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베스트셀러 <여명>을 출간한 디프노트 출판사 대표인 아미르 알리 튀르크만. 그는 정치범으로 복역중인 <여명>의 작가 셀라하틴 데미르타시의 친구다. 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제36회 이스탄불국제도서전이 열리는 터키 이스탄불의 튀얍 전시장 한켠에는 머리에 천을 쓰고 얼굴이 절반만 나와 있는 여성의 그림이 벽 전체에 붙어져 있다. <여명>이란 책의 표지를 크게 확대해놓은 것이다. <여명>은 이처럼 출판사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외국 기자를 맞고 있었지만, 정작 이 책의 작가인 셀라하틴 데미르타시(44) 터키 인민민주당(HDP) 대표는 감옥에 있다.
데미르타시의 <여명>을 출간한 디프노트 출판사의 아미르 알리 튀르크만(50) 대표는 선뜻 인터뷰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의 통역을 맡은 출판사의 한 직원은 “인터뷰가 그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에서 태어난 튀르크만 대표는 고교생 때 주변 친구들의 영향으로 마르크스와 레닌 등의 책을 접하며 사회주의자가 된다. 프랑스 68혁명의 바람이 터키까지 불어오던 시대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는고등학교까지만 마치고 서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2000년 그가 다니던 서점이 망하자 그는 빚을 내 출판사를 차렸다. 오랫동안 꿈꿔온 진보적 사회과학출판사였다. 그는 독학으로 공부해 2009년부터 <터키 좌파 사회주의자 1, 2> <터키 좌파의 초상들> <쿠르드 사회주의자 선집> 등 6권의 책을 낸 명실상부한 터키 사회주의 사상가이기도 하다.
출판사를 차린 지 얼마되지 않아 사회주의자 모임에서 앙카라대학 로스쿨에 다니던 데미르타시를 만나게 된다. 같은 사상적 지향을 지닌 두 사람은 곧 친구가 됐고, 같은 당에서 활동했다. 그들의 인연은 책이 출간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데미르타시의 개인적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여명>은 정치적인 내용을 쓰지 않았는데도, 출간된 지 두달만인 지금까지 20만부가 팔려 나갔다. 튀르크만 대표는 5일 전시장에 차려진 출판사 부스에서 <한겨레>와 만나 “두 출판사에서 ‘많은 돈을 줄테니 판권을 넘기라’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라고 말했다.
데미르타시는 인권 변호사로 일하다가 정계에 진출해 2011년 국회의원이 됐다. 2014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세 번째로 많은 9.7%의 지지를 받아 ‘터키의 오바마’라고도 불렸다. 그는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선정하는 2015년 글로벌 사상가 125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데미르타시가 이끄는 인민민주당은 2015년 총선을 통해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해 550석 중 59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3당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이 정당은 노동자·여성·아동 등 소수자를 위해 싸우는 것처럼 터키 내에서 차별과 탄압을 받는 쿠르드족과 아르메니아인 등 소수민족의 권리를 위해서도 싸운다. 이 정당이 제3당이 될 수 있던 배경엔 전체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1800만명의 쿠르드족의 지지가 있었다.
쿠르드족의 지지는 터키의 독재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데미르타시를 잡아들이는 빌미가 됐다. 지난해 11월 터키 경찰은 그와 공동대표인 피겐 육섹다흐 등 인민민주당 핵심인사 10명을 구속했다. 터키 정부가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인민민주당이 관계가 있다는 이유였다. 터키 의원에겐 면책 특권이 적용되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한 집권당, 정의개발당(AKP)은 지난해 5월 '테러' 관련 혐의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서 제외하도록 법을 바꿨다. 지난 1월 터키 검찰은 데미르타시에게 징역 120년을 구형했다. 튀르크만은 “데미르타시는 법정에 가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한다. 그는 변호사도 있고, 법정에서 발언하고 싶어하지만 법원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인권에 반하지만 터키에선 합법”이라고 전했다.
튀르크만은 ‘에르도안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는 독재자인가’라고 묻자, 그는 “그 질문에 대해선 답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수백여명의 정치범·양심수들이 복역중인 터키에선 대통령이나 정권을 비판하면 징역 2년 선고가 가능한 상황이다.
이스탄불/글·사진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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