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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북벌과 북핵

등록 2017-10-12 20:04수정 2017-10-12 20:52

[강명관의 고금유사]

1654년(효종 5년) 청이 송화강 일대까지 진출한 러시아 군사를 치기 위해 조총군(鳥銃軍) 100명을 보내라고 요구했을 때다. 청의 사신이 군사를 요청하기 위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민정중(閔鼎重)은 송준길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 기회를 살려 청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청의 세력이 쇠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증거로 수년 이래 달이 세 차례 묘성(昴星, 좀생이별)을 범한 천문현상과 청 내부의 권력투쟁, 그리고 명의 잔존세력이 세 차례 산서 지방을 수복한 것을 꼽았다. 이어 ‘중국은 반드시 펼쳐지는 이치가 있고, 오랑캐는 백년이 가는 운명이 없다’는 말을 인용하고 ‘오랑캐가 망하고 중국이 회복되는 운수’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청의 사신이 조선에 오는 것 역시 청이 대륙에서 철수하려는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청이 중국에서 철수하고 명 체제가 복구된다면, 명은 반드시 조선이 청에 복종한 죄를 물을 것이다. 대비책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제안한다. “오늘을 위한 계책은, 빨리 청병(請兵)하는 것을 꼬투리로 삼아, 정예병을 널리 선발하고, 믿을 수 있는 장수를 보내어 요동의 옛 국경에 주둔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국내의 백성을 크게 동원하여 의주를 지키게 하여 세력을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일단 요동으로 진출하고 군사를 동원해 의주를 굳게 방어하자는 것이다. 민정중은 이어 사신을 명(명明의 잔존 세력인 남명南明일 것이다)에 보내어 조선의 본심을 알리고, 협력해 청을 치면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정중 자신은 뒷날 좌의정이, 아들 민진장은 우의정이, 동생 민유중의 딸은 인현왕후(숙종 비妃)가 되었으니, 그의 가문은 조정의 의사결정 과정을 지배하는 벌열가문이었다. 민정중의 주장을 음미해 보면, 북벌(北伐)과 관련된 지배층의 정세판단 능력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민정중은 청의 사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정확한 정보도 없이 청이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는 일방적 희망에 기초하여, 청이 쇠퇴하고 있고 중국에서 철수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판단을 끌어내었고, 이 판단에 근거해 명의 잔존세력과 연합하여 청을 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송준길에게 보낸 편지의 끝에 뒤에 다시 보낸 편지가 실려 있는데, 내용은 청의 사신은 ‘영고탑(寧古塔)의 반란을 일으킨 종족(러시아 군대를 의미하는 듯)을 협공’하기 위해 온 것이므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다는 것이다. 그의 원래 제안이 얼마나 성급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이 당시 조선을 지배하는 자들의 민낯이었다. 오랑캐인 청이 곧 망할 것이라는 일방적 희망, 청과 대륙의 정세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부재, 냉정한 판단력의 결여, 이미 망해 버린 명에 대한 부질없는 충성, 혹 있을지도 모르는 명의 조선에 대한 문책과 그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조선의 지배층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판단력과 감정 상태로 전쟁을 하는 것이 합당한가?

지금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북핵문제는 오직 전쟁 없는 평화란 원칙으로 해결되어야 마땅하다. 그 평화는 객관적인 정보와 냉정한 판단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민정중류의 부정확한 정보와 판단, 감정 상태로는 지금의 북핵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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