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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남자들은 왜 남자끼리 욕할 때도 ‘XX년’이라고 할까요?

등록 2017-11-17 08:49수정 2017-11-23 14:32

서울시 젠더자문관 김고연주
남녀 모두 10대에 시작하는
‘만들어진 성 바로알기’ 안내서
“행복의 정의 바뀌는 경험 누리길”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창비·1만2000원

서울시 젠더자문관인 여성학자 김고연주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의 말미에 작품 해설을 쓰면서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이 소설의 특수성”이라고 표현했다. 여자 인생의 보편성. 분홍색 옷을 입고 얌전하게 굴 것을 세뇌받는 어린 시절을 지나, 고기반찬은 오빠·남동생 쪽에 놓인 밥상을 보고 자라면, 몰카를 찍거나 소라넷·일베 경험이 있는 애인을 만날 가능성과 직면한다. 남성보다 낮은 임금과 성폭력 위험 속에서 회사생활을 하고, ‘맘충’ 소리를 들을까 집 밖에서 아이가 울면 놀란 손으로 입을 막기도 한다.

남성에겐 꽤 특수한, 이 ‘고립된 보편성’은 부재하거나 잘못된 젠더관에 기인한다. 김고연주의 네번째 책 <나의 첫 젠더 수업>은 10대부터 읽을 수 있도록 페미니즘과 젠더 이야기를 쉽게 풀어쓴 안내서다. ‘강남역 사건’ 이후로 페미니즘과 젠더를 다룬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10대에게 최적화된 책은 드물었다.

페미니스트를 상징하는 보라색 재킷을 입은 김고연주 서울시 젠더자문관이 1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페미니스트를 상징하는 보라색 재킷을 입은 김고연주 서울시 젠더자문관이 1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지은이는 “생애주기별 성차별과 젠더폭력을 끊기 위해 어릴 때부터 젠더를 아는 힘이 중요하다. 누구나 태어나자마자 자신만의 젠더를 사는데도, 그게 뭔지 가르쳐주는 어른이 드물거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성 교육이 대학에 가지 않거나 가기 전에 노동자가 되기도 하는 10대에게 오늘 당장 필요한 노동의 가치는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이란 미래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김고연주는 성매매 경험이 있는 10대 여성의 인권 침해라는 드문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젠더폭력의 가장 악질적 형태로 볼 수 있는 청소년 성매매를 연구하면서 그는 ‘젠더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확신했다. “제 연구의 결론은 성매매하는 아이와 평범한 아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성매매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이렇게 말해요. ‘난 이미 더럽혀졌어.’ 창녀와 성녀를 이미 구분하고 있죠. 잘못된 젠더관이 아이들에게 질긴 뿌리를 내리고 있어요. ‘82년생 김지영’은 ‘2002년생 김지영’이기도 해요.”

이 책은 젠더, 가부장제, 수평폭력 등 용어의 뜻부터 명확히 알도록 돕고 다양한 시대, 문화, 나라, 인물, 풍부한 통계·연구 자료를 예로 들어 성 고정관념을 바로잡는다.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성을 뜻하는 ‘젠더’는 “단어 자체로 여성성과 남성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고 “타고난 것이 아니니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여성혐오 현상을 설명하는 데 종종 사용되는 ‘수평폭력’은 “수평한 자리, 즉 자신과 비슷하거나 약한 이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을 가리키는데, 폭력은 그 자체로 나쁘지만 이것이 더욱 나쁜 이유는 “문제의 근원을 숨겨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라고 짚어준다. “진짜 적이 누구인지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모성이 선천적 본능이 아니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일본·싱가포르·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에서 실험 중인 새로운 가족형태를 접하다 보면, 남자가 가족 구성원을 대표하는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모성이 ‘도시 전설’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소위 선진국들의 저 도전은 “여성의 일방적 희생으로 완성되는 가족 팀워크란 가능하지 않다”는 전제 위에 있다.

여성적인 것으로 분류되는 붉은색과 레이스·코르셋 등이 원래 남성 패션이었다는 점, 하늘색이 여자아이의 색깔이었다는 점 등 의외의 사실들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초상’(루이 카르몽텔, 1763), ‘빅토리아 여왕의 가족’(프란츠 빈터할터, 1846) 등 그림자료를 보는 재미는 덤이다.

인터뷰 전날 한 중학교에서 강의했다는 지은이의 후기가 인상적이다. 여학생한테선 “가부장제”라는 단어를 들었고 남학생한테선 “씨발년”이라는 단어를 들었단다. “10대에 여성은 벌써 가부장제를 알아요. 또래 남성은 초면인 여성에게 욕을 하고 있고요. 그런데 재밌는 건, 남학생들끼리 서로 장난치면서 욕할 때도 ‘년’이라고 해요. 폄하, 혐오의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그 표현엔 여성비하가 동원되는 거죠. 자기는 성차별을 겪어본 적 없다고 말하는 여학생들도 있어요. 이런 이야길 해주면 그때야 깨달아요. 성차별을 당하지 않는 여성은 없다는 걸요.” 지은이는 현실판 ‘나의 첫 젠더 수업’으로 최근 페미니스트 교사 찬반논쟁을 불러일으킨 서울 위례별초등학교 사례에 대해 “페미니즘과 젠더 교육은 교권 향상에도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나’는 학생도 그 무엇도 아닐 수 있지만 자신과 젠더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젠더를 아는 것이 행복의 가장 ‘가까운 조건’이란 뜻이다. “페미니즘은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도와줘요. 살을 빼지 않아도, 근육질이 아니어도, 눈물이 많아도 아름다운 존재라는 걸 알게 되니까요. 여러분의 행복의 정의가 바뀌길 바랍니다.” 글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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