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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노동 교과서’ <송곳>의 배경이 2003년인 이유는?

등록 2017-11-20 05:00수정 2017-11-20 10:31

<송곳> 최규석 작가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 교수 대담

하종강 “노동문제 사실적 묘사, 현장서도 ‘다시 해보자’ 잇따라”
최규석 ”왜 재벌3세만 주인공일까서 시작, 상호 이해 있다면 발전적 싸움 가능”

만화가 최규석씨(오른쪽)와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케데미 주임교수가 14일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만화가 최규석씨(오른쪽)와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케데미 주임교수가 14일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송곳이 교과서가 되면 세상의 모든 모순은 끝나지 않을까?”(배우 안내상)

네이버에서 3년9개월간 연재하고 지난 8월 완결한 <송곳>(창비)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2003년 대형마트 까르푸 파업을 배경으로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생생하게 보여줘 ‘노동 교과서’란 평을 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노동운동 내부의 문제점이나 노조간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정면으로 담아내 뛰어난 완성도를 갖춘 만화로 올라섰다. <송곳>을 그린 최규석 작가와 주인공 구고신 노동상담소장의 일부 모델이 된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를 지난 1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창작 과정과 뒷이야기를 들었다.

-노동현장에 많이 다니는데, <송곳>에 대한 반응이 어땠나?

하종강(이하 하) 을지대병원이 파업했는데, 여기 노조가 18년 전에 없어졌다가 다시 만들어진 곳이다. 노조를 만든 사람을 최근에 만났는데 “<송곳> 보고 다시 한 번 해보자 결심했다”라고 하더라. 영향받았다는 이야기는 셀 수 없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처럼 유명한 대사들을 보면 대사를 오래 갈고 닦은 것 같다.

만화는 형식적 한계가 있어 대사를 길게 못 쓴다. 계속 압축시키느라 원래 대사는 하나도 안 남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명언처럼 된다. 헌데 명언 같은 말이 위험성이 크다. 항상 그 반대 의미의 말도 만들 수 있다. 구고신이나 이수인이 했던 멋진 대사가 이들을 공격하는 말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런 점을 표현하려 한 거다.

-<송곳>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연재 전에 준비한 기간만 6년이다. 인터뷰한 사람도 50명이 넘는다. 사람들도 그렇고 나도 ‘왜 텔레비전에는 재벌 3세만 나오고 노동자는 안 나오나’ 이런 비판을 했다. 그러다 어느순간 ‘내가 안 해서 없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2003년이 배경인데, 당시 노동운동하는 분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노동운동에 관심이 없었는데,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나 궁금했다.

최 작가가 6월 항쟁 다룬 <100도씨>를 그린 뒤에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이후에 어떻게 살았나 궁금해서 알아보니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았던게 한 계기였다고 하더라.

-만화에 나오는 구고신 소장이 하 교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모델로 한 것이라 들었다.

난 극히 일부다. 2008년부터 만나서 솔직히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웃음). 최 작가가 너무 착하게 생긴 얼굴은 주인공 얼굴은 아니라더라.

캐릭터 구축엔 사울 알린스키 덕을 많이 봤다. 미국에서 빈민 운동을 한 그의 책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을 보면 운동 방법에 대한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효과적이면서도 논란이 될만한 방법들이 나오는데, 현실 안에서 뭔가를 해나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게 좋았다.

-구 소장이 경찰의 얼굴을 모자로 때리는 장면은 주인공이 하는 일이 옳은가 그른가 독자들이 고민하게 하려는 의도 같았다.

엄청난 디테일인 거다. 지금까지 노동문제를 다룬 작품 중에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은 없었다.

고민하게 하는 부분을 안 넣으면 독자가 넓어지기가 힘들다. 노동운동 자체에 반감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부분이 안 들어가 있으면 ‘거짓말한다’고 생각하고 안 본다. 그런 분들도 보고 튕겨나가지 않고 볼 수 있는 만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년9개월간 네이버 연재를 마치고 6권의 단행본으로 완간된 최규석 작가의 <송곳>(창비).
3년9개월간 네이버 연재를 마치고 6권의 단행본으로 완간된 최규석 작가의 <송곳>(창비).

-노동자가 분신자살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노조를 하고 회사와 싸우다 죽음까지 생각하게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독자들이 ‘노조 하면 안 되겠다’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어용노조가 아니면 실제로 그만큼 힘들다. 내가 운영하는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고 얼마 전에 대기업 노조 집행부에 당선된 네 사람이 와서 인사를 했다. 이 사람들이 노조 간부를 한다는 건 정년까지 승진을 포기하는 거다. 위원장 동기들은 다 과장 달았지만 그 사람만 승진 못 했다.

그동안 ‘노동운동을 다룬 작품은 아마추어적이어도 용서해줘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최 작가는 ‘난 그런 말은 듣기 싫다. 어떤 상업만화와 견줘도 완성도에 뒤지지 않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을 거다. 완벽주의자다. 인터뷰한 내용으로도 그리고 남는데, 직접 새벽에 쓰레기수거차 타고 몇 시간씩 다니더라. 모든 장면을 그렇게 그렸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고, 중간에 휴재한 기간도 길었다.

처음 구상은 더 큰 스케일이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처럼 수십 개의 에피소드가 나온 다음에 거대한 서사가 완성되는 구상을 했다. 한 노동운동가가 여러 도시의 많은 현장에서 찬란한 승리도 하지만 처절히 깨지기도 하는 노동활극이었다. 이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러려면 여러 직종을 다뤄야 한다. 이 구상대로 수십 개 업종을 완벽하게 파악하면서 만화를 그렸으면 세월이 더 걸렸을 거다. 이수인 과장으로 나온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을 만나면서 대형마트 한 업종을 파게 됐다. 마트는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가 만나는 곳이다. 이게 신의 한 수였다.

