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멍키/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지음, 문수민 옮김/비즈페이퍼·2만5000원
실리콘밸리 스토리/황장석 지음/어크로스·1만5000원
세계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테슬라 등의 엄청난 성공을 보다 보면 대체 실리콘밸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런 궁금증을 한 번쯤 품어봤을 사람이나, 성공을 꿈꾸는 스타트업 창업자라면, <카오스 멍키>가 그런 궁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해줄 듯하다. 스타트업을 창업해 고액에 팔아치우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거친 지은이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는 그야말로 실리콘밸리의 ‘내부자’다. 그런 내부자가 주변에서 ‘이 책을 쓰는 것은 당신의 커리어에서 자살행위’라며 말릴 정도로 실명과 함께 신랄한 비난과 풍자를 곁들여 자신이 겪은 일들을 썼으니, 기업 이미지를 생각해 적당히 다듬어낸 책들보다는 훨씬 더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가 “엘리트주의 기술자 쓰레기”라고 쓰인 티셔츠를 들어보이고 있다. 비즈페이퍼 제공
히스패닉계인 마르티네즈는 명문대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아 월스트리트에 있는 투자회사 골드만삭스에서 퀀트(수학모형 기반의 계량분석 기법을 활용하는 금융분석가)로 일을 시작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에 있는 ‘애드케미’라는 광고 최적화 프로그램 개발회사로 옮긴 뒤, 엔지니어 두 명과 회사를 나와 광고기술 스타트업 ‘애드그로크’를 창업한다. 애초에 그가 내놓은 창업 아이디어는 계속 바뀌어 ‘플랜 에이(A)’에서 ‘플랜 제이(J)’로 대략 10번가량 바뀐다. 하지만 그의 애초 아이디어는 시작 단계에서만 다섯 번의 기적이 필요했기에 실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구글 같은 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려준다. “될성부른 스타트업은 ‘기적’이 한 번만 일어나면 성공할 수 있다.” 에어비앤비는 남는 방과 주말 별장에 생면부지인 남을 들여놓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구글은 어느 검색엔진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나은 검색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단 한 가지 기적을 실행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투자자를 겨우 모았을 즈음에 애드캐시로부터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고소를 당해 회사가 망할 지경이었음에도 투자자를 속여 위기를 간신히 넘긴다. 나중에 애드그로크를 창업한 뒤엔, 회사를 트위터에 500만달러에 팔아버리고 인수 과정에서 자신은 빠져나와 페이스북으로 갔다가, 현재 다시 트위터의 고문으로 일하는 중이다. 그는 자신의 이런 질 나빠 보이는 행동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 뒤 이런 일은 스타트업에선 당연한 일이라고 어깨를 으쓱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다른 사람의 운영체제를 베꼈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 스티브 워즈니악을 착취했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아이디어를 도용해서 성공하지 않았냐는 거다. “애드그로크는 모든 속임수와 술책을 동원했다. 스타트업이라는 게임에는 진짜 규칙은 없고 법만 있을 뿐이며, 그 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결국 성공은 모든 죄를 용서해준다. 게이츠와 잡스에게 그랬고, 무수한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지금도 그러듯이”라고 말하곤 의뭉스럽게 덧붙인다. “거인 골리앗에 맞서 돌팔매를 썼다고 해서 다윗을 비난하지는 않지 않은가?” “소시오패스가 돈을 버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스타트업 창업이다.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부디 알려주길 바란다.”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가 페이스북 광고부에서 일할 당시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 여섯째가 마르티네즈다. 비즈페이퍼 제공
그는 성공적인 스타트업 창업자가 갖춰야 하는 것은 지성도, 컴퓨터 기술도, 독특한 아이디어도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삶의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고 한 가지 일에만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며 집중하는 능력”이다. 그는 스타트업을 시작한 뒤 사교생활도, 육아도, 부부관계도 거의 하지 않았다. “둘째로 무한한 양의 똥덩어리를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능력”, 즉 인내력이다. 창업자의 삶엔 세상을 쥐고 흔드는 것 같은 순간보단 “마음을 괴롭히는 의심, 토할 것 같은 불안, 끝없는 간난신고”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카오스 멍키’는 애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업체 넷플릭스가 만들어 배포한 소프트웨어의 이름이다. 마치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이용하는 서버가 들어찬 센터에 원숭이가 난입해 케이블을 뽑고 서버를 부수는 등 완전히 난장판을 만드는 상황이 일어난 것처럼, 이 소프트웨어는 가상공간에서 무작위로 서버를 다운시킨다. 웹사이트와 서버에서 일어나는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책을 마련해두기 위해서다. 지은이는 비유적으로 정보통신(IT)계 창업자는 인간 사회의 카오스 멍키 같다고 말한다. 택시 운전자를 우버가, 호텔을 에어비앤비가 대체하는 식으로 신생 인터넷 기업이 기존 산업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이직과 저서로 실리콘업계에 풍파를 일으킨 카오스 멍키일 터인 지은이는 말한다. “사회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는 카오스 멍키와 닮은 이 창업자들 속에서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무엇인가다.”
국내 저자가 쓴 실리콘밸리 책도 나왔다. <실리콘밸리 스토리>는 국내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실리콘밸리에 살면서 국내 언론에 기고를 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황장석씨가 썼다. 실리콘밸리를 만든 창업자, 기술자, 기업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곳이 세계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는 진원지가 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