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만큼 힘들면 회사 그만두지 그래”가 안 되는 이유>의 한 장면. 한겨레출판 제공
평범한 직장인이 과중한 업무 끝에 자살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두지 왜 굳이 자살까지 할까?’라는 반응을 보인다.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시오마치 고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한 광고회사에서 시간외 근무를 한 달에 90~100시간씩 하며, 매일 겨우 지하철 막차를 잡아타고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가기 시작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서 정한 과로사 인정 기준 80시간도 훌쩍 넘긴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승강장에서 막차를 기다리다가 ‘지금 한 발만 내디디면 내일 회사 안 가도 돼’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는 승강장 밖으로 발을 한 발짝 내딛기까지 한다. 그 경험을 통해 시오마치는 “누군가 과로자살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죽을 정도로 힘들면 그만두면 될 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 정도 판단력까지 잃게 한다는 점이 무서운 것”이라고 말한다.
직장인의 과로자살을 다룬 만화와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시오마치는 지난해 10월 ‘딱히 그럴 마음도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자살을 시도했다’는 제목으로, 지난해 10월 직장생활에 짓눌린 끝에 자살할 뻔한 경험을 담은 만화를 트위터에 올려 유명인이 됐다. 3천만명이 이 만화를 봤다. 그는 트위터에 올린 만화의 내용을 보강하고, 의사 유키 유의 조언을 함께 담아 <“죽을 만큼 힘들면 회사 그만두지 그래”가 안 되는 이유>라는 만화를 최근 출간했다.
그는 만화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자기가 선택한 일’이니까, 그러니까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 그러니까 장시간 일하는 것은 당연, 그러니까 과로사하는 것도 당연?… 그럴 리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긍정의 의미였던 ‘그러니까’가 뜻하지 않게 당신을 어둠의 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신체가 건강한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정신이 위험한 상황임을 자각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문득 ‘오늘 너무 일어나기 싫다’, ‘더 걷기가 싫다’는 사소한 무기력함도 몸이 필사적으로 보내는 구조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음악가여서 수십억원짜리 고가의 악기를 다룬다면 매일 착실히 관리하고, 아무리 바빠도 망가질 때까지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의 몸과 마음은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한 장면. 뮤제엔터테인먼트 제공
19일 개봉하는 일본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일본에서만 70만부 이상 팔린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젊은 영업사원 다카시(구도 아스카)는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매일 부장에게 인신공격 수준으로 깨지면서도 고지식하게 일하던 그는 어느 날 야근 뒤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달려오는 열차 앞으로 쓰러진다. 떨어지기 직전 그를 구해준 이는 초등학교 동창 야마모토(후쿠시 소타).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한 친구는 그날부터 다카시를 술집으로, 운동장으로, 공원으로 끌고 다니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기만 하던 다카시의 삶도 조금씩 활기를 띠게 된다.
연출에 나선 <솔로몬의 위증>, <8일째 매미>의 나루시마 이즈루 감독은 젊은 시절 세상을 등진 2명의 친구를 기억하며 이 작품을 준비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왜 제목에 굳이 ‘잠깐만’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는지 이해하게 된다. 사표는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는 낙인이 아니라는 것. 단순한 진리지만 직장생활의 쳇바퀴 안에 들어가면 잊어버리곤 하는 진실을 영화는 친구의 숨겨진 과거를 쫓아가면서 드러내 보인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한 장면. 뮤제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지훈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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