-파업하면서 결합하게 되는 ‘민중권력'이라는 노동운동단체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이 들어 있는 것 같다. 강경한 이념 노선을 가진 단체를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인가.

흔히 말하는 정파와 노선의 문제인데, 어떤 투쟁이든지 정도가 지나치면 유익하지 않다. 촛불집회를 두고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시키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바보가 100만명 모인 거다. 나는 가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걸 ‘좌익소아병’ ‘교조주의’라고도 하는데, 최 작가는 이런 경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다. 이 대목부터 <송곳>이 우리 같은 노동운동가들이 배워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봤다.

노조하는 분들 만나면 내부 투쟁을 제일 힘들어한다. 이들이 겪는 주요한 일인데 뺄 수는 없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14일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 박종식 기자 anak@hani.co.kr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14일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 박종식 기자 anak@hani.co.kr
-구 소장은 젊은 시절 민주화 투쟁을 하다 고문을 당해 몸이 망가졌는데도 계속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한다. 작품 말미엔 거의 죽을 뻔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간을 내주겠다고 병원에 몰려온다. 구고신을 너무 이상적인 인물로 그린 것 아닌가.

실제 있던 일이다. 송영수 부산지역 일반노조 교육위원 이야기다. 그가 열흘 먼저 잡혀서 고문을 당했고, 그 후에 내가 잡혀 고문을 당했다. 우리가 처음에 노동상담 했을 때는 민주노총도 없었고, 공인노무사 제도도 없었다. 상담하는 사람이 교육하고, 노조 설립하고, 파업 준비하고 다 했다. 그렇게 그 친구 손을 거쳐 간 노조가 100개쯤 된다. 고문 후유증으로 신부전증을 오래 앓아 하루 4번씩 투석하면서 한국 최초로 일반노조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주차장 바닥을 피로 흥건히 물들이고 쓰러졌다가, 간과 콩팥을 동시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자기 간을 내주겠다고 병원에 줄 선 사람이 100명이 넘었다.

-예전에 ‘이 작품이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3년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의미심장한 뜻이 있다’고 하셨던데.

노동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계기가 그때 돌아가신 분들 뉴스를 접하면서 시작한 것이고, 이랜드 노조도 그 시점에 활동을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때 연재를 시작했는데, 보수 정권을 배경으로 하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그린 만화구나’라고 보게될까 봐 민주당 정부 시절로 그리는 것이 쓸데없는 장애물을 치우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자들이 많이 탄압당했다. 김주익 열사가 크레인에서 농성하다가 129일 만에 목을 매고 자살했을 때 노 대통령이 “죽음으로 저항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5년 뒤에 노 대통령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한국에선 시민운동하는 사람들도 민주노총은 미워하는 특이한 정서가 있다. 시민과 노동이 분리된 거다.

개혁적 시민 중에도 촛불집회에서 나온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했는데, 이 파업은 박근혜 정부부터 계획된 거다. 그런데 문 대통령 정부를 탄생시켰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문재인이 만만하냐, 너희들이 노무현은 죽였지만, 문재인은 우리가 지킨다”고 한다. 엠비시, 케이비에스 파업 때도 ‘과거엔 못 싸우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서니 파업을 하냐’ 이런 댓글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어떻게 보나.

문 대통령이 ‘노동교육을 하겠다’는 공약을 했는데, 이건 우리가 30년 동안 주장해온 거다. 경기도에서 노동교육을 했던 김상곤 교육감이 교육부총리니까 기대는 한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라고 표현하겠다’고 한 것 등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들하고 똑같지는 않을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해서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만나는 장면 연출했다. 그런데 최근 잠정적으로 결정된 것은 1만명 중의 800명만 직고용하겠다는 거다. 여기에 민주노총이 들러리 서면, 민주노총이 결과에 합의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니까 합의기구에서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에서 숨진 기간제 교사도 순직을 인정해줬지만, 기간제 교사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건 노동자들이 계속 말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문 정부가 수구세력과 싸우기도 힘든데 너희들까지 이러냐’고 할 건 아니라는 거다. 시민과 노동이 하나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송곳>을 많이 봐서 노동운동을 이해하고 동의하도록 하는 게 이 만화의 숨길 수 없는 목적이다.

최규석 만화가, 1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규석 만화가, 1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동의까지는 기대 안 했다. 상호 이해가 있으면 싸움을 하더라도 더 발전적으로 싸울 수 있다. 공유하는 사실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싸우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흔히 보수와 진보 사이에 만리장성이 쌓아져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대충 그어져 있는 점선 같은 거다. 네이버를 연재처로 결정한 것도 중간 영역을 만드는 활동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송곳 2>를 생각한 적 있나?

원래 <송곳>으로 사람들을 노동문제에 입문시키고, 이수인이 주인공인 <수인>, 구고신이 주인공인 <고신> 이렇게 3부작을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을 소재로 다루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잘못 표현하면 ‘그 사람들의 삶을 모욕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는 게 한계에 달했다. 작품을 하는 재미 자체에 몰입하고 싶다. <송곳> 후속작을 영원히 안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잠시 옆길로 갔다 와야겠다.

처음엔 <송곳>이 나오면 보수세력에 공격당할 거다 고민을 했는데, 오히려 진보 진영 내부에서 디테일을 가지고 비판하는 게 많았다. 아는 사람들이 잘난 척하면서 지적하는 게 많아 최 작가가 안 한다는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스토리를 친구한테 받아서 하려고 한다. 현실 기반인데 판타지, 미스터리 이런 요소가 들어가 있다. 내년 초에 1화를 그리는 작업에 착수하는 게 목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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