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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재벌개혁 없으면 혁신성장 어렵다”

등록 2017-11-20 20:47수정 2017-11-21 10:05

오늘 IMF 구제금융 신청 20년
학계 ‘외환위기 이후’ 논의 활발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국가주도성장 뒤탈 분배 양극화
핵심 과제는 재벌개혁·중기육성”

박형준 글로벌정치경제연 연구원
“IMF 뒤에도 자본-국가 결탁 여전”
‘인간다운 삶’추구 경제모델 필요
IMF 외환위기 20년을 기념해,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와 과제를 분석하는 학계의 논의가 활발하다. 한겨레자료사진
IMF 외환위기 20년을 기념해,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와 과제를 분석하는 학계의 논의가 활발하다. 한겨레자료사진

21일은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꼭 20년을 맞는 날이다. 1997년 여름 동남아시아 국가부터 시작된 외환위기는 그해 가을 한국을 연쇄적으로 강타했고,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던 정부는 결국 기업 구조조정, 공공부문 민영화를 강제하는 아이엠에프 체제에 투항해야 했다. 1998년 한해에만 2만여개 기업이 문을 닫고 160만명이 실직했던 그 혹독했던 시기를 돌아보며, 학계에서도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20년’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아이엠에프 경제위기 20년, 한국사회의 격차 해소 전략과 정책’을 주제로 사회정책연합학술대회가 열린 데 이어 학술단체협의회도 ‘아이엠에프 20년, 한국 사회의 변화와 전망’을 놓고 연합 심포지엄을 열었다. 앞서 열린 학술대회가 소득보장·의료·주택·교육·사회복지 서비스 등 각 분야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자리였다면, 학술단체협의회에선 구제금융이란 ‘사건’의 맥락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지난 17일 학술단체협의회가 서울 서대문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연 심포지엄에선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국가가 주도하던 한국 경제가 자본 주도로 바뀌었다는 통설을 뒤집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모았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유종일 케이디아이(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경제 양극화의 역사적 기원, 구조적 원인, 해소 전략: 아이엠에프 위기 기원론과 성장체제 전환 지체론’이란 발표문에서, 지니계수와 소득 양극화 정도를 수치화한 이아르(ER)지수 등 여러 수치를 볼 때 모든 지표가 1993~1994년에 하락세에서 상승세로 반전한다며 1990년대 초반부터 이미 양극화가 시작되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양극화를 아이엠에프 위기와 그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제도개혁의 산물로 보는 것은 ‘박정희 시대 이래의 관치경제가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양극화와 저성장을 초래하고 말았다’는 그릇된 결론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국가 주도 성장전략(요소투입형 추격성장체제)은 1960년대 시작되어 1980년대 말 ‘3저 호황’을 마지막으로 수명을 다했고, 이후 ‘혁신주도형 지속성장체제’로 전환이 지체되면서 성장 동력이 급격하게 쇠퇴하고 분배의 양극화가 동시에 진행됐다고 본다.

유 교수는 “아이엠에프 이후 시장개혁이 양극화의 심화를 불러온 것은 맞지만, 양극화의 시발점은 1990년대 초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분절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가 심화한 것 때문”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고용 안정성 강화 등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부작용을 되돌리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대기업과 재벌 개혁과 공정거래 강화, 근본적으론 중소기업의 경쟁력과 협상력 강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덧붙여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세우며, ‘혁신성장’을 위해 규제 완화를 하고 4차 산업혁명을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 정부와 과연 무엇이 다를지 걱정된다. 교육, 연구개발, 산업정책의 혁명적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확실한 재벌개혁 없이 진정한 혁신성장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자본이 국가와 결탁해 부를 축적한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으며, 사회를 희생해 자본을 축적하는 경향이 공고해졌음을 지적하는 연구도 나왔다. 박형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아이엠에프 20년, 국가와 재벌과의 관계 변화’라는 발표문에서 “1997년의 위기는 한국의 지배 블록이 개발독재 시기에 택했던 외부적 넓이 지향의 자본축적 체제가 한계에 도달하여 발생한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외부적 넓이 지향’이란 아직 자본주의에 편입되지 않은 영역을 상품화하며 자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거나 기업 인수·합병으로 ‘파이’를 키우는 것을 말하고, 반대로 ‘깊이 지향’이란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이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주어진 파이의 크기 안에서 이윤의 재분배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박 연구원은 지금까지 한국 경제성장의 지배원칙이자 대자본에 유리한 축적의 기회를 제공했던 ‘선성장 후분배’를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회모델을 만드는 데 특정한 경제모델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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