 번역해야 하는 이중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런 벽을 오래 깎아내 큼지막한 구멍을 내는 대규모 기획 번역서의 출간은 그래서 항상 반갑다.

민음사에서 <한국 산문선>(전 9권)을 펴냈다. 삼국시대 원효부터 20세기 정인보까지 1300여년에 걸친 작가 229인의 산문 618편, 원고지 1만8000매에 달하는 분량의 산문들이 실렸다. 조선 성종 때인 1478년 서거정(1420~1488)이 신라 시대부터 당대의 글까지 망라해 편찬한 시문선집 <동문선> 이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산문 선집이라고 한다. 1권은 신라부터 고려까지, 2권부터 9권까지는 조선 시대, 9권에 뒤쪽에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문장가 32명의 산문이 실렸다.

우리 고전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힘써온 안대회, 이종묵, 정민 교수 등 중견학자와 이현일, 이홍식, 장유승 등 신진학자들이 세 팀으로 나뉘어 번역·해설했다. 번역 기간만도 2010년부터 8년에 이른다. 편역자들은 “한문 산문 중 사유의 깊이와 너비가 드러나 지성사에서 논의되고 현대인들에게 제공하는 글을 선정했다. 각종 문체를 망라하되 형식성이 강하거나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은 배제했으며 내용의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을 거치며 당대의 문장가부터 노비까지, 논설, 상소문, 전기부터 일기, 편지, 묘비명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형식의 글들이 실렸다. 현대와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시대별 해설과 작가 소개와 글에 대한 해설을 실었고, 한문 원문은 책 뒤쪽에 모아뒀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 산문선> 역자 장유승, 이홍식, 이현일, 안대회, 정민, 이종묵. 민음사 제공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 산문선> 역자 장유승, 이홍식, 이현일, 안대회, 정민, 이종묵. 민음사 제공

2권에 실린 <동문선> 편찬자 서거정의 ‘우리 동방의 문장’의 한 단락은 <한국 산문선>의 발간사로 그대로 써도 손색이 없다. “우리 동방의 문장은 한과 당의 문장도 아니고 송과 원의 문장도 아니며 바로 우리나라의 문장이다. 당연히 역대의 문장과 더불어 천지 사이에 나란히 알려져야 할 것이니, 인멸되어 전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 오늘날 배우는 사람들이 정말로 도에 마음을 두고 문장을 꾸미지 않으며, 경전을 근본으로 삼고 제자백가를 기웃거리지 않으며 올바른 문장을 숭상하고 화려한 문장을 배척하여 고상하고 올바른 문장을 짓는다면 필시 성현의 경전을 보충하는 글이 될 방도가 있을 것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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