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지지 않는 말들의 한恨국어사전
이문영 지음/후마니타스·2만원 ‘10을 취재해서 1을 쓰라’는 말이 언론계에서 금언처럼 전해진다. 가장 강력하게 세상을 뒤흔들 사실을, 가장 경제적으로,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 좋은 기사라고 생각하는 저널리즘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취재수첩에 적혔다 버려지는 9에는 어떤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웅크린 말들>은 이문영 한겨레 기자가 2013~2014년 <한겨레21>에 연재한 ‘이문영의 한恨국어사전’의 기사들과 이후 <한겨레> 토요판에 백남기 농민, 세월호, 제주 강정 해군기지 등을 기사로 쓰며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대부분 전면적으로 새롭게 쓴 글로 묶은 책이다. 폐광 광부, 구로공단 노동자, 에어컨 수리 기사, 알바생, 성소수자 등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전압 높은 문체로 쓴 르포르타주라는 점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과 <침묵의 뿌리>(1985)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 조세희는 추천사에서 “‘난쏘공’의 난장이들이 자기 시대에 다 죽지 못하고 그때 그 모습으로 이문영의 글에 살고 있다”고 썼다. 문학평론가 권성우(숙명여대 교수)도 이렇게 적었다. “이문영의 기사(글쓰기)는 김훈, 고종석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문학적 기사 쓰기의 계보를 창의적으로 일구어 나가고 있다. (…) 이 책은 이 시대 문학과 예술이 충분히 조명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인생, 가장 낮은 곳의 실존, 가장 짙은 그늘을 단아한 문장으로 담담하게 응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2017년판 <난쏘공>이라 할 수 있겠다.”
2014년 1월 제주 강정. “저 멀리 대형 크레인의 줄이 바위 위에 선 멧부리 박의 목 위로 겹쳐졌다. 그의 목이 크레인 줄에 매달린 것 같은 착시를 일으켰다. 국가의 근육에 목 졸려 질식돼 온 제주도의 과거와 오늘과 내일이 그의 목에 포개지는 듯했다.” 사진 김흥구
전직 광부, 구로공단 노동자 등
말해지지 않는 자들의 이야기
“김훈 고종석 계보 잇는 문학적 기사” 지은이는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모르는 의미를 담은 은어, 속어, 조어를 수집해서 ‘한恨국어사전’을 만든다. ‘한恨국어사전’에 수록된 말들은 ‘한韓국어사전’에는 실리지 않는 “대한韓민국이 누락한 대한恨민국”, “우리에 끼지 못한 우리”를 보여준다. ‘한恨국어사전’에 수록된 ‘쫄딱구덩이’는 ‘작은 구멍’이란 뜻으로 영세 또는 하청 탄광을 일컫는다. 전이출(가명, 당시 56살)은 쫄딱구덩이를 거쳐 겨우 국내 최대 민영 탄광인 동원탄좌의 정규직 광부가 됐지만, 폐광 이후 물탱크 청소, 도로 공사 인부, 태백의 쫄딱구덩이를 전전하다 자살을 시도하고 카드회사의 압류장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다시 사북으로 돌아와 강원랜드 하청업체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강원랜드 하청 신세는 쫄딱구덩이를 벗어나려 필사적이었던 그를 다시 가둬 버린 쫄딱구덩이였다. 동원탄좌 폐광 광부(734명)의 3분의 1이 쫄딱구덩이에 빠졌다.”
2017년 6월 강원도 사북의 철거된 동원아파트 부지 뒤로 보이는 동원탄좌와 카지노. “동원아파트는 재난 뒤의 참혹을 닮았다. 깨진 유리 조각과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과 기억도 깨지고 버려졌다.” 사진 김흥구
2017년 6월 서울 구로공단과 가리봉동. “찬란은 빈곤을 묻어 감췄다. 고층의 빌딩이 첨단으로 깎아지르는 동안 가난한 삶도 수직으로 가팔라졌다. 거칠한 공단이 매끈한 얼굴로 바뀌어도 메마른 노동은 디지털로 진화하지 못했다.” 사진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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