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혁명 100년 1·2
정재원, 최진석, 박종소 엮음/문학과지성사·각 권 2만3000원
“러시아 혁명은 무수한 피를 흐르게 한 것 못지않게 많은 잉크도 흐르게 했다.”(한정숙)
1917년 10월 일어난 러시아 혁명이 100주년을 맞는 올해, 국내에선 러시아 혁명 관련 서적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 혁명이야말로 “20세기를 규정한 세계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자 “우리는 지금도 10월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박노자)이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두 권으로 나온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혁명 100년>(문학과지성사)에서 총론을 쓴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좌파의 가장 근본적인 요구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인데, 이 요구를 최초로 실현한 것이 다름 아닌 10월 혁명이었다. (…) 복지국가 건설을 일찌감치 이루어내고 완전고용을 실시한 10월 혁명 이후의 소련과의 체제 경쟁이 아니었다면, 과연 서구 등지에서 복지개혁이 가능했을까”라며 그 이유를 밝힌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군중에게 연설하는 레닌. <한겨레> 자료사진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러시아 혁명은 거듭 돌아가 참고해야 하는 사건이다. 박노자는 “생태계 파괴는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열강 사이의 줄타기와도 같은 위험한 각축, (…) 끝이 안 보이는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한계와 사회주의로의 이동의 필연성을 너무나 명확히 보여준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명제가 가장 시의적절한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인민 대중들의 혁명적 민주성과 필요시의 혁명적 독재를 충돌 없이 양립시킬 수 있을지, 새로운 상황에서 ‘전위당’의 의미와 역할이 무엇인지, (…)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다시 고민할 때 1917년 10월 혁명은 참고할 만한 많은 교훈을 안겨준다”고 말한다.
“사회주의 혁명이여 영원하라!”는 문구와 함께 소련 병사들과 함께 걷고 있는 레닌을 표현한 소련의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교훈을 얻어내기 위해선 먼저 그 경과와 한계를 냉철하고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러시아 혁명을 옹호하는 이들이 빠지기 쉬운 손쉬운 변명은 ‘스탈린이 아닌 레닌 또는 그의 후계자인 트로츠키가 권력을 잡았다면 소련이 패망하지 않고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는 레닌 시기의 정책들을 극단적으로 이상화해 “러시아 혁명이 스탈린 이후의 현실사회주의 체제와 아무런 상관 없는 것으로 서술하는 경향”을 배격하는 것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러시아 혁명의 현재적 의의’라는 글에서 러시아 혁명 초기인 레닌 시기부터 사회주의 체제의 핵심 영역인 소비에트(평의회), 노동자 통제, 협동조합이 변질되는 과정을 살핀다. 정 교수는 “(레닌은 혁명이) 1년도 지나지 않은 1918년 봄에 ‘프롤레타리아 중앙집권주의’만이 사회주의를 의미한다고 주장”했고, “소비에트를 통한 노동자 민중 권력이라는 원칙은 볼셰비키 자신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소비에트 같은 아래로부터의 공동체 운동들을 되살려 “다당제와 의회제도, 사적 소유와 시장,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다양한 사회적 소유와 사회적 경제의 실험, 협소한 계급 개념을 넘어서는 다양한 노동 대중의 다양한 공간에서의 직접참여 민주주의야말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수호하는 것이다”라는 레닌의 발언과 그의 모습을 담은 소련의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반대로 러시아 혁명이 실패한 원인을 내부에서만 찾는 것도 적절한 태도는 아니다.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세계를 뒤흔든 혁명’에 대한 열광, 비판, 성찰’이란 글에서 연합국이 볼셰비키 혁명 당시 백군 쪽에 무기를 지원하며 내전을 부추겼는데 “이 내전은 러시아 혁명을 그 출발점부터 고통스럽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 사회주의 혁명정부를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은 볼셰비키의 권력욕이라기보다 제국주의 세력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소련의 농민들에게 재앙을 초래한 농업 집단화는, 대공황으로 국제 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폭락하자 공업화에 투자할 자금이 필요한 소련이 더욱 가혹하게 밀어붙이게 된 측면도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한 교수는 “이 혁명으로 ‘비서구’ 세계가 국제 관계에서 주체로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됐다”며 “정직한 관찰자라면 러시아 혁명이 아니었다면 그 후 자본주의는 자기수정의 가능성을 쉽사리 찾을 수 있었을 것인가, 찾는다 하더라도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모두의 번영과 영원한 평화가 있는 공산주의 사회의 밝은 미래로!”라는 문구와 함께 레닌의 모습을 담은 소련의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올해 러시아 혁명과 관련해 출간된 책들을 살펴보면, 아고라 출판사에서 지난 7월부터 전체 120권을 목표로 하고 국내 최초로 레닌 전집을 내기 시작한 것이 가장 눈에 띈다. 또한 지난 5월부터 레온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아고라), 에드워드 핼릿(E. H.) 카의 <러시아 혁명: 1917-1929>(이데아), 알렉산더 라비노비치 <1917년 러시아 혁명: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책갈피), 레닌의 <혁명의 기술에 관하여>와 이 책을 해설한 슬라보이 지제크의 <레닌의 유산: 진리로 나아갈 권리>(생각의힘)가 속속 나왔다. 국내 저자로는 최일붕의 <러시아 혁명: 희망과 좌절>(책갈피), 박노자의 <러시아 혁명사 강의>(나무연필)가 있었고, 학술지로는 <진보평론>이 가을호로, <문화과학>이 여름호로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특집으로 다뤘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있다. 한길사는 한국러시아문학회 소속 학자들이 혁명기의 러시아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이 러시아 혁명을 어떻게 보고,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탐구한 <러시아혁명, 선택>, 사계절은 시카고대학의 현대 러시아사 교수인 실라 피츠패트릭이 쓴 러시아 혁명 개설서인 <러시아 혁명>, 책세상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닐 포크너가 러시아 혁명을 러시아 민중의 열망의 산물로 본 <레닌 없는 러시아 혁명사>를 낼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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