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트허르 브레흐만 인터뷰]
20일 오전 서울 가회동 김영사에서 <한겨레>와 만난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노동시간이 긴 한국이야말로 노동시간 단축을 할 여지가 많은 나라”라며 “생산성 전문가들은 주당 90시간씩 일한 애플 직원들이 그 절반만 일했다면 더 높은 성과를 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보편적 기본소득·국경 철폐 등 주장
“도움안되고 무가치한 일 줄이면
더 창조적인 일이 역량 쏟을 수 있어” 브레흐만과는 사뭇 다르게 기본소득에 회의적인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주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7월 같은 출판사의 초청으로 방한한 하라리 교수는 국가 내 기본소득으로는 국가 간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다며 “핀란드 국민이 자국민의 기본소득을 위해서 세금을 더 걷는 데는 동의할지 모르지만, 방글라데시 국민까지 돕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관해 묻자 브레흐만은 “하라리는 기본소득 전문가가 아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이민자에게 투표권을 지급하거나, 복지 혜택을 주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행동한다는 말에는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은 빈곤을 퇴치하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효과적인 방법이고,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하라리의 비관적인 미래 전망에 대해서도 브레흐만은 날을 세웠다. 하라리는 기술의 발달로 인간 노동자와 군인의 필요성이 떨어지면, 통치 엘리트들은 의료와 복지제도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브레흐만은 “역사가들이 미래에 관해 이야기할 때 독자들은 회의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가능하다고 믿지 않으면 불가능하나, 믿으면 현실이 된다는 점에서 인간은 놀라운 존재다. 1%가 로봇을 소유하고 나머지는 노예나 그보다 나쁜 것이 된다는 디스토피아 시나리오가 있지만, 반대로 유토피아 시나리오가 있다. 과거에 노예제 폐지나 성평등은 유토피아적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해냈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최근 몇 년간 갑자기 논의가 쏟아져 나오고 실험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급진적인 비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는 가능성조차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선진국, 특히 한국의 노동시간(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2위)이 불필요하게 길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 노동자의 37%, 특히 은행가, 변호사 같은 사무직들이 자신들의 하는 일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가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들이 실리콘밸리에선 고작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광고를 클릭하게 할까를 고민하고, 월스트리트에선 파괴적인 금융상품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 이런 공공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줄이고, 사람들에게 여가를 주면 가족을 돌보거나 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건 국경을 없애자는 제안이다. 그는 “매우 장기적으로 실현해나가야 하는 제안인 것은 맞지만 국경을 열수록 경제는 성장하고 빈곤은 줄어들 것이다. 이민자들이 테러나 범죄를 저지르고 게으르다는 것은 왜곡된 생각이다. 이민자들은 도전정신이 강하고, 사회에 더욱 기여한다. 역사적으로도 적극적으로 국경을 연 나라들이 번영을 누려왔다”고 말했다. 이번 책의 성공으로 3, 4년간 경제적 자유를 얻은 그는 2년 뒤에 두꺼운 새 책을 낼 예정이다. 새 책에 대해 그는 “사람들이 문명이란 외피는 매우 얇기 때문에 전쟁이나 재난이 일어나면 곧 동물적 본성이나 괴물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선하며 서로 이런 믿음을 가져야 기본소득이나 더 많은 사회보장제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쓸 것”이라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이나 일본은 위계적 문화가 강해서, 젊은이들은 잘 목소리를 내지 않는데, 정작 나이가 들면 할 이야기가 없어져버린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글을 